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지난 17일 '백혈병 물의 빚은 삼성반도체 근로자 보건관리 강화 잡도리'라는 다소 과격한 이름의 보도자료를 냈다.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지 4년5개월 만에 내놓은 노동부의 대책이다. 지난달 삼성전자가 밝힌 자체 보건관리개선계획에 대해 세부실천방안을 빨리 마련하고, 삼성반도체 제조공정에서 취급하는 모든 화학물질에 대한 독성(유해성)을 파악하라는 내용이다. 전담산업의학전문의를 확보하라고도 했다. 삼성전자는 “조만간 암 발병자에 대한 세부지원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라며 “임직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지속적인 투자와 개선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노동부로부터 수시 또는 정기적으로 지도·감독을 받고 있으며 업계 최고 수준의 환경안전 사업장으로 자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완곡한 표현을 썼지만 노동부의 발표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태도다. 그렇다면 노동부의 대책을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대책 반갑지만, 노동부 제대로 몰라”
공유정옥 산업보건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산업보건전문의연구원)



노동부가 고 황유미씨가 삼성전자 공장에서 백혈병으로 숨진 지 4년여 만에 처음으로 침묵을 깨고 말문을 열었다. 그간 싸우면서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 제보와 사망자는 계속 느는데, 정부와 삼성이 이들을 존재하지 않는 투명인간처럼 보는 게 가장 힘들었다.
그래서 노동부가 발표한 정책의 내용이나 실효성 여부 등을 떠나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노동부가 무슨 책임을 져야 하는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우려된다. 이번 대책도 삼성에게만 알리고 피해노동자들과 이를 대변하는 반올림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노동부가 제시한 정책은 이미 산업안전보건법 등에 다 나온 내용으로 새로운 것이 아니다. 법대로 해도 수많은 젊은 노동자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직시해야 한다. 노동부가 이 문제를 풀 의지가 있다면 노동부와 삼성이 갖고 있는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피해노동자들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노동부가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삼성전자와 피해노동자들이 공식적으로 만나는 자리를 주선해 그간의 의혹을 풀고 대책을 논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노동부는 이번 기회에 반도체 및 전자산업에 걸친 안전보건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일류기업이라는 삼성에서 젊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데 영세한 사업장은 더 심각할 것이다. 피해노동자를 배제하는 기존의 소통 방식이 아닌 피해노동자를 인정하는 태도 전환을 기대해 본다.


“전자제조업 노동자 건강대책 마련해야”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보건국장



노동부 대책을 보면 마치 백혈병 문제가 삼성전자 공장만의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삼성뿐 아니라 전자제품을 만드는 다른 기업의 공장 노동자들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이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삼성전자 공장의 노동자들보다 더 열악한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있다. 전자 제조업체 노동자들 전체에 대한 건강보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노동부가 발표한 대책은 삼성에게 돈을 투자해 보건대책을 마련하라는 것인데, 모든 기업이 삼성만큼 돈을 투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부가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지, 기업들이 각자 돈으로 해결하는 것은 옳지 않은 방법이다.
삼성 백혈병 문제는 백혈병을 직업병으로 인정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그런데 그 부분이 노동부 대책에서 빠졌다. 노동부가 권고한 것을 삼성이 제대로 이행할지도 의문이다.


“다른 반도체 사업장도 마찬가지, 대책은 없어”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



고용노동부가 현재 산업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법·제도적 한계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예방대책을 수립하도록 한 것은 긍정적이다. 반도체 공정에서는 법으로 관리하는 유해물질 이외에도 매일 새로운 물질이 만들어진다. 이를 신규도입물질이나 2차 생성물질까지 포함해 유해성 평가를 실시한 것이 특히 그렇다.
그렇지만 이번 대책은 기존의 산재노동자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현재 근로복지공단이 산재신청에 항소를 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입장을 내지 않았다. 산재신청자에 대한 전향적 변화가 전제돼야 실효를 거둘 수 있다. 이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예방대책을 내놓는 꼴이다. 모니터링팀 구성도 문제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도 현장 노동자들의 의견 반영을 매우 중요하게 보고 있다. 모니터링팀에 노동자의 참여를 막으면 현장과 상관없이 안을 내고, 상층에서만 판단하게 된다. 반도체와 전자산업 전체의 제도개선 내용이 빠져 있는 점도 아쉽다. 문제가 제기된 지 수년째인데 내내 과거와 동일한 조건에서 관리·감독되고 있다. 즉각 개선할 수 있는 조치가 전면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반영해서 삼성전자에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는데, 이 특성은 비단 삼성만이 아니라 하이닉스 같은 다른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법을 바꾸더라도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한다.


“반도체산업 건강수준 끌어올릴 기회로 삼아야”
문기섭 고용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관

삼성전자반도체 백혈병 문제는 오랫동안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이다. 그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도 집단 역학조사를 실시했고, 고용노동부도 반도체업체들을 대상으로 자체위험성 평가와 이행관리를 진행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도 삼성반도체 코호트(연구대상으로 선정된 특정 인구집단)를 2019년까지 구축해 관리하면서 유사 동종업종과의 비교 등 연구작업을 계속할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삼성은 지난달 외부 전문업체에 의뢰해 작업환경에 대한 점검을 벌였다. 유해물질 관리에 주안점을 두고 실시한 점검결과가 발표된 후, 삼성은 보건관리 강화방안과 퇴직자 보상대책을 공개했다. 사회적 관심이 높은 사안이어서 노동부 역시 삼성의 발표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지난 17일 노동부에서 발표한 대책은 삼성에 보다 속도감 있게 세부 실천방안을 마련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앞으로 삼성이 주기적으로 세부 실천계획을 노동부에 알려 주면 행정지도 차원에서 제대로 관리해 나갈 것이다.
삼성은 반도체산업을 선도하는 세계적 기업이다. 삼성이 노동부의 주문을 받아들여 작업환경 개선에 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면 기업의 이미지도 좋아지고 반도체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의 건강도 좋아질 것이다. 선도기업의 보건관리는 당연히 후발업체도 영향을 미친다. 이번 대책이 삼성뿐만 아니라 전체 반도체산업의 건강관리 수준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산재보상 관련 문제는 현재 법적 쟁송 중이어서 이번 대책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와 별개로 제도개선 논의도 진행 중이다. 현재 노사단체 관계자와 전문가들로 TF를 구성해 직업성암 판정기준이나 업무상질병 인정기준 개선대책을 마련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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