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경기도 부천 원미구에 있는 근로복지공단 부천지사에서 근무하던 서아무개(41·여)씨가 허벅지에 민원인이 쏜 고무탄을 맞는 사건이 발생했다. 산업재해 노동자인 이아무개(66)씨는 이날 공단 사무실로 찾아와 가스분사기에 고무탄을 장착해 서씨에게 쐈다. 서씨는 병원에서 허벅지에 박힌 고무탄 제거 수술을 받았다.

이씨는 90년 건축공사 현장에서 허리를 다쳐 산재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그동안 공단으로부터 치료와 생계비를 받았지만 다음달 20일 요양급여기간이 만료될 예정이었다. 산재 노동자가 장애 판정을 받은 경우 일정기간 치료를 한 뒤 치료해도 호전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공단은 남은 기간에 대해 장애급여를 지급한다. 공단은 지난 9월 이씨에게 요양급여와 치료 중단 방침을 통보했고, 12월20일 이후에는 간병급여를 지급하고 요양센터에 입소하면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그러나 요양급여 연장을 원했다.

공단 직원에 따르면 이씨는 요양급여 기간연장이 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설명하자 “그것은 나를 죽이는 것이다. 담당 부장과 직원을 죽이고 나도 죽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요양불승인·치료종결에 극단적 사례

공단에 대한 산재 노동자들의 반발은 종종 과격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08년 2월 장해등급에 이의를 가진 노아무개씨는 도끼를 품고 공단 ㄱ지사를 방문해 담당자에게 도끼를 휘둘렀다. 같은해 2월 치료종결에 불만을 품은 김아무개씨는 부산 ㅂ지사에서 면담을 하던 중 시너를 자신의 몸에 붓고 자살 소동을 벌였다. 같은해 1월 ㅈ아무개씨는 체납보험료 압류와 관련된 이의 때문에 시너 세 통을 소지하고 서울 ㅅ지사에 방문해 1통을 머리에 붓고 자살 소동을 벌였다.

2007년 10월에는 장해급여에 이의를 가진 산재노동자 김아무개씨가 ㅇ지사에서 칼을 들고 공단 직원을 인질로 잡아 위협한 사건도 있었다. 2007년 3월에는 산재노동자 임아무개씨가 치료종결에 대한 불만으로 서울 ㄱ지사를 방문해 회의용 탁자와 탁자유리를 집어던지고 이를 만류하던 직원 ㅅ아무개씨의 귀를 물어뜯기도 했다.

이런 사건들은 극단적인 사례이기는 하지만 공단 노동자들 역시 상당한 업무스트레스를 겪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공단 노조 “무조건 친절 강요당해”

근로복지공단노조(위원장 김세환)가 2006년 1월1일부터 2008년 4월11일까지 집계한 과격 민원 실태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공단 직원에 대한 폭행·감금은 14건, 욕설 협박은 10건, 기물파괴는 7건, 분신(자살) 기도는 5건, 점거 농성은 4건 발생했다.

최근 사고 이후 노조는 성명을 통해 공단 조합원들의 분노와 당혹감을 표현했다. 노조는 “고용·산재보험 업무를 수행하며 노동자들의 복지와 생존권 보장을 위해 헌신해 왔다”며 “하지만 희생과 봉사만을 강요당한 채 무조건 친절이란 절대가치와 실적주의의 횡포 아래 우리의 생존권은 무참히 짓밟혀왔다”고 밝혔다.

노조는 “올해부터 도입한 부과고지제도와 피보험자 관리제도, 퇴직연금사업 등 어느 것 하나 충분한 인력과 예산이 수반되지 않았다”며 “임금과 복지는 4대 사회보험 기관 중 비참한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노조는 올해 1분기 노사협의회에서도 폭력사태에 대한 안전대책을 공단측에 요구했다. 공단은 최근 직원 피격 사건 이후 대책을 내놓았다. 우선 직원들에 대한 긴급 보호방안으로 해당 지사에 직원보호를 위한 경비원을 긴급 배치하기로 했고, 청사 방호를 위해 경비원 배치를 지속적으로 확대해가기로 했다. CCTV를 일제 점검하고 경찰서와 협조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

제도 개선을 통한 보호대책도 마련하기로 했다. 공단 지역본부에 가칭 진료계획심의위원회를 설치해 상병이 고정된 상태에서 장기요양 중인 환자의 진료계획을 심의하고 의결하도록 한 것이다. 치료 종결을 예상치 않고 장기요양 중인 산재노동자에 대해서는 신체감정을 상시적으로 시행해 예비적·장기적으로 종결 수용성을 높인다는 계획도 포함했다. 중장기적으로는 표준진료지침을 마련해 요양의 형평성을 개선하고 실비변상적 성격의 급여는 현물급여로 전환해 개별 현금수익화를 지양한다는 방침이다. 노사간 제도개선을 위한 TF팀도 설치하기로 했다.


인력부족해 서비스·산재조사 역부족

이같은 공단의 대책은 산재노동자들의 민원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 대책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산재노동자들의 민원 해결보다는 공단의 정책을 산재노동자들에게 수용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김세환 위원장은 “업무상재해 여부를 판단하려면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며 “공단 직원 1인당 업무가 너무 많기 때문에 충분한 조사가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민원을 줄이려면 보상 인력이 더 필요하다”며 “공단 직원이 현장에 나가서 직접 돌아보고 충분한 조사를 하면 불만을 가진 민원인이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충분한 인력을 주지 않으면서 어떻게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극단적인 민원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배경에는 산재노동자들에게 요양급여 지원이 끊긴 이후 제대로 된 생계와 노후보장 대책이 없다는 점이 있다. 임성호 한국노총 산업안전본부 국장은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 등 노후보장 체계가 제대로 안 돼 있는 상태에서 엄격한 잣대로 요양을 종결하면 산재노동자 입장에서는 박탈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단 인력과 제도적 보완도 주문했다. 임 국장은 “인력 부족이 서비스 부족으로 나타나고 산재노동자들의 이해와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며 “공단이 없는 인력에도 불구하고 부정수급 조사반을 만들어 무리하게 예산과 인력을 배정하는 것은 산재노동자의 불신을 키워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치료종결 이후 생계대책 없어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도 현재의 산재보상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최 국장은 “공단이 기본적으로 산재보상기금이 많이 안 나가는 쪽으로 정책을 몰고가다보니 강제 치료 종결이 발생하고 있다”며 “이런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산재노동자와 공단의 극한 대립은 앞으로도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공단 직원들의 감정노동에 대한 공단측 대책과 함께 공단 직원들의 산재노동자들에 대한 인식 개선 대책도 주문했다. 최 국장은 “공공기관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직무스트레스와 감정노동, 이로 인한 우울증도 큰 문제”라며 “이에 대한 공단 내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공단 직원들이 산재노동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공단 내부에서 해소하는 방안도 있어야 한다”며 “공단 직원이 산재노동자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산재 입증 책임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 주문도 나왔다. 노동계 관계자는 “가장 중요한 것은 산재가 아니라는 명백한 반증을 사업주와 공단이 제시하지 않으면 산재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재요양의 경우 병원에서는 더 이상 치료가 필요없다고 할지라도 환자 본인이 느끼는 고통과 불편함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단지 의학적 판단 기준만 가지고 재요양 불승인을 내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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