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웅

성공회대
사회과학
정책대학원 교수

진보신당은 주력이 탈당하고 와해 직전이다. 탈당파들이 만든 통합세력이 새로운 통합진보정당 추진위원회(새통추)에 가입신청을 냈기에 진보대통합의 새로운 양상이 전개된다고 하지만 대중들의 관심은 여기에 있지 않다. 당장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한국 정치판의 새로 짜기가 될 것인가 아닌가가 최대의 관심사다. 진보진영은 이렇게 되고 말았다.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는 이제 무소속이 아니라 시민소속 후보가 됐고, 야권 단일후보로 커다란 동력을 얻고 있다. 박원순 당선에 민주당까지 책임을 지게 됐고, 향후 야권 공동정부구성까지 내다보이고 있으니 괜찮은 그림이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서울시장 석패는 이제 역전의 경로를 가는 길목이었다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한나라당 지배체제가 점령하고 있는 정치가 탈환되는 시작이 서울시장 선거가 될 것이니, 여기에 총력을 기울이면 우리는 새로운 정치사를 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뉴욕 월가에서 시작된 “Occupy the Wall Street”는 자본이 점령하고 있는 공간과 기회를 시민들에게 돌려주자는 운동이다. 서울시와 여의도, 그리고 청와대까지 시민들이 점령하는 운동이 펼쳐진다면 이것은 그야말로 중대한 변혁이 가동되는 것이 된다.

이건 희망이다. 박원순 후보가 지금껏 보여 왔던 능력과 아이디어, 그리고 인간성 그 모두는 서울시정에 투입돼 새로운 도시모델이 창출될 것이 기대된다. 그의 승리가 확신되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현상은 이 승리로 가는 길에 시민들의 적극적인 개입과 참여가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돈을 내고 시간을 내고 권리를 행사했다. 여기서 시민들의 주체적인 정치건설이 이뤄진 것이다.

결국 오늘날의 정당체제가 빠져 있는 구태의연함을 깬 것은 시민들의 정치가 됐다. 진보정당 역시 마찬가지다. 시민들의 정치적 관심과 주체적 참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면 진보정당의 정치적 수명은 더 이상 연장되기 어렵다. 박원순 현상은 바로 이 진실을 모두에게 일깨우고 있는 것 아닌가.

역시 권력은 민중에게서 나온다. 권력은 깨어 있는 시민들의 입과 손에서 나온다. 이들이 발언하고 이들이 행사하는 그 모든 권리와 주장, 그리고 요구가 한국정치의 알맹이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이걸 모르면 그 순간 누구든 낡은 세력, 낡은 인물이 되어 자기도 모르게 청산되고 만다.

시대의 변화 속도는 너무도 급격해서 일단 낡으면 다시 복구되기 어려울 지경이다. 물론 자기 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지만 대세라는 게 있다. 안철수 현상 이후 그걸 넘어설 수 있는 인물과 세력은 아직 없다. 일단 그렇게 정점에 있게 되면 그걸 타고 넘는 일은 간단치 않다. 박근혜의 동요는 바로 그런 상황을 여실히 보여 준다.

서울시장 선거에 박근혜의 지원이 이뤄질 것이라고 하나, 과연 그게 얼마나 힘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른바 박근혜 약발이 남아 있다고 하나, 과거와 같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건 박근혜 자신의 대권가도에도 장애가 되고 말 것이니 만만치 않은 딜레마에 처할 것이다.

돌파가 어려울 것이라고 봤던 정치상황이 이렇게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한국의 현실에서 이러한 정치속도는 어쩔 수 없는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빨리빨리’ 밀고 나가는 현대 한국인들의 속성에 가장 알맞은 정치현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다. 그간 억눌려 왔던 요구가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결과다.

도처에 분노투성이 아닌가. 영화 '도가니'만이 아니지 않는가. 등록금·재개발·저임금·비정규직·검찰·언론 등 여기저기에 우리가 청산하고 극복해야 할 바가 수두룩하다. 이걸 푸는 기본열쇠는 정치다. 정치를 바로잡으면서 우리가 전망하고 있는 미래를 세우기 위해 이제 무얼 해야 하는지 확실한 그림을 그려야 한다.

모두가 정치의 잔치를 벌이려 하는데 진보세력은 진창에 빠져 있는 느낌이다. 시민정치의 중심축이 되려면 진보세력은 무얼 해야 하는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생각을 재정리해야 하는 요즈음이 아닐까.



성공회대 사회과학정책대학원 교수 (globalize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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