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도공사가 뭇매를 맞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KTX 사고 탓이다.

지난달 31일 부산에서 서울로 향하던 KTX가 또 멈춰섰다. 경북 칠곡군 지천역 근처를 지나다가 갑자기 사고가 발생했다. 전원공급이 4~5분 동안 중단돼 승객 200여명이 어둠 속에서 불편을 겪었다.

KTX가 고장철이 된 지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KTX 산천’은 지금까지 무려 41건의 사고를 일으켰다. 국내 기술로 개발된 KTX 산천은 지난해 3월부터 경부선과 호남선에 투입됐는데 운행 정지와 저속 운전을 되풀이하고 있다. 저속철·고장철이라는 비난이 나온 배경이다. 망신살은 해외까지 뻗칠 지경이다.

이쯤되니 철도공사는 KTX 산천을 제작한 현대로템에 리콜을 요청했다. 충분한 시험 운행을 하지 않은 것은 발주사인 공사의 책임도 있는데도 현대로템으로 비난의 화살을 돌린 것이다. 또 공사는 최근 운행축소·검수확대·부품교체 시기 단축이라는 사고대책을 내놓았다. 공사의 대책 발표를 비웃기라도 하듯 경북 칠곡에서 사고가 또 났다. 공사의 대책에 허점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문제는 사고 원인으로 정비 불량이 지적됐음에도 해당 인력을 증원하겠다는 얘기가 없다. 되레 공사는 철도 시설보수와 유지를 외주업체에 위탁하겠다는 계획만 제시했다.

이달 말 개통 예정인 KTX 전라선 일부 구간의 시설 유지보수는 민간업체에게 넘어갔다. 정비인력을 증원하랬더니 아예 민간업체에 맡긴 것이다. 그렇다면 민간업체로 넘어가면 안전할까. 선로에 문제가 생기면 공사 직원이 먼저 파악한다. 사업소에 이를 알리면 민간업체로 일이 떨어지는 구조다. 문제 발견에서 대처까지 신속하게 처리돼야 함에도 거쳐야 할 단계가 늘어났다. 효율화한다더니만 업무만 이중화시켜 신속한 사고대처를 어렵게 한 셈이다.

이러면서 공사는 경영실적 개선을 이유로 지난 2009년 5천115명의 정원을 감축했다. 이 가운데 3천여명이 정비인력이다.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에 따른 정원감축 지침을 따른 것이다. KTX 운행 구간과 횟수가 늘면서 신규인력 수요가 느는데 엉뚱하게도 정원을 감축했다. 그것도 안전과 직결되는 정비인력에 대해 감원이 집중됐다.

안전에 구멍이 났다면 경영진이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철도 전 구성원의 힘이라도 모아야 한다. 그런데 철도공사 경영진은 직원들에 대해 채찍만 들기 바쁘다. 행태는 옹졸하기 그지없다. 공사는 최근 KTX 고장사고와 관련해 방송사에 제보한 직원 2명에 대해 중징계를 내렸다. 방송사 인터뷰에 응한 노조간부에게는 명예훼손 혐의로 1억원의 손해배상까지 청구했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제보한 것임에도 마치 영업비밀을 유포해 회사의 품위를 떨어뜨린 것처럼 취급했다.

공사 경영진의 납득하기 어려운 행태는 또 있다.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려 노력하지 못할망정 꼼수마저 부리고 있다. 지난 1일 고등법원에서도 “KTX 여승무원은 철도공사의 근로자”라는 판정이 나왔는데 공사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

공사는 대법원에 상고할 의사까지 밝혔다. 이미 지난 2008년 12월 서울중앙지법이 근로자지위인정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다. 고법의 판결은 시일을 끌었을 뿐 예상된 것이었다. 공사는 여승무원에게 매달 180만원의 임금을 지급하면서도 복직은 안 된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KTX 여승무원들이 지난 2008년 10월 법적소송에 주력하겠다고 하자 공사측도 법원 판결에 따른다고 하지 않았나. 공사측의 약속 뒤집기는 상도에 어긋난다. 소송에서 세 번을 졌으면 이제 승복해야 한다.

이처럼 말 뒤집기를 하는데 시민들이 공사의 '사고철 대책'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철도공사는 앞으로 2천여명의 정원을 더 감축해야 한다. 철도공사가 운신을 하지 못하는데는 정부 책임도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선진화정책으로 정원감축을 밀어붙이면서 뒷짐만 지고 있다. 정부가 사태를 키우고 있는 셈이다.

고장철·저속철·사고철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공사와 정부부터 변해야 한다. 빈발하는 사고를 막기 위해 정비인력 부족을 호소하고,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경영을 선언해야 한다. 노사 안정과 서비스 품질을 높이기 위해 KTX 여승무원도 원직 복직시키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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