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전입이란 뭔가. 그 동네에 살지 않으면서 사는 것처럼 꾸미는 거다. 왜 그러는가. 두가지 유형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투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자식교육 때문이다. 투기가 동기인 위장전입은 마땅히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다. 그러나 자식교육 때문이라면 좀 봐주는 게 어떤가 하는 논리가 나온다.

검찰총장 후보의 위장전입이 또 말썽이다. 이명박 정권에서 뭔가 한자리 하자면 위장전입은 거의 필수과목인가 보다. 또는 기본능력인가. 위장전입도 할 줄 모르면 이명박 정권 아래에서는 장관자리 하나 꿰차지 못한다, 그건가. 위장전입은 우선 위법행위이고 처벌대상이다.

그런 점에서 법을 다루는 검찰총장이 위장전입을 했다면 이는 법운용 책임자로서는 일차적 결격사유가 된다. 그런 걸 알면 자기가 알아서 검찰총장 후보가 되지 말아야지 무슨 얼굴을 들고 청문회까지 나올까. 대충 비벼 대면 잠시의 고통이 늘 기쁨과 영광을 가져다준다고 믿어서인가.

위장전입은 그 위장을 문제 삼는 건데, 이것만이 아니라 그렇게 해서 생기는 문제가 뭔지 잘 살펴봐야 한다. 투기는 따로 논란을 할 필요조차 없고, 자식교육 때문이라는 걸 좀 보자. 전입대상 지역에 있는 학교가 가고 싶은 곳이니 그렇게 할 거다. 그런데 학교라는 게 정원이 있다. 정원이 없는 학교는 없다.

어느 지역에 있는 학교든 그 지역주민의 자녀가 우선권을 갖는다. 그런데 딴 곳에 살면서 그 주민인 것처럼 만들어 그 학교에 들어가면 그 정원에서 누군가는 누락되게 된다. 위장전입 때문에 그 지역주민의 자녀가 피해를 입게 되는 거다. 따라서 위장전입을 하는 쪽은 그 지역주민 자녀의 권리를 빼앗아 간 거다. 이걸 보고 뭐라고 하나. 도둑질이라고 한다.

아닌가. 이 나라에서 교육은 사생결단하듯이 하는 사안이다. 그것도 문제지만 이런 현실에서 남의 권리를 가로채는 건 보통 도둑질이 아니다. 그러니 그 도둑질을 누가 했는지 드러날 경우 문제가 되니 어떻게 해야겠는가, 당사자로서는. 얼굴을 가릴 수밖에, 그게 위장이다.

도둑이나 강도가 복면을 하고 자기 정체를 가리는 위장을 하는 것은 왠가. 남에게 자기라는 게 들키지 않고 도둑질이나 강도질 하려는 것 아닌가. 따라서 위장은 위장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하는 것이다. 안전하게, 지능적으로. 위장전입은 이것과 결코 다르지 않은 원리가 관철되는 범죄행위다.

자, 그러니 어떻게 도둑이나 강도를 잡을 자리에 남의 권리를 도둑질한 자를 앉힐 수 있을까. 자기 애 교육 때문에 남의 애 교육의 권리를 몰래 가로챈다? 이런 사람을 공직에 앉힌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아니 이미 소도둑인지 아닌지도 사실 모르는 판이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길 수 없다. 누구도 그런 선택을 하진 않는다. 국가의 정책집행을 맡기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아니면, 자기들 패거리는 봐주고 미운 털 박힌 자는 집어넣고 할 거 아닌가. 공직의 윤리와 법도는 그냥 무너지는 거다. 자격이 안 되는 자가 공직에 앉게 되면, 영이 서지 않고 공직사회는 주권자에게 멸시당하거나 비난받는다.

누군가에게 부당하게 탄압을 받거나 억울하게 핍박을 받는다면, 정당방위 차원에서 자기 정체를 숨길 수도 있다. 그러나 남의 집 애 학교 좋은 데 가려는데 그걸 중간에 새치기해서 자기 걸로 만드는 자가 공직에 오르는 것은 이 나라의 근본을 자꾸 흔드는 일이다. 대통령이 이런 자를 굳이 공직에 앉히겠다면, 같은 패거리라는 오해를 살지도 모를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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