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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에게 법은 ‘그림의 떡’

송영섭

변호사
금속노조
법률원장

“저기… 지금… 저놈들이… 내가… 숨을 쉴 수가….”

평소에 알고 지내던 노조 지회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매우 다급한 목소리였다.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수화기 너머로 거친 숨소리와 뜻 모를 단어들이 간간이 들려왔다.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노조 탄압이 극심한 사업장이고, 한때 지회장이 정신적 고통을 못 이겨 자신을 버리려고 했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머릿속이 하얘졌다.

수화기를 들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노조사무실에 지회장이 출근해 있는데 갑자기 회사 관리자와 어용단체 수명이 들이닥쳤다. 지회장은 당장 나가라고 소리쳤지만 그들은 “법대로 해 보시지?”라고 조롱하며 카메라로 사무실 여기저기를 찍고 서류들을 들춰 보며 난동을 피웠다고 했다. 지회장의 분노가 나에게도 전해졌다.

그들의 행위는 명백한 주거침입에 해당한다. 물론 그들을 고소했다. 하지만 그들은 벌금 정도의 형사처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법대로’ 대응한들 작정하고 달려드는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애당초 그들이 노조사무실에 침입할 때 지회장 혼자 지키고 있었던 것이 문제다. 그들보다 더 많은 조합원이 달려들어 그들의 무단침입을 막았어야 했다. 부당하게 노조를 넘보다가는 큰 희생을 치를 수 있다는 점을 각인시켰어야 했다.

하지만 노사 간 힘의 균형이 무너져 버렸다. 과거의 노조전임자들은 이제 모두 회사의 생산라인에 복귀해서 일해야 한다. 지회장마저 복귀하면 노조사무실을 지킬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그래서 지회장은 혼자 쟁의행위를 벌이며 노조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가차없이 달려드는 그들은 혼자 남은 지회장의 숨통을 조여 오고 있다.

10년 이상 노사관계를 규율해 온 단체협약도 사용자의 일방적인 해지통보로 하루아침에 휴지 조각이 됐다. 철저하게 계획된 노조파괴 시나리오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작동해 왔다. 사용자는 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해 노조간부와 조합원들의 성향을 분류했고, 전담자까지 두고 관리했다. 회사측 자문법률가는 “노조집행부에게 보다 큰 자극을 주어”서 결국 “집행부 존재의 근원을 제거”해야 한다는 망발을 서슴지 않았다. 결국 노조가 회사측을 부당노동행위로 제소했지만, 법은 노동자 편이 아니었다. 회사 관리자가 작성한 노조 관리전략에 대해 법원은 “충성심 강한 관리자가 개인적으로 작성한 것”이라는 회사측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법이 자기들 편이라는 것을 확인한 사용자는 좀 더 과감한 방법을 동원했다. 단협의 효력기간이 끝나 갈 무렵 사용자는 노조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없는 단협 개악안을 제시했다. 헌법은 노동자가 단체교섭권을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회사가 단체교섭권의 주체인 것처럼 당당하게 단협 개악을 요구했다. 노조가 이를 수용하지 않자 회사측은 단협 자체를 해지해 버렸다.

단협이 해지된 후 사용자는 노조파괴 본색을 드러냈다. 노조전임자 전원에게 업무복귀를 명령했다. 이를 거부하자 징계회부했고, 노조사무실 사용중단과 반환을 요구하면서 현장의 노조게시판을 철거했다. 전기와 물까지 끊었다. 많은 조합원들이 사용자의 탄압에 못 이겨 노조를 탈퇴했다. 회사는 노조를 탈퇴하면 징계에서 제외해 주겠다, 불이익이 없게 하겠다며 조합원들을 회유했다. 그럼에도 90여명의 조합원이 끝까지 노조에 남았고, 회사는 노조 조끼를 입었다는 이유로 조합원 한 명당 최대 수백장에 달하는 경고장을 보내 징계를 하겠다고 협박했다.

노동법은 노동자들을 위한 법이다. 헌법에 규정된 노동3권을 구현하기 위한 법이 바로 노동법다. 그러나 공장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는 사용자의 노조 파괴행위는 노동법을 보란 듯이 비웃고 있다. 나에게 전화를 걸었던 지회장은 지금도 초인적인 힘을 다해 노조 깃발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수의 조합원들이 이제는 노동자로서 자존심 하나 남았다면서 끝까지 함께하자고 벼르고 있다. 이들의 건강과 안녕, 행복을 기원한다.

송영섭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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