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우람 기자
“7년 가까운 세월 동안 긴 싸움을 버티게 한 것은 자존심이었습니다. 청춘을 바쳐 일했지만 ‘정리해고’라는 낙인은 무언가 부끄럽고 피해를 주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죠. 가족과 주위 사람들에게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코오롱은 지난 2005년 2월 생산직 직원 78명을 해고했다. 표면적으론 경영상의 이유였지만 강성 노조활동가들이 표적이 됐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이 중 28명이 희망퇴직을 했다. 나머지 해고자들은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정투위)를 만들었다.

이후 2천336일이 흘렀지만 그들은 여전히 해고자 신세다. 절반 이상이 투쟁을 포기하고 살 길을 찾아 떠났다. 20명만이 남아 기약 없는 싸움을 이어 가고 있다.

25일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최일배 정투위 위원장(43·사진)은 "떠나는 동료들을 잡을 명분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하다"고 안타까워했다.

“복직투쟁 500일을 맞았을 때 동료들과 작은 문화행사를 개최했는데요. 당시 쉰 살이 넘은 선배의 고등학생 딸이 무대에 올랐어요. 그 아이가 편지에 '가족을 위해 싸우는 아빠가 자랑스럽다'고 썼더군요. 얼마나 감동이었던지….”

정투위는 회사에 맞서기 위해 고압전선이 있는 전봇대에 올랐고, 회장의 자택도 찾았다. 그러나 계란으로 바위 치기, 소리 없는 메아리였다. 게다가 코오롱은 3년간 해고자들이 했던 업무를 담당할 직원을 아예 뽑지 않았다. 근로기준법상 해고한 날부터 3년 이내에 담당했던 업무에 우선적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조항(제25조)을 피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투쟁을 시작한 지 5년이 다돼 가자 고등학생 딸을 뒀던 선배는 복직을 포기했다. 그는 "아빠가 자랑스럽다던 딸이 이제는 아빠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오랜 복직투쟁 기간 동안 회사가 잠시나마 ‘꿈쩍’했던 때도 있었다. 2006년 최 위원장이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며 이웅렬 회장의 자택에 침입했다가 구금됐을 시기였다.

"사회적인 시선이 집중되자 회사가 처음으로 금전보상 얘기를 꺼내더군요. 그런데 액수가 터무니없었고,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절했죠."

회사가 대화 제스처를 취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회사는 철저하게 정투위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지금은 투쟁 초기에 정투위의 구호와 현수막을 눈엣가시로 여기던 회사의 태도가 그리울 정도라고 했다.

최 위원장은 얼마 전 빨간물이 빠진 조끼를 새로 하나 맞췄다. 해진 머리띠도 다시 샀다. 투쟁을 시작하면서 했던 '이 옷을 벗기 전에는 복직하리라'는 다짐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그 다짐을 포기하자 뭔가에 쫓기는 듯한 조급한 마음이 사라졌다. 그는 "다시 긴 여정을 앞두고 채비를 단단히 마친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매주 수요일 경북 구미에서 집회를 열고, 목요일에는 경기도 과천에 있는 본사에서 상경투쟁을 벌인다. 장기 투쟁기금 마련을 위해 28일 구미시 공단동 주공단지에서 여는 일일주점도 새 조끼로 갈아입고 난 후 기획한 행사다.

“복직만이 유일한 ‘목표’라는 마음은 사라졌습니다. 투쟁의 방향이 희미해졌다기보다는 크고 넓어진 것 같아요. 처음 세운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시간이 무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정리해고의 잔인함과 폭력성을 동료 노동자들과 시민들에게 각인시켰으니까요. 정리해고에 맞서 싸우는 것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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