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서 머리를 깎았다. 삭발한 지 꼭 두 달 만이다. 쑥쑥 머리는 잘도 자랐다. 수배, 그리고 천막생활이라도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밤에는 잠을 잔다. 먹고 또 싼다. 사람 사는 일이다. 조계사 농성 33일째 되던 지난 3일 이구영(41) 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지회장이 호사를 누렸다. 출장이발, 듣도 보도 못한 일이다. 군대시절 머리 좀 깎았다는 연제성 발레오공조코리아지회 조직부장이 솜씨자랑 하러 찾았다. 농성처지 그도 알아 품앗이가 익숙하다. 비닐이나 덮어쓸 줄 알았는데 '헤어스타일'이라고 적힌 전용가리개며 바리캉을 보곤 안심이다. 이발사 손놀림도 날래 착착 모양이 산다. 두 아들과 아내, 그리고 어머니가 농성장 찾는다고 단장을 좀 하려던 참. 불쑥 아들이 찾아들었다. "아빠, 머리는 왜 깎아요?", "그냥, 머리가 길어서 깎는거야." 절 마당에서 선문답이 오갔다. 쑥쑥 머리가 길었다. 농성이, 싸움이 또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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