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노무사

유연한 태도로 조직에 잘 적응하는 것을 미덕으로 평가하는 현실에서, 개별 노동자가 노조라는 집단화된 조직을 통하지 않고 사용자에게 기업 운영상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꼭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계를 전제로 하지 않더라도, 누군가 이치에 맞는 문제를 제기하면 “그래, 너 잘났다”하는 식의 비아냥을 듣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또는 어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내 부당함을 제기한 노동자가 더 큰 부당함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목격한 더 많은 노동자들은 결과적으로 부당함에 대한 침묵을 강요받게 된다.



A씨는 B버스회사에 고용된 버스운전 노동자다. 30년 이상 운전만 해 온 이 노동자는 늦은 나이에 B회사로 이직해 성실하게 근무를 했다. 그러던 중 B회사의 탈법적 기업운영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침묵하지 못하고 관리자에게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A씨의 문제제기는 관리자들과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관리자들은 버스운전업의 특성상 종종 발생되는 일반적인 문제에 대해 유독 A씨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적용했다. 예컨대 다른 노동자와 달리 A씨에 대해서만 운행 차량의 블랙박스를 면밀히 검토해 과속이나 신호위반 사항 등을 적발하기 시작했고(범칙금이 부과된 공식적 위반사항이 아님), 승객으로부터 불만이 접수될 경우 타 노동자와 달리 유독 A씨에 대해서는 이를 전사적으로 공식화했다.

A씨가 이러한 관리자들의 압박에 반발해 충돌이 발생하자 회사는 규정 위반과 관리자에 대한 욕설 등을 이유로 A씨를 징계했다. 이에 A씨는 징계를 행한 회사의 탈법적 기업운영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하며 맞불을 놓았다.

A씨의 동료 중에는 A씨를 심정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도 있었고, 반대로 A씨의 문제제기가 직장을 시끄럽게 한다며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A씨와 회사의 문제에 개입하려 하지 않았고, A씨는 회사 안에서 고립돼 갔다. 1년여의 시간이 흐른 후 결국 회사는 A씨를 해고했고, A씨는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다. 지노위는 누적된 징계 전력과 풀리지 않는 갈등으로 수차례 발생한 관리자와의 충돌을 이유로 A씨에 대한 회사의 징계가 정당하다고 판정했다.

사실 A씨가 회사에 요구했던 내용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회사에 탈세 등 탈법적 운영을 중단하고 지나치게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해 달라고 요구했을 뿐이다.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는 지나친 행동이 취해졌을 수도 있고, 관리자와의 인간적 갈등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기업의 구성원으로서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문제였던 것이다.

하지만 회사의 부당함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던 A씨는 오히려 해고라는 더 큰 부당함에 빠졌고, 어느 누구도 A씨를 보호해 주지 못했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노조를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 또는 그 연합단체"라고 정의하고 있다. A씨처럼 부당함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노동자들이 더 큰 부당함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 그리고 부당함에 대한 침묵을 강요받는 노동자들의 입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야말로 노조의 1차적 필요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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