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드롬’이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이 퍼뜨린 증후군이다. 서울시장 후보 불출마를 선언하기 전까지 며칠 사이에 서울시장 후보군에서 단숨에 수위로 떠올랐다. 그의 표는 지지를 표명했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고스란히 넘어갔다. 수차례 대통령 선거에 나설 생각이 없다고 분명하게 밝혔지만 오히려 여론조사에서는 대세론이 굳어진 것처럼 보였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앞질렀다. 때문에 안 원장이 지난 6일 불출마 기자회견장에서 “지난 5일이 1년 같았다”고 한 말은 오히려 역설로 들린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넘어 총선과 대선이 치러지는 2012년을 뒤엎은 5일로 기억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여야 가릴 것 없이 당황하고 있다. 정당정치의 종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통합이라는 벽 앞에서 주저하고 있는 진보정당은 이중의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진보정치가 구태정치를 혁신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옛것을 고수하는 오래된 정치권으로 덧씌워질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진보정치를 꿈꾸는 사람들은 ‘안철수 신드롬’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진보정당이 할 일 못한 때문”
강상구 진보신당 대변인

강상구

진보신당 대변인

‘안철수 신드롬’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국민의 폭발적 지지와 호응으로 드러났다. 무엇보다 안철수 교수가 물리적·조직적 실체를 갖고 있느냐 여부보다는 ‘반한나라당 비민주당’을 내세운 안철수에 대해 대중의 반응이 뜨거웠다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이런 것은 진보정당이 했어야 할 일이나 진보정당이 하지 못하니까 안철수 같은 인물에 호응을 하는 것이다.

안철수는 일종의 성공신화의 표상이다. 의사에서 벤처기업가로 성공하고 이후 나이 들어서도 유학을 가는 용기를 보여줬다. 이런 사례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사회의 결과이기도 하다. 대중은 신자유주의 사회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만큼 그런 모범사례에 열광하는 것이다. 여기에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공백, 그리고 진보정당이 이를 채우지 못한 문제가 더했다.

그런 만큼 앞으로 진보정당은 이 같은 대중의 요구에 밀착하면서 반한나라당 비민주당 속에서 성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반신자유주의 또한 분명히 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폐해 속에서 안철수를 선망할 수밖에 없었던 대중의 열망을 우리가 채워야 한다.


“기성 보수정치권 염증서 비롯”
신창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

신창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

‘안철수 신드롬’은 기성 보수정치권에 대한 염증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양당정치에 염증을 느낀 수많은 사람들이 지지하고 호응했다.

또한 이에 호응했던 이들은 정치에 아예 담 쌓고 무관심 속에서 지내는 게 아니란 게 드러났다. 그간 달리 자신의 욕구를 분출할 곳을 찾지 못하다가 안철수 교수를 계기로 폭발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들은 이른바 ‘야성’ 지지자들이다. 그간 민주당이 좋아서 지지한 게 아니라 달리 방법이 없어서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지지했다가 이번 기회에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예다.

한 언론사 설문조사에서도 나왔지만 안철수 지지자의 70% 이상이 박원순 변호사 지지로 갔다. 안철수 신드롬의 반한나라당에 대한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던 것이다.

진보정당이 진보대통합을 하려는 이유도 바로 그런 사람들을 안으려고 했던 것이다. 사회의 변화를 갈망하는 이들을 품어 안기 위해. 하지만 진보대통합은 지지부진하고 내부분열 속에서 폭을 넓히지 못했다. 사람들은 진보정당 역시 구시대적 정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진보정당은 이들의 욕구를 반영할 정당의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요구를 부여받은 것이다.


“안철수 신드롬, 반면교사 삼아야”
이승철 민주노총 정책국장

이승철

민주노총 정책국장

안철수 신드롬을 보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 그 자체만으로도 정치적 상품화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조금만 따져보면 안철수 교수는 기존에 등장했던 깨끗하고 혁신적인 이미지의 정치 신인들과 큰 차별성을 갖지 않는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안철수에 열광하고, 그 중엔 적지 않은 노동자가 포함돼 있다. 기존 정치판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면서 안철수라는 인물이 부상하고 정치상품으로서 가치가 극대화되고 있는 것이다.

보수에 대한 실망이나 비판이 곧바로 진보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특히 진보진영의 자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민주대연합이네, 진보대통합이네 하는 다양한 논의가 진보진영 내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통합 자체에 무게중심이 가면서 통합 이후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제시된 바가 거의 없다.

이 지점에서 진보진영은 고민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안철수 현상을 보면서 우리도 ‘인물론’으로 승부하자고 결론 낼 것인가. 하지만 인물론은 근거가 희박한 희망이나 기대감에 의존하겠다는 발상에 불과하다.

진보진영은 안철수 현상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제2, 제3의 안철수 찾기에 나설 것이 아니라, 정치적 실체와 내용으로 우리만의 정치상품을 만들어 내야 한다. 안철수를 보며 ‘우리는 안 돼’라고 자조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편가르기, 색깔 입히는 정치 벗어나라는 뜻”
한정애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장

한정애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장

‘철수바람’이 한바탕 휘몰아쳤다. 단지 초등학교 교과서에 쓰인 것처럼 “철수야 학교가자”로 끝이 날 것 같지는 않다. 우리사회에서 신뢰 할 수 없는 부류로 자리잡은 정치인들, 정치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편 가르기, 이념의 색깔 덧칠하기에 염증을 느낀 이들이 원하는 것이 ‘철수’라는 이름으로 대변할 수 있는 그 어떤 인물이 아니었나 싶다.

아이들에게 안전한 점심 한 끼 먹이자는 것에 색깔을 덧칠하는, 또 그 밥 한 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이 우리의 정치현실이다.

도대체 정치라는 것이 어디에 써 먹어야 하는 도구인지를 다시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왜 많은 이들이 안철수를 보며 열광하는 지, 그 이유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다면 우리 정치는 앞으로도 실패를 반복할 것이다.

안철수 바람이 주는 의미는 피로감 외에는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는 정치 논쟁, 편 가르기, 색깔론을 앞세운 이념논쟁의 늪에서 빠져나오라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도록,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타협을 통한 정치를 하라는 것, 바로 그것이 아닐까.


“인물도 중요하지만 정치공약을 봐야”
이상무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이상무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정보기술(IT)혁명이 있어서 그런가. 안철수 바람의 진원지가 어디인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동안 안철수씨가 해왔던 일을 봤을 때는 (대중들이) 호감을 느낄 만한 것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분이 과연 정치를 할 때 어떤 입장을 갖고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국민들에게 잘 알려진 게 없었던 것 같다. 갑자기 서울시장 후보·대선 후보로 부각되고 집중 조명을 받고 있는 배경에는 어떤 기획 같은 것이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인물과 그 사람이 그동안 살아온 행적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이 시대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정치공약을 봐야 한다. 노동자들이 십수년 동안 끊임없이 외쳐온 정리해고·비정규직·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확실한 자기 철학이 있고, 이것을 위해서는 어떤 고난도 감수하겠다는 사람이 필요하다. 신자유주의가 아닌 최소한 노동하는 사람들이 지금처럼 고통 받으며 살아가지 않도록 하겠다는 명확한 공약과 자기실천의지를 갖고 나오는 인물이 필요하다.

특히 그 인물 주변에 포진하고 있는 사람들 역시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한다. 대선 후보든 총선 후보든 후보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행적도 같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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