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차게 쏟아지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신을 “99%”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미국 뉴욕 월가뿐 아니라 서울의 월가인 여의도까지 점령했다.

‘여의도를 점령하라-금융수탈 1%에 저항하는 99%’ 집회가 열린 지난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위원회 앞. 300여명의 집회 참가자들과 취재진들이 한데 뒤엉켜 있었다. 너도나도 마이크를 잡았다. 각자 가져온 피켓을 들었다. 이들은 "금융자본과 대기업이 앗아 간 행복을 찾아 달라"고 호소했다.

저축은행 사태와 키코(파생금융상품) 등 금융 피해자들을 비롯해 KT노동자·쌍용차 해고자·흥국생명 해고자 등 노동자들과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는 대학생, 아고라에서 활동하는 누리꾼, 한미 FTA에 반대하는 시민, 한국에서 유학 중인 외국인이 한자리에 모였다.

올해 2월 대학을 졸업한 뒤 학자금 대출을 갚고 있다는 이선미(26)씨는 ‘등록금 쫌…’이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있었다.

“월가에서 시작된 시위가 전 세계로 퍼지고 있는데, 특히 한국에서는 1% 이하의 사람들이 99% 이상의 사람들의 삶을 점령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실상이 너무 화가 나요. 갚아야 할 학자금 대출이 수천만원이나 쌓여 있어요. 후배들은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홍(68)씨는 ‘아들을 살려주세요’라고 쓴 종이를 목에 걸고 있었다. 그는 토마토저축은행에 돈을 맡겼다가 후순위 채권으로 밀려 돈을 찾지 못하고 있다. 맡긴 돈은 정신질환과 백혈병을 앓고 있는 아들의 치료비라고 했다. 이씨는 “아들 치료비를 다 날리게 생겼으니 내가 왜 사는지 모르겠다”며 “국가에서 제대로 감독을 못해서 벌어진 일이니 국가에서 책임져야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오후 6시께 ‘분노하는 99%, 서울광장을 점령하라’는 행사가 예정된 서울시청 광장. 집회를 불허한 경찰은 광장 진입을 봉쇄했다. 사람들이 광장으로 들어가려 하자 전경 수백명이 막아섰다. 서로 밀고 밀리는 실랑이를 하다 결국 대한문 앞에서 시위가 진행됐다. 600여명의 시민들이 대한문 앞 거리를 가득 메웠다.

촛불이 하나 둘 씩 켜지고 노래공연과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자신을 교사라고 소개한 김연오(30)씨는 “1%를 위해 99%가 희생하는 세상을 우리 아이들과 제자들에게 물려줄 수 없다”며 “진정한 교사라면 부당함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종이박스에 쪼그려 앉아 있던 대학생 김정배(26)씨는 “지하에 사는 두더지처럼 꽉 막히고 답답한 심정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살인적인 등록금, 좁은 취업문에 주위 친구들과 선배들은 고시원이나 지하방 같은 데서 살고 있습니다. 청춘을 억압받고 있어요.”

비가 다시 쏟아졌다. 주최측은 1박2일 집회를 기획했지만, 오후 9시께 해산을 결정했다. 사람들은 다음번 '점령 집회'를 기약하며 자리를 떠났다.

거대 금융자본에 쥐꼬리만한 저축이자를 받고 거액의 대출이자를 줘야 했던 99%의 사람들. 재벌 대기업에게 청춘을 바쳤다가 일자리를 잃어버린 서민들. 그들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점령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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