▲ 정기훈 기자


“생산현장 대의원들이 주도해 온 맨아워(Man-Hour·시간당 생산대수) 협상을 지부가 총괄하겠다.”

지난달 1일 공식 임기를 시작한 민기(41·사진)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지부장의 말이다. 대의원들의 현장권력을 대변하는 맨아워 협상권을 지부로 귀속시키겠다는 그의 말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당장 대의원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이에 대해 민 지부장은 “대의원 협상만으로는 공장별 노동강도 편차를 줄여 나가는 데 한계가 뚜렷하다”며 지부가 협상의 주도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지부가 총괄하는 맨아워 협상으로 공장별 일감을 고루 나누고, 제도적으로는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을 통해 노동시간 단축에 나서겠다는 구상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7일 오후 한국지엠 부평공장 지부사무실에서 민 지부장을 만났다.

- 지부장 임기가 시작된 지 1개월여가 지났다. 식대 인상 요구나 출퇴근버스 증차 요구, 조합원에 대한 소지품 검사 금지 요구, 지부 홈페이지 실명제 폐지 등 조합원 밀착형 활동이 눈에 띈다.

“지난 9월 진행된 지부 임원선거에 5개 팀이 출마했는데, 우리 팀은 4등 정도 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예상은 깨졌고, 역대 선거 중 가장 높은 득표율로 우리 팀이 당선됐다. 노조간부들에게 온갖 특혜가 돌아가는 구조를 바꾸라는 조합원들의 뜻이 반영된 결과다.

임기를 시작하면서 ‘각종 청탁은 노사 관계를 파탄 내는 지름길이다’고 선언했다. 노조간부들이 임기가 끝나면 생산현장에 복귀하지 않고 간접부서로 옮겨 가는 관행을 깨기 위해 상임집행위원회 간부 전원이 ‘임기가 끝나면 반드시 원직에 복귀한다’는 대자보를 붙이고 올라왔다.

임기가 시작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회사를 상대로 식대 인상과 버스 증축을 요구한 것이다. 지난주 마이크 아카몬 사장과 처음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조합원들이 피부로 느끼는 불편사항을 점검해 개선해 나갈 생각이다.”


“정부의 교대제 개편 행보, 공감”

- 오늘(인터뷰 당일)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이 한국지엠 부평공장에 다녀갔다. 노사에 ‘교대제 개편과 일자리 창출’을 주문했는데.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한 정부의 활동에 공감한다. 일시적인 활동에 그치지 말고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를 기대한다.”

- 지금까지 완성차 업계의 교대제 개편논의는 현대자동차 노사가 주도해 왔다. 한국지엠 노사의 논의는 어디까지 왔나.

“96년 당시 대우차노조가 업계 최초로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완성차노조 중 처음으로 월급제 전환을 전제로 한 교대제 개편 연구사업도 벌였다. 그런데 IMF와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를 거치며 기존의 논의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지부는 4분기 노사협의회부터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룰 계획이다. 회사에 실무협의회 구성을 요구한 상태다.”

- 외투기업인 한국지엠의 경우 국내기업에 비해 노사협상으로 교대제 개편에 합의할 여지가 적어 보이는데.

“현대차·기아차와는 조건이 다르다. 논의의 진척 속도가 다르고, 외투기업이라는 특성도 존재한다. 특히 한국지엠 경영진이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범위가 좁다. 다양한 방식의 자본유출로 인해 비용 부담도 크다. 그렇지만 교대제 개편논의가 대세로 자리 잡는다면 한국지엠이 이를 거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 최근 새로 당선된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과 기아차지부장은 교대제 개편을 위한 현대-기아차 공동투쟁을 내걸었다. 이참에 완성차업계 노조의 공동투쟁을 기대해도 될까.

“자동차업계 주야 맞교대 시스템은 심야노동에 따른 건강 문제와 가족 해체 문제를 동반하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에 모두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공동행보를 위한 여건은 충분히 무르익었다고 본다. 완성차지부들이 똘똘 뭉칠 수 있도록 금속노조가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


“쉐보레 브랜드 도입 뒤 노동강도 높아져”

- 지난 3월 한국지엠으로 사명이 바뀌었고, 출시되는 모든 차에 쉐보레 브랜드가 적용된다. 사명과 브랜드가 교체된 뒤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지난달 18일 말리부 국내 1호차 양산 기념식이 열렸다. 회사로부터 초대장이 왔지만 행사장에 가지 않았다. 신차가 나오면 작업환경도 개선돼야 하는데 현실은 정반대다. 쉐보레 브랜드 도입 이후 신차 출시가 이어지면서 조합원들의 노동강도가 높아졌다. 조합원들이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지부장이 행사장에 가서 가위 들고 커팅식이나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했다.”

- 노동강도를 완화하기 위한 복안은 무엇인가.

“그동안 생산현장의 대의원들이 주도해 온 맨아워(Man-Hour·시간당 생산대수) 협상을 앞으로는 지부가 직접 관장할 계획이다. 전담팀이 만들어졌고, 담당인원 배치도 끝났다. 지부가 직접 협상에 나서 공장별 노동강도 편차를 줄여 나갈 것이다.”

- 맨아워 협상권은 대의원들의 현장권력으로 인식돼 왔다. 협상권을 지부가 행사할 경우 대의원들의 반발이 예상되는데.

“선거운동을 하면서 각 공장을 순회했는데 ‘한 표 찍어 달라’고 악수를 청하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전반적으로 노동강도가 높은 데다, 공장별 작업 편차가 크다. 조합원의 고령화가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근골격계 질환과 같은 직업병을 예방하려면 노동강도를 합리적으로 조절해야 한다. 대의원 협상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부가 맨아워 협상을 직접 컨트롤할 것이다.”


10년째 이어지는 정리해고의 악몽

- 최근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협상이 타결되고 김진숙 지도위원 등 크레인 농성자들이 무사히 내려왔다. 한국지엠 역시 1천700여명에 달하는 대규모 정리해고를 겪은 사업장이다. 해고의 그늘은 완전히 사라졌나.

“나도 정리해고를 당했다. 당시 정리해고철회특별대책위원회 대표를 맡았다. 얼마 전 김진숙 지도위원이 내려오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났다. 어떤 심정일지 말하지 않아도 느껴졌다.

한진중은 1년 내 복직에 합의했는데, 우리는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복직했다. 현장 안에서 해고자와 비해고자 간 갈등이 심했다.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그래도 해고를 당해 본 사람만 꾸는 악몽이 있다. 두 번 다시 그런 아픔은 없어야 한다.”

- 지난 겨울 사내하청 노동자 2명이 부평공장 정문 앞에서 정규직화를 촉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였다. 한국지엠 회사측이나 고용노동부의 입장은 한국지엠의 경우 정규직-사내하청 간 작업공정 분리가 사실상 끝났다는 것이다. 혼재작업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불법파견 여지가 없다는 주장인데. 실제로 그런가.

“현대차의 불법파견이 노골적인 반면에 한국지엠의 불법파견은 좀 더 교묘하게 위장돼 있다. 예전에는 정규직과 사내하청이 섞여 일했다면, 최근에는 정규직이 집중된 공정과 사내하청이 집중된 공정으로 구분돼 있다. 하지만 자동차 생산라인은 연속공정인 데다, 생산지시나 인력배치 등은 여전히 원청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명백한 불법파견이다.”

- 통상임금 소송에 대한 인천지법 판결을 앞두고 있다. 통상임금 소송에 대한 법원의 판례가 노조쪽에 유리하게 형성돼 있어 좋은 결과가 예상되는데.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의 최대 쟁점은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느냐 여부다. 한국지엠은 짝수달과 5월에 정기적으로 상여금을 지급해 왔다. 법원이 ‘정기적으로 지급된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산입돼야 한다’는 노조의 주장을 받아들일 경우 해당 판결의 여파는 전국의 사업장으로 확대될 것이다. 1심 판결은 12월께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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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기 한국지엠지부 지부장은

70년 인천 부평에서 태어났다. 95년 군 제대 직후 대우차 엔진부서에 입사했다. 96년 노개투 투쟁 때 본격적으로 노조활동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4번에 걸쳐 대의원 활동을 했다. 2001년 정리해고를 겪었다. 현재 지부 상임집행위원들 대부분이 당시 해고됐던 노동자들이다. 존경하는 인물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노동운동가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몸소 보여 줬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어울려 술 마시는 것을 즐기고 주량은 소주 한 병 정도다. 37살에 배운 담배는 하루에 두 갑 가까이 피운다. 모든 운동을 좋아하고, 특히 프로야구팀 SK 와이번스의 열혈팬이다. 아직 미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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