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약 1만건의 심판사건이 노동위원회에 접수된다. 해고를 포함한 부당징계나 부당노동행위를 당한 노동자들이 사실상 마지막 희망을 담아 노동위원회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상담을 할 때 고용노동부나 노동위원회 절차를 통해서는 실익이 거의 없어 민사소송절차를 제안해 드리면 “방법이 없다는 말씀이네요”라는 반문을 듣게 되는 경우가 꽤 있다. 그만큼 법원 소송절차가 일반노동자들에게는 여전히 너무 높은 벽인 우리 사회에서 노동위원회의 연간 1만여건이라는 사건수는 대단히 의미 있는 수치다.

더욱 놀라운 것은 노동위원회가 ‘분쟁해결률’이라고 부르는 약 95%라는 숫자다.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를 거치면서 사건이 취하되거나 화해하거나 불복하지 않아 판정이 확정되는 사건수가 접수 건수 대비 95%에 이른다. 그 내용이나 속사정이야 어떠하건, 어쨌든 1만건 중 무려 9천500건이 노동위원회 절차를 통해 종결되고 있다는 것이다. ‘1만건’과 ‘95%’, 이 두 수치만으로도 노동분쟁사건에 대한 노동위원회의 영향력을 충분히 가늠해 볼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노동위원회 제도에 보다 큰 주목을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노동위원회는 외국의 유사기구들이 노동쟁의 조정과 부당노동행위 심판을 주로 담당하고 있는 것에 더해 부당해고 등 심판이라는 상대적으로 특유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근래에는 차별시정 심판과 필수유지업무 결정, 올해부터는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관련 결정업무까지 더해져 갈수록 노동위원회의 기능과 권한이 커지고 있다.

이렇듯 중요하고 많은 기능을 수행하는 기구임에도 노동위원회 제도 및 운영에 대한 각종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은 무엇보다 기구의 위상이 올바르게 정립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위원회 스스로도 ‘노사공 3자 합의제(협의제) 행정위원회로서 준사법기구’라 자칭하고 흔히들 그렇게 위상과 성격을 규정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문제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

수년간 50% 가까운 수치를 보여 왔던 부당해고 인정률이 2008년부터 감소하더니 지금은 20%대로 급락했다. 15~20% 수준을 유지해 왔던 부당노동행위 인정률은 현재 채 3%도 되지 못한다. 노사자치주의 원리상 거의 사문화돼 처리건수가 연간 서너 건에 불과했던 단체협약 시정명령 의결사건이 작년 한 해만 94건에 그 인정률(노동청의 신청을 받아들인 비율)은 거의 100%다.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신속하고 효율적인 구제를 첫 번째 존재의의로 하고 있는 노동위원회 내에서 이제 부당노동행위는 교과서에서나 존재하는 이론일 뿐이다. 노동3권 침해 당사자인 노동자가 제기하는 구제신청사건에서는 존재조차 부정당하는 부당노동행위가 노사 합의로 체결된 단체협약에 대한 시정명령사건에서만 모조리 인정되는 이 비상식적인 모습이 오늘 노동위원회의 참담한 현실이다.

순수한 행정기능이 아니라 준사법 기능을 수행하고 행정관청의 독단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 관료가 아닌 외부 전문가들과 노사관계 당사자들을 위원으로 위촉한 것이고, 이들 위원들이 심의·운영하는 기구여야 하는 것이 노·사·공 3자 합의제 위원회로서의 올바른 모습이다. 그런데 노사위원들은 위원이라는 명패가 무색하게도 사실상 아무런 의결권이 없고, 그나마 의견진술권 등의 개입권한도 더욱 축소되고 있다. 노동위원회 내 노·사·정 간사회의 등의 틀을 통해서라도 노동위원회 운영을 함께 논의해 왔던 구조조차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다. 노·사·공도 아닌 정(政)의 일방적 운영만이 행해지는 노동부 산하 단순 행정기구로 전락해 있다.

공익위원에 대한 노사단체의 실질적 추천권이 박탈된 2007년 이후 공익위원 대다수는 노동위원회 추천인사들로 바뀌었다. 노동부 행정해석 따위는 말할 것도 없고 때때로 보수적인 판례에 반하더라도 결국은 그러한 판례조차 바꿔 냈던 소신 있는 판정들, 노동위원회의 심판원리와 존재의의에 부합하는 결정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5대에 걸쳐 유지돼 온 외부인사의 중노위 위원장 위촉이라는 노동위원회 독립성 보장의 상징적 관행 역시 지난해 노동부차관의 위원장 취임으로 깨졌다. 타임오프 제도 관련 단협 시정명령 의결,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관련 노동위원회규칙 개정과 쟁의조정 신청에 대한 행정지도, 주요 정리해고나 쟁의행위사건에 대한 편파판정 등 근래 각종 현안에 있어 노동위원회는 노동부 방침의 최선두 돌격대로서의 역할을 부끄럽게도 충실히 자임하고 있다. ‘과천’만 바라보는 ‘노동위원회 사람들’은 그게 왜 부끄러운 것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개인적으로는 위상의 올바른 정립과 입법취지에 충실한 운영만 이뤄진다면 노동자 권익구제와 노사관계 분쟁해결을 위한 참으로 보석 같은 제도가 노동위원회 제도라 생각해 왔다. 다소 즉자적인 노동위원회 해체 주장이나 실현 로드맵 및 구체적인 상에 대한 공유도 미흡한 노동법원 설립(대체) 주장보다는 이미 갖춰진 시스템과 보장돼 있는 권한의 보다 적극적인 활용이 우선이라 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막장까지 치달아 더 이상 가망이 없는 노동위원회 개혁에 대한 기대는 이제 노동분쟁해결 제도 전반의 발전과 재설계의 분명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판단이다. 스스로 제 무덤을 파 온 노동위원회의 임종을 준비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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