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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쇳조각이 박힌 채 살아온 선반공

김민호

공인노무사
(노무법인 참터 충청지사)

언젠가 식당에서 단체모임을 하다가 방송에서 머리에 총알이 박힌 줄도 모르고 살아온 어느 참전용사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방송을 보는 순간 과연 국가가 저 사람을 전상군경으로 보고 국가유공자로 인정할까라는 생각이 떠올라 무심코 옆 사람한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가 참석자들 사이에서 난상토론(?)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겨울 이와 비슷한 사례의 산재노동자가 상담을 해 왔다. 왼쪽 눈을 안대로 가린 작업복 차림의 선반공이었다. 그는 어느날 갑자기 왼쪽 눈이 아파서 병원에 갔다가 눈 속에 박혀 있는 아주 작은 쇳조각이 발견돼 쇳조각을 빼내는 수술을 받았지만 시력을 잃은 상태였다. 선반공은 작업 중 쇳조각이나 쇳가루가 눈에 들어가 동네 안과에 다닌 적이 몇 번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산재라고 여기고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신청을 했는데 불승인 통지를 받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공단은 선반공의 진료기록상 눈에 이물질이 들어가는 ‘안구사고’가 여러 번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오른쪽 눈에 대한 진료기록만 있을 뿐 왼쪽 눈에 대한 진료기록이 없고, 수술을 통해 빼낸 쇳조각이 작업 중 사고로 눈에 들어간 것인지 불분명할 뿐 아니라 설령 작업 중 사고로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여러 번의 안구사고 가운데 사고발생일이 언제인지 알 수 없는 등 재해경위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산재요양을 불승인했다.

그런데 정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 속에 쇳조각이 들어가는 게 가능할까.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 없었지만, 머리에 총알이 박힌 줄도 모르고 살았던 사람이라는 해외토픽이 떠올라 심사청구를 해 보기로 했다.

먼저 공장에 찾아가 동료 작업자들을 만났다. 동료 작업자 5명 가운데 4명이 작업 중 쇳조각이나 쇳가루가 눈에 들어가 동네 안과에서 진료 받은 적이 있을 정도로 안구사고의 위험이 높은 작업환경이었다. 그날도 작업자들은 보안경 없이 작업하고 있었다.

소견조회 결과 주치의는 아주 작은 쇳조각이 아주 빠른 속도로 눈에 튀어 들어가면 각막을 뚫고 들어갈 수 있는데, 순간 따끔거릴 뿐 눈을 깜빡여도 별다른 이물감이 없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치의는 또 뚫고 들어간 부위가 아주 작기 때문에 새지 않고 저절로 막히거나 그 부위에 따라 증세를 못 느낄 수도 있다고 했다.

주치의 소견에 힘입은 필자와 선반공은 수술을 통해 눈에서 빼낸 아주 작은 쇳조각 사진을 크게 확대해서 관찰한 끝에 쇳조각이 선반작업 때 나오는 소위 ‘쇳밥’이 아니라 금속가공물을 절삭하는 고속도 공구강(쇠붙이를 빠른 속도로 자르거나 깎는 공구)인 ‘드릴의 조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왜냐하면 수술을 통해 눈에서 빼낸 쇳조각은 나선형 모양의 쇳밥과 달리 ‘직선 형태’이고 크기도 1~2밀리미터로 쇳밥보다 작았다. 쇳밥은 절삭유가 묻은 상태에서 튀어 오르기 때문에 튀는 속도가 빠르지 않은 반면 드릴 조각은 선반으로 금속가공물에 구멍을 뚫다가 구멍에 꽉 낀 드릴을 빼내려고 망치로 드릴을 내려칠 때 드릴 끝이 미세하게 깨지면서 아주 빠른 속도로 튀어 오른다. 무엇보다 선반공이 과거 이러한 사고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쇳조각이 드릴 조각이라는 걸 입증하기 위해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에 수술을 통해 빼낸 쇳조각과 과거 공장에서 고속도공구강으로 사용했던 드릴의 성분분석을 의뢰했다. 다행히 드릴과 쇳조각 모두에서 고속도 공구강의 기본성분인 텅스텐(W)·몰리브덴(Mo)·크롬(Cr)·바나듐(V)이 모두 검출됐다.

하지만 드릴 조각이 언제 선반공의 왼쪽 각막을 뚫고 들어갔는지 정확한 사고 발생일을 알 길이 없어 추정해 주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이는 안구사고의 특성과 여러 번의 안구사고 때문이다. 공단이 이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단지 정확한 사고 발생일을 알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됐다. 다행히 선반공은 심사청구에서 산재로 인정됐다.

선반공의 최초요양신청에 대해 공단은 현장조사나 출석조사 없이 서면조사만으로 불승인을 통보했다. 서면에 담긴 질문들은 안구사고의 특성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었다. 노동자의 업무상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는 것은 산재보상제도의 목적이다. 공단의 존재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산재사건을 하다 보면 공단의 모습은 존재 이유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든다. 산재보험제도가 목적에 맞게 운영되려면 입증책임의 문제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등 제도개선이 이뤄져야 하겠지만, 산재 노동자와 산재사건을 대하는 공단의 태도 또한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머리에 총알이 박힌 줄도 모르고 살아온 어느 참전용사는 어떻게 됐을까. 결과는 모르나 그도 국가유공자로 인정됐길 바란다.

김민호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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