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

일본을 지칭할 때 흔히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표현한다. 한국과 일본의 겉모습이 비슷해 보여도 실제로는 너무나 다르다는 의미다.

노사관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양국의 노동법을 비롯한 노사관계제도, 고용과 실업 등 노동시장 상황은 서로 비슷하지만 노조에 대한 정부와 사용자의 태도는 판이하다. 지난 4~5일 도쿄 인터내셔널포럼에서 열린 제12차 렌고(일본 노총) 대의원대회에서도 이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대회에서 결정된 향후 2년간 렌고의 활동 우선순위는 조직확대·비정규직 노동조건 개선·양질의 노동 실현·성평등 촉진·정치활동 강화 등이다. 한국 노동운동이 처한 과제와 유사하다.

그러나 이번 대회와 축하연에 참석한 정부와 사용자의 태도는 한국과는 크게 달랐다. 특히 노다 요시히코 총리의 축사에서는 일본 정부가 렌고를 진정한 정책파트너로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 곳곳에서 감지됐다. 단지 렌고가 민주당 집권의 최대공로자이자 현 정부의 가장 강력한 지지기반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정권교체 이전 역대 일본 자민당 정부 역시 렌고를 게이단렌(經團聯)과 같은 지위의 대화상대로 존중해 왔다. 일본 정부와 사용자가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을 무난히 극복하고 경제활성화를 이룩하게 된 이면에 렌고의 역할이 컸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렌고가 일본 정부의 정책을 지지하고 실질적인 원조자가 된 것은 정부가 오랜 세월에 걸쳐 렌고를 진정한 대화상대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동북지역을 강타했던 파괴적 지진과 원전사고 이후 열린 이번 대회에서 2년 임기 위원장으로 재선된 코가 노부아키 렌고 위원장은 노다 정권의 에너지정책에 보조를 맞출 것임을 시사해 주목을 끌었다.

사실 지난 몇 달간 렌고는 에너지정책과 관련해 산하노조 간에 의견이 분분했다. 원전 추진부터 탈원전에 이르기까지 첨예한 의견대립으로 의견 조율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코가 위원장은 “다시 사고가 일어나면 막대한 피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강조함으로써 이미 ‘탈원전의존’ 방침을 표명한 노다 정권의 정책에 보조를 맞췄다. 이는 일례에 불과하지만 그동안 렌고가 정부시책의 강력한 조력자가 됐던 것은 노조를 대등한 파트너로 인정하면서 형성된 ‘상생의 노사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한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한국 정부와 사용자는 기회만 있으면 노동법 개악과 노동탄압에 혈안이 돼 왔다. 노동계의 요구를 철저히 무시한 채 강행한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로 현장에서 어용노조가 양산되고 혼란과 갈등이 가중되고 있는데도 이 제도를 미화하고 여론을 호도해 자화자찬에 급급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슨 노사화합과 노사상생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최근 한국 정부는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국제회의를 유치하고 있다. 각국의 노조간부가 참석한 관련 회의도 몇 차례 열렸다. 지난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맞춰 G20 노조회의가 서울에서 개최됐다. 오는 11월 부산에서 제4차 개발원조 고위급 포럼에 맞춰 관련 시민사회포럼이 열리는데, 각국의 노조 대표단이 대거 입국한다. 외국의 노조대표가 개탄스런 한국 노사관계 현실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게 될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렌고 대의원대회에 참석한 외국노총 대표가 일본 정부와 사용자의 노동에 대한 존중을 몸소 느낌으로써 일본 정부에 대한 이미지가 쇄신된 것과는 정반대로, 한국을 방문한 외국 노조대표들은 한국 정부와 사용자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만 안고 돌아갈 것이다.

이제 정부와 사용자는 일본 노사관계를 교훈 삼아 노조를 진정한 정책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 “재건과 복구작업에 최선을 다하고 안정된 사회를 건설하자”는 렌고 대의원대회의 슬로건처럼 노조가 정부시책에 호응하고 국익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기대한다면 무엇이 우선순위가 돼야 할지 한국 정부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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