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제가 도입된 외환위기 후 우리사회에선 이를 불가피한 것으로 여겼다. ‘해고는 살인’이라고 외쳤지만 메아리로만 돌아왔다. 죽음의 바다에 사람을 수장시키더라도 배가 침몰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논리를 넘어서지 못했다. '함께 살자'는 목소리는 비현실적인 구호처럼 여겨졌다. 그저 내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이길 바랐다. 누가 배를 침몰시켰냐는 것은 한 번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1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한진중공업 청문회에서는 정리해고제와 이를 강행한 기업주가 처음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여야 의원들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의 부당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타했다. 또 한진중공업이 경영위기를 조작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미경 민주당 의원은 440억원의 현금 배당과 시가 174억원의 주식배당, 임원 연봉 1억원 인상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주식과 현금배당 그리고 임원 임금까지 인상하면서 경영위기라는 진단이 가능하냐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정리해고를 강행했다면 경영진이 부도덕할 뿐 아니라 해고의 정당성조차 없다는 것이다. 이미경 의원은 ‘경영위기는 조남호 회장이 조작한 것’이라고 했는데 수긍이 가는 지적이다. 여당인 한나라당 의원들도 이런 지적에 찬동할 정도다. 장제원 한나라당 의원은 “대규모 적자를 본 STX조선은 한 명도 해고를 안 했는데 한진중은 적자나면 무차별적으로 자르는 게 경영철학이냐”고 질타할 정도였다.

부산 영도조선소는 일감이 없고, 필리핀 수빅만 조선소는 일감이 몰린 이유도 밝혀졌다. 이미경 의원은 “한진중공업의 같은 영업팀이 수주활동을 하면서 왜 수빅조선소만 일감을 몰아줬냐”고 지적했다. 또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은 “부산지방노동위원회 부당해고 심리과정에서 지난해 수주한 23척 중 19척은 영도조선소도 제작할 수 있다고 사측이 밝혔는데 모두 수빅조선소에 몰아줬다”고 따졌다.

그런데 조남호 회장은 수미일관 정리해고는 불가피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조 회장은 여전히 “대형선박 건조가 세계 추세이고, 영도는 가격경쟁력 차원에서 (수주가) 불가능하다”며 발뺌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여당 모 의원의 말처럼 “조 회장은 회사가 어려운데 진단은 모두 임금 탓, 세계불황 탓, 노조 비협조 탓, 남 탓 뿐”이었다. 정리해고 사태를 방치하고 국내에 숨어있으면서 선박 수주를 위해 외국에 머물렀다고 거짓말한 조 회장의 뻔뻔스러움이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이날 청문회장에서 금속노조와 한진중공업지회는 해고자 94명 복직과 전 직원 순환휴직을 제안했다.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정리해고를 회피해보자는 진일보한 제안을 한 것이다. 금속노조와 한진중공업지회가 한 목소리로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희망퇴직자와 해고자 자녀의 대학 학자금을 대주고, 3년 내 정상화해 재고용하겠다는 조 회장의 주장보다 현실적인 제안이다. 학자금을 대줄 정도의 돈이 있다면 해고자 복직비용으로 충당하면 되고, 전 직원이 고통분담하면 경영정상화는 빠르게 이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박유기 금속노조 위원장은 “정리해고자는 고용관계로 재계약하고 회사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얘기한 후에 휴직 제도에 대해 열어놓고 대화하자”고 요구했다.

하지만 조 회장은 해고자 가족과 노조의 요구를 끝내 외면했다. 함께 살자는 요구를 매몰차게 거절했다. 그는 여전히 배가 침몰하지 않으려면 불가피하다는 ‘난파선론’을 들먹이며 버텼을 뿐이다. 노조의 대안은 안중에도 없었다.

정동영 민주당 의원은 “재벌의 아들로 태어나 해고 없는 인생을 살았다. 더 이상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호소했지만 조 회장은 모르쇠했다. 현재로선 조 회장의 입장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 경영에 실패한 재벌회장 아들은 왜 성역인가. 노동자에게만 고통을 전가할 이유는 없다. 조 회장 말처럼 경영위기로 인해 정리해고를 했다면 그 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모르쇠와 버티기로 일관하는 조 회장에게 더이상 면죄부를 줘선 안 된다. 그래야만 정리해고를 당연시하는 풍조가 재벌회장들의 아들에게 대물림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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