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우리가 귀족노동자라고 생각하지?”

“귀족 노동자는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많이 받는 거는 사실이잖아요.”

몇 개월 전 금융노조 고위 관계자와 술자리에서 주고받은 말이다. 이 관계자는 귀족노동자라고 욕먹는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요즘같이 경제가 어려울 때 상대적으로 임금을 많이 받거나 고용이 안정된 노동자들은 쉽사리 공격의 대상이 된다. 이른바 개혁·진보를 자처하는 언론도, 금융이나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사정을 모른 척하는 경우가 많다.

알게 모르게 정부의 입김도 작용한다. 금융위기 극복을 이유로 공공기관에게만 권고했던 대졸초임 삭감이 그랬다. 대부분 시중은행이 도입했다. 초임삭감 문제가 해결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금융권 사용자들은 시중은행의 임금을 공공기관보다 적게 인상하려고 했다. 사용자들이 정부 눈치를 본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금융노동자들은 풀이 죽어 있다. 알아서 몸을 바짝 낮추기도 한다.

최근 제2의 금융위기설이 나오고, 상위 1% 금융자본을 향해 분노를 표출한 미국의 월가시위가 서울까지 상륙했다. 금융노조는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집회에 조직적으로 참가하지 않았다. 금융자본에 대한 분노가 자칫 금융 노동자들에게 돌아갈까 봐 우려했다고 한다. 정부의 눈 밖에 나서 막바지에 이른 임금협상에 미칠 악영향도 걱정했다.

때마침 금융위원회는 “금융권의 고배당과 높은 급여를 통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당연히 은행은 고배당을 자제해야 한다. 내부유보금을 안전하게 쌓아 두고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를 대비해야 한다.

하지만 급여까지 문제 삼는 것은 경우가 좀 다르다. 여론몰이가 우려된다. 애꿎은 금융노동자들만 다시 위기 극복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정부의 인식도 문제지만, 금융노동자들의 적극적인 자세도 필요하다.

금융 노사는 20일 산별중앙교섭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개선과 저소득층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선언’에 가깝다. 구체적인 계획은 보이지 않는다.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몰이는 한 번 불면 무섭다. 그렇기 때문에 ‘나눔’이나 ‘연대’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게 없다면 진보언론이 아무리 “그들도 노동자일 뿐”이라고 외치더라도 메아리로 돌아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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