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20.1.19 일 08:00
상단여백
HOME 칼럼 한지원의 금융과 노동
경제위기와 재벌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세계경제가 다시 요동치고 있다. 그리스의 디폴트가 초읽기 상태에 돌입하자 그리스 채권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프랑스 금융기관들에 대한 신용도가 하락하고 있으며, 이들 프랑스 금융기관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모건스탠리와 같은 미국 은행까지 동반 위기에 빠졌다. 지난해부터 위기설이 끊이지 않은 이탈리아 역시 최근 국제신용평가기관들에 의해 신용등급이 크게 강등되며 국가 부도위기 직전까지 내몰리고 있다.

미국 경제는 고실업·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정부부채 위기로 경기 활성화를 위한 재정정책 수단마저 상실한 상태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미국이 이미 더블딥 상태로 빠졌다고 진단하고 있다. 루비니와 같은 경제학자는 1930년대와 같은 대공황이 목전에 다다랐다고 전망하고 있기도 하다.

한편 경제위기가 세계를 휘감고 있지만 한국의 재벌 대기업들에 대한 전망은 여전히 밝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와중에도 한국의 30대 재벌은 33조원의 순익을 거뒀고, 2009년에는 46조원, 지난해에는 79조원의 순익을 거뒀다. 세계 경제위기를 겪으며 더욱 크게 성장했다는 것이다. 올해도 3분기 현재 현대자동차가 지난해보다 7.5% 많은 차를 판매하는 등 지난해 이상의 이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재벌들은 세계 경제위기가 격화돼 신용경색이 발생할 것을 대비해 막대한 자금을 확보해 두고 있다. 올해 상반기까지 상위 10개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은 348조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5조원 가까이 늘어났다.

한국의 재벌들이 경제위기에 강한 이유는 한국 경제 전체가 이들 재벌들에게 종속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국민경제 속에 재벌 대기업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재벌 대기업 속에 국민경제가 있다. 98년 IMF 위기 때 재벌들의 부채를 모두 정부가 떠안아 줬고, 2008년 경제위기 때는 수출 확대를 위한 고환율 정책과 법인세 감면, 재벌기업 제품을 세금으로 사 주는 소비보조까지 지원했다. 세금으로 재벌의 곳간을 채워 준 것이다. 재벌들이 1% 돈을 덜 벌면, 위기라고 호들갑을 떨며 2% 더 지원해 주는 정부 경제정책으로 위기 때면 재벌들은 오히려 흥이 난다.

이런 가시적 지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제위기가 닥치면 재벌 대기업들은 더욱 가혹하게 중소기업들의 납품단가를 후려치고, 노동자들의 임금은 삭감하고, 비용을 들먹이며 해외생산을 확대한다. 그리고 정부는 이를 방치하며 재벌들을 간접적으로 지원한다.

지난해 최고의 한 해를 보낸 재벌 대기업과 달리 대부분의 하청기업들은 영업이익이 줄어들었다. 그래도 약간의 가격교섭력을 갖춘 1차 하청은 상황이 괜찮은 편이다. 영세해 실태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2·3차 하청 기업들은 재벌 대기업이 1차 하청에 1원의 단가를 낮추면, 납품가를 2원 이상 낮춰야 한다. 안산·창원 등의 공단에 밀집해 있는 영세 부품사들은 재벌들이 창사 이래 최고의 한 해를 보낸 지난해에 오히려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 비중이 줄었다.

노동자들의 임금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제조업기업들의 생산품은 결국 재벌 대기업을 통해 최종 소비재로 판매된다는 점에서 재벌 대기업의 비용절감 정책은 대부분 노동자의 임금과 연결된다. 30대 재벌 대기업의 매출액은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95% 가까이 차지하는데, 재벌 대기업 매출 대부분이 수출이거나 국내에서 판매되는 최종 산출물이라는 점에서 결국 한국 경제의 95%는 이들 30대 재벌을 통해 최종적으로 실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3년간 한국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동결 또는 삭감됐는데, 이는 경제위기를 빌미로 한 재벌 대기업의 비용절감 정책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각종 세금지원과 국민경제 전체를 수탈한 재벌들은 그 돈으로 해외공장을 확대했다. 2007년 현대차와 기아차는 국내생산 비중이 각각 65%, 82%였지만 지난해 이는 48%와 66%로 줄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와 LCD 패널 정도를 제외하면 국내생산 비중이 절반을 넘는 제품이 없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다는 삼성전자 TV는 국내생산 비중이 3%도 되지 않는다. 휴대폰도 25% 이하다. 그리고 이렇게 해외에서 생산된 재벌 대기업들의 제품은 재벌의 이익에는 크게 기여하지만 국민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미미하다.

이번 경제위기 역시 예전과 같이 재벌들에게는 또 한 번의 기회가 될 것이다. 정부는 각종 지원을 할 것이고, 국내산업 전체는 재벌 대기업의 비용삭감 정책으로 수탈당하고, 노동자들의 임금은 재벌 대기업 노동자 일부를 제외하고는 삭감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에서 경제위기 대책은 바로 재벌에 대한 통제방안에서 찾아야 한다. 재벌의 부를 사회화하고, 재벌의 고용·투자를 정부와 노동자들이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유럽과 미국의 경제위기와 서민의 고통이 거대 은행으로부터 발발했다면 한국의 경제위기와 서민고통은 재벌로부터 발발한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한지원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지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