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 이래 공공기관은 ‘동네북’이었다. 공공기관은 개혁 대상이 됐고, 민영화와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개혁의 요체는 경영의 자율성 보장과 사회적 통제임에도 이는 철저히 무시됐다. 정권에 충성하는 이들이 낙하산 인사로 내려와 정부의 대리인 행세를 하면서 자율성은 실종됐다. 사회적 통제는 어림도 없었다.

노무현 정부도 이와 다르지 않다. 말로는 혁신의 주체라고 치켜세웠지만 공공기관은 철저히 혁신의 객체이자 대상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공공기관에 혁신과제로 성과주의를 도입한 원조다. 이명박 정부는 선진화를 거론했다. 공공기관은 이제 후진적인 행태에서 벗어나 선진화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논리다. 나아가 공정사회라는 담론으로 그럴듯하게 포장됐다. 이른바 ‘공공기관 선진화정책’이다.

이명박 정부 입장에선 무엇이 후진적이었고, 공정하지 못한 것이었을까. 공공기관은 '신의 직장'이라고 공격받았다. 공공기관에 다니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고용이 보장되고, 고임금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명박 정부는 공공기관 정원 10% 축소, 유사기관 통폐합과 민영화를 선진화 정책의 첫 번째 과제로 시행했다. 이후에는 핵심을 겨냥했다. 고임금을 깎고, 임금체계를 손보는 작업이다. 공공기관 전 직원에 성과급과 연봉제 도입이 추진됐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어 닥쳤던 지난 2009년에는 신입사원 초임삭감이 단행됐다. 혹독한 취업한파 속에서 일자리 나누기 대책으로 추진됐다. 금융공기업뿐 아니라 시중은행과 지방은행까지 이 광풍에 휩쓸렸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다. 공공기관과 금융기관에는 ‘초임삭감 세대’라는 또 하나의 직군이 탄생했다. 2009년에 입사했다는 이유로 전년도 입사한 선배보다 적게는 10%, 많게는 20%까지 임금을 적게 받는다. 간부로 승진하기 전까지 하향 조정된 보수체계가 적용된다. 노조의 동의 없이 불리한 취업규칙은 변경될 수 없음에도 초임삭감은 강행됐다. 정규직 안에서 차별 받는 세대가 형성된 셈이다.
 
2009년 이후 공공기관에 입사한 초임삭감 세대는 1만8천여명, 올해 신규채용자까지 포함하면 약 3만여명에 달한다. 이 세대들은 “같은 일을 하는데도 더 많은 임금을 받는 선배를 볼 때마다 박탈감을 느낀다”고 토로한다.

문제는 이 세대들의 삭감당한 임금만큼 청년들의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06년 공공기관 신규입사자는 1만2천229명에서 지난해 9천848명으로 줄었다. 2006~2007년 평균 신규입사자는 1만3천407명인데 반해 2008~2010년 평균 입사자는 9천809명으로 축소됐다. 일자리 나누기 대책으로 신입사원 초임삭감이 시행됐지만 엉뚱하게도 청년일자리는 늘어나지 않았다. 공공기관 선진화라는 미명 아래 정원 10%를 줄여 놓은 상태라 애초부터 청년일자리는 늘어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정원을 줄여놓고,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모순된 대책이 낳은 결과다. 결국 신입사원들만 초임을 삭감당했다.

이러니 초임삭감 세대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집단소송에 나서거나, 선배들이 주도하는 노동조합과 단체행동을 모색하고 있다. 일부 금융기관은 위화감을 없애고, 이직을 방지하기 위해 신입사원의 임금을 원상회복했거나 이를 추진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이명박 정부만 변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는 격차를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신입사원의 임금을 단계적으로 원상회복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선배 세대들의 임금인상을 억제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이러자 신입사원 초임을 원상회복하려던 시중은행마저 정부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정부의 대책은 초임삭감으로 선후배 사이에 조성된 위화감을 교묘하게 자극한다. 초임삭감 정책을 주도한 정부로 향하던 불만의 화살이 기존 선배 세대에게로 겨냥된 것이다. 정부의 논리대로라면 선배들이 임금을 내놓지 않을 경우 후배들의 삭감된 초임은 원상회복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임금 하향평준화 대책이다.

임금을 깎고, 차별받는 직군을 만드는 것이 선진화는 아닐 것이다. 그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면 공정사회라고 할 수도 없다. 정부가 공공기관과 금융기관의 임금문제나 노사관계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도 후진적인 행태다. 탈이 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벌써부터 공공기관과 금융기관 노조들은 공동투쟁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노조는 9월에 파업까지 불사한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종전과 같이 임금과 노사문제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자세를 바꾸지 않으면 노정 갈등만 키울 수 있다. 공공기관뿐 아니라 시중은행의 노사관계까지 망칠 수 있다. 통 크게 신입사원의 삭감된 초임을 일괄적으로 원상회복시키는 게 사태해결의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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