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계를 비롯한 기업들까지 너도나도 고졸 채용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나도 상고 출신'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에 기업들이 앞 다퉈 화답하는 모양새다. 청년실업이 심각한 이때, 기업들이 고졸사원을 늘리겠다니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권 눈치보기로 '전시채용'에 그치지 않을까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고졸 채용계획을 뚜껑을 열어 보면 상당수가 임시직이거나 비정규직이다. 고졸채용 바람이 시늉내기에 그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학력인플레 해소를 위한 바람직한 방안은 무엇일까.


신입사원 임금차별 해소 없이는 ‘눈 가리고 아웅’
성낙조 금융노조 부위원장


 


고졸 신입사원 채용을 늘리는 것은 기회균등을 위해 바람직한 일로 환영할 만하다. 중요한 건 고졸 신입사원 채용이 생색내기가 아니라 안정적인 일자리를 늘리는 제대로 된 정책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 신입사원이 겪고 있는 차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고졸이든 대졸이든 최근 신입사원들은 대부분 계약직이거나 비정규직이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일은 신입사원 초임삭감 문제다. 정작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서 정부가 고졸사원을 계약직으로 뽑아 생색내기를 하겠다는 건 물타기를 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시한폭탄’을 제거하지 않고 잠시 밀어놓은 채 눈 가리고 아웅 하겠다는 것과 같다. 학력차별을 없애자는 정부의 취지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신입사원의 문제는 대졸과 고졸로 나눠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 기존의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혹은 신입사원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하는 차별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은 채 고졸 신입사원을 늘리겠다는 건 오히려 또 다른 차별과 비극을 양산하는 것이다.


“예산 늘려 진전성 보여 줘야”
김금숙 사무금융연맹 교육선전실장

 

고졸채용 확대는 환영하지만 또 하나의 이벤트가 아닌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이명박 정부는 일자리 확대를 추진하면서 지금까지 청년인턴 등 비정규직을 늘리거나 신입직원 초임삭감을 통해 또 다른 차별을 만들어 왔다. 숫자상으로 일자리가 늘었을지 몰라도 차별을 확대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마련하지 못했다. 그래서 꼼수라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공공기관은 물론 일반기업에서도 학력 차별 없는 채용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지금의 고졸 채용 역시 비정규직이나 낮은 임금 등 차별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박수만 보내고 있을 수 없는 이유다.
정부나 일반기업이 고졸채용을 확대하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하려면 인력운용 예산을 확대해야 한다. 예산 확대 없이 노동자 간 임금 돌려막기 식 방식의 정책 추진은 안 된다. 기업은 이윤이 남으면 주주에게 배당하기에 급급하다. 자기 주머니는 열지 않고 노동자 간 위화감만 키우는 일자리 창출 정책이다.
학력은 특히 우리 사회에서 차별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사용된다. 고졸 출신에게도 적절한 직무를 주고, 그에 따른 정당한 임금을 보장해야 한다. 예산 확대는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의 학력 인플레이션이나 차별 현상도 다소나마 해결될 것이다.


"학력 따지지 말고 직무관련성 평가해 채용해야"
김동원 고려대 교수

 

고졸채용은 일단 바람직한 현상이다. 우리나라는 학력 제한이 너무 많다. 고졸자를 비롯한 저학력 인력들이 취업을 못하는데, 이는 혼인과 저출산과도 얽혀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고졸자뿐만 아니라 대졸자와 전문대졸자 모두 취업난을 겪고 있다. 한쪽에만 특혜를 주면 불가피하게 반대편은 손해를 보게 된다. 이번의 경우 당연히 전문대졸자가 직접 타격을 받을 것이다.
학력 차별을 해소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쿼터제이고, 둘째는 블라인드 방식이다. 쿼터제는 고졸자와 전문대졸자를 일정비율 채용하는 것이고, 블라인드 방식은 학력을 밝히지 않고 시험과 면접으로 채용하는 것이다. 쿼터제는 필연적으로 왜곡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후자가 바람직하다.
직무관련성이 입증된다면 학력을 따지지 않고 채용하는 블라인드 방식이 필요하다. 기업에서 학력은 보지 말고, 직무관련 시험과 인터뷰를 통해 뽑으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한번 보자는 것이다. 그래도 고졸자가 채용되지 않는다면 당사자가 특별히 더 노력을 해야 한다. 기업도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데 고졸자라고 무조건 뽑아 달라는 것은 맞지 않다.
학력 인플레는 여러 사회적 인식이 얽혀 있다.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천시하는 분위기가 있지 않나. 우리사회는 과잉교육을 하고 있다. 대학진학률이 가장 높다. 그 다음이 미국·핀란드 순이다. 공고나 상고를 나와서도 대학을 가고 있다. 개인뿐만 아니라 학부모·대학 모두에게 낭비다. 학력 인플레를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대학수를 줄이는 게 가장 낫다. 부실대학은 퇴출시키고, 대학을 갈 만한 능력이 되고 공부에 대한 흥미가 있는 사람이 대학을 가게 해야 한다.


“고졸채용 확대, 바람직한 현상”
어수봉 한국기술교육대 교수


 


최근 은행권이나 민간기업들이 고졸채용을 늘리겠다고 밝힌 것은 긍정적이다. 그동안 학력 인플레이션 등으로 고학력 인력이 늘면서 대기업이나 금융권에서 고졸자가 해야 할 일도 대졸자를 채용해 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사례는 제조업보다는 사무직에서 주로 나타난 현상이었다. 기업도 인력활용이나 예산운용에서 손해가 아닐 수 없다.
최근 고졸채용 확대 흐름은 아마 '비용 대비 생산성' 측면에서 업무별로 고졸이나 대졸자를 다르게 활용해야 한다는 기업들의 반성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한다. 고졸자가 해야 할 일도 대졸자를 채용해 시켜 봤더니, 별반 재미를 못 본 것이다. 지금 현상은 기업들이 인력·예산 운용에서 거품을 빼는,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는 현상이기에 긍정적이다.
고졸자 채용이 늘면 학력 인플레 현상도 다소 완화될 것이다. 고졸자도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면 굳이 너도나도 대학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 물론 학력 인플레 현상은 단지 일자리만의 문제는 아니기에 사회적으로 풀어야 한다. 어쨌든 이러한 측면에서 최근 은행권이나 민간 기업들의 고졸채용 확대 흐름은 더욱 확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 차원에서 학력차별 개선대책 마련 중”
이민재 고용노동부 청년고용기획과장

 

기업들의 고졸학력자 채용확산은 학력이 아닌 실력을 위주로 채용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고 본다. 그간 고졸 이하 학력자는 능력 유무와 상관없이 노동시장에 진입할 때부터 어려움을 겪어 왔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마이스터고교 등 산업계 수요에 맞는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중소기업과 특성화고 간 취업협약을 체결했다. 또 특성화고·산업정보화고(인문계고 취업준비생 학교) 졸업예정자를 대상으로 청년인턴을 실시해 고교 졸업생이 어려움 없이 노동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해 왔다.
고졸학력자 채용 바람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양적 확대뿐 아니라 이에 걸맞은 질적 측면도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먼저 학력·학벌이 아닌 능력 중심의 채용관행을 정착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취업한 후 임금 등 처우에서 학력을 이유로 불합리하게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학력·근속기간이 아닌 직무·성과를 중심으로 한 임금체계가 확산되도록 노사가 혁신역량을 모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정부도 학력이 아닌 능력에 따라 공정하게 일할 기회가 주어지고, 또 대우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 발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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