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 고대 그리스 이후 민주주의. 주인된 자의 고민, ‘직접’이냐 ‘간접’이냐. 일제히 희망버스 하차하여 캡사이신 적정량 배합된 물대포를 뚫고 서러운 눈물 뚝뚝 흘리며 청와대를 방문 접수할 것이냐, 아님 의원나리 통해 제 의사 전달하되, ‘배신 뒤엔 낙선 있다’며 머리띠 동여매고 유통기한 4년짜리 복수의 사시미를 갈 것이냐. 결국 국민의사, 어떻게 전달할거냐는 문제. 허나 대의민주주의라는 세계적 프랜차이즈 덕분에, 바쁘신 국민들은 제 뜻 대신 전달할 자 찾으니 그들이 국민의 ‘대표’라는 사람들이다.
물론 대표, 뽑아야 제 맛이긴 하지만 자임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가령 기업의 대표들이 그렇다. 요즘 이 대표들이 뭐하나 싶었는데. 자연산 기름에 버금가는 2천원대 휘발유 시대 개막으로 국민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을 때쯤, 평창이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되는 순간 국가의 대표, 삼성그룹의 대표, 한진그룹의 대표 모두 도파민 과다분비로 인한 탓인지 남자들끼리 껴안고 환호성을 지르고 있더라는. 여하간 경제유발효과 64조원. G20 서울 정상회의가 31조원이었으니, 두 배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인구가 4천858만명이니까 1조원이면 1인당 20만5천원, 64조면? 얼마야.

인센티브 - 그 역사, 자본주의와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탯줄을 따라 올라가면 노예제 생산방식이라는 태반에서부터 시작됐다, 라고 필자는 주장하는 바이다. 이미 그때부터 인간의 행동과 생산방식이 결부돼 있음을 눈치 챈 영악한 인간이 채찍을 화폐로 바꾼 건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니었을 뿐이다. 이 사건 사업장과 동종업계인 ‘대우자동차판매’라는 회사가 있다. 그 회사, 지난 5년 동안 2천500명 직원을 700여명으로 줄인 바 있다. 정리해고라는 채찍 뒤엔 1천500명의 대리점 영업직 사원들을 다시 채용해, 차량 3대를 판매하면 3천만원의 연봉을 받는 인센티브의 노예로 전락시켰다. 한편 대우자동차판매의 해고자들은 지난해 11월부터 현재까지 농성을 벌이고 있다.

꽃등심, 아롱사태 - 이 사건, 기름기 빼고 살코기만 발라 보자. 이 사건을 제기한 원고 근로자는 렉서스 등 외제 자동차를 수입·판매하는 회사에 3년간 근무했단다. 그가 퇴직하게 되면서 회사로부터 퇴직금과 연월차수당을 지급받게 된다. 근데 통장 확인해 보니 생각한 거 보다 금액이 적더라 이거다. 그래서 주판알 튕겨 보니 연월차수당 일부가 지급되지 않았고, 퇴직금에도 인센티브(판매장려수당)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걸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그이는 회사 총무팀이 아닌 법원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 것이 아닌가,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이해가 되지 않으실 고객님들을 위해 꽃등심과 아롱사태만 정육해서 드리리다. 우선 원고 근로자는 3년의 근무기간 중 연월차(이 사건은 주 44시간에, 월차가 있었던 시대였다)를 사용한 바 없으니 이에 대한 수당 모두를 지급해 달라고 했다. 그런데 회사는 ‘영업사원들의 동의’를 구해 연월차유급휴가를 토요휴무제로 ‘대체’했기 때문에 이미 지급한 70여만원 정도의 연월차수당 외에 추가로 더 지급할 연월차수당은 없다고 주장했다. 여기까지가 꽃등심.
그리고 원고 근로자는 차량 판매에 따라 수당으로 지급되던 인센티브가 퇴직금 계산의 기초가 되는 평균임금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회사는 그때그때 달리 지급되는 인센티브는 우발적·일시적 급여이므로 평균임금 산정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퇴직금 계산에서 인센티브를 뺀 것이다. 이것이 아롱사태의 전말이다.

대법원 - 사장님 입장에서는 사정상 연(월)차휴가를 다른 특정일에 쉬도록 할 필요가 있을 수 있다. 이 사건과 같이 연(월)차를 토요일로 대체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그러려면 먼저 근기법에 명시된 ‘근로자 대표’와 서면합의를 해야 한다. 근데 근로자 대표가 없는 경우에는 어떻게 하나. 이 사건에서 사장님은 ‘우리 회사에 근로자 대표가 없어서 개별 직원들 동의를 받아 연월차를 토요일로 대신한 것이 뭐가 문제냐’고 통성기도를 올리는 간절함으로 호소했으나. 판사님들, “그게 아니야” 하며 고개를 도리도리. 단호하게 근기법 폼으로 만든 게 아니라며 ‘반드시’ 근로자 대표와 서면합의를 해야만 연(월)차를 특정일에 대체해 쉬게 할 수 있다는, 교지를 내리셨나이다. 결국 사장님은 원고 근로자에게 연(월)차 수당을 모두 물어 주게 된 것이다.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합의 없이 연(월)차의 토요일 대체휴무, 무효. 땅땅땅.
다음은 인센티브. 사장님께서는 차량 판매에 따른 인센티브를 퇴직금 계산시 기초가 되는 평균임금에 왜 포함하지 않으셨을까. 외국차를 파는 회사라 우리나라 퇴직금 제도가 불만이었는지는 몰라도. 원고 근로자, 엄연히 차량 판매라는 노동력 제공에 따른 대가로 인센티브 받아 온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매달 월급에 인센티브가 꽂혀 있는 것만 봐도. 그것을 인센‘팁’으로 생각했는지 몰라도, 대법원은 인센티브 지급이 ‘우발적·일시적 급여’가 아니며, ‘은혜적인 급부’도 아닌 ‘근로의 대가’라고 판단했다. 평균임금에 포함된다는 말씀(다만 원심에서 팀 인센티브에 대해서는 팀별 목표 달성 여부에 따라 지급되는 은혜적인 급부이므로 평균임금 산정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봤다). 사장님, 퇴직금 계산 다시 하셔야 될 거 같은데요.

근로자 대표 - 근기법·파견법·산업안전보건법·고용보험법 등 법전에는 근로자 대표님께서 곳곳에 등장하신다. 특히 근기법은 경영상 해고시 해고회피노력과 해고선정기준에 대해, 연장·야간에 일한 대가 대신 휴가로 대신하게 하거나 이 사건과 같이 유급휴가일을 다른 날로 대체하는 것에 대해, 탄력적 근로시간을 적용하거나 특별한 직종이나 업무에 한해 연장근로를 더 연장하거나 휴게시간을 변경하는 것 등 근로자 개인들이 꺼려할 수 있는 것들을 개인이 아닌 근로자 집단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대표와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회사에 과반수 노조가 있는 경우에야 그 노조가 근로자 대표를 대신하니 원래 메고 있던 총대, 그대로 메고 가면 된다. 문제는 과반수가 되지 않은 노조(복수노조로 노조가 쪼개진 경우도 마찬가지다)가 있거나 아예 노조가 없는 경우다. 그렇다고 노사협의회가 대신 총대를 멜 수도 없다. 결국 근로자 과반수를 대표하는 사람을 별도로 선정해야 하는데.
그런 선정절차가 근기법에는 없다. 근로자 대표. 그 자체는 참 좋은데, 어떻게 뽑아야 할지 방법이 없네. 하지만 다른 법적 문제를 제쳐 두고서라도 이건 좀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사건과 같이 사장님께서 앞으로 연차휴가를 특정일로 대체를 하고 싶으면 근로자 대표와 서면합의를 해야 하는데 근로자 대표를 어떻게 선정하라는 건지, 투표를 해야 하는 건지, 그냥 위촉하면 되는 건지, 누굴 대표로 앉혀야 되는 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이거다. 그래서 사장님, 직원들 강당에 모아 ‘바쁜데도 본인이 자청하여 근로자 대표를 하겠다고 한 김 과장입니다. 자 모두들 박수로 김 과장이 근로자 대표가 된 것을 축하하고, 앞으로 김 과장과 직원들의 고충을 잘 협의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선정을 베푸셨다 치자. 이게 불가능한 시나리오인가. 근로자들의 근로조건, 이익에 관련된 사항을 근로자들의 대표가 자주적으로 결정해야 할 수 있어야 될 게 아닌가. 하지만 사장님의 개입가능성은 아메, 아메, 아메리카노~ 만큼이나 진하다. 노조는 설립부터 가입에까지 이 사람은 이것 때문에 안 되고 저 사람은 저것 때문에 안 된다고 법전에 깨알같이 활자화해 놓은 마당에. 만약 ‘사용자 또는 항상 그의 이익을 대표하여 행동하는 자’가 근로자 대표를 해도 무방하다면 근로자 대표, 안 하느니만 못하다. 그럴 바엔 차라리 사장님 본인, 회사의 대표이지만 곧 전 직원들의 대표이기도 하다며 직접 근로자 대표로 기수열외 자청하여 출마의 사자후를 토해내는 3D급 감동 스토리, 불가능할 게 뭔가. 어찌 됐건 ‘임기도 없는’ 근로자 대표, 잘만 하면 해 볼 만하겠지만. 현행법상 어떠한 보호장치도 없는 근로자 대표, 서면합의 거절했다 불이익 받았다는 소문 들리면 다음 번 근로자대표는 사장님 안구에 출입해도 아프지 않을 자, 불 보듯 뻔하다.

다시 대표들 - 경제가 힘들면, 물가가 조금 오르더라도, 기름값이 최고치가 된다고 하더라도 언젠가 또 떨어질 날이 오기 때문에 그럴수록 여유를 가져야 한다. 휴가를 하루 더 가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국내여행을 떠나 하루만 더 묵으면 지역경제는 2조원이 불고, 일자리는 4만개로 늘어난다. 이런 고민하시니라 각하께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여름휴가 도서목록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단다. 뭔가 비기(秘記)가 담긴 양피지나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가지고 계실 듯. 법정스님 입적하셨을 때도 아무도 읽어 보지 못한 ‘조화로운 삶’이라는 책을 즐겨 읽었다고 하시지 않았나. 아무리 찾아도 법정스님이 쓰신 조화로운 삶은 없었다. 출판사 이름만 일치할 뿐. 올해 필자는 하루휴가 더 내어 법정스님의 숨겨진 그 책을 찾아 읽으려고 한다. 하지만 여기까진 애교다.
삼성 회장님, 복수노조 시행 전 이미 노조를 ‘알’로 제작하사 에버랜드에 박는 데 성공하시고, 같은 그곳에서 만들어진 다른 노조의 부위원장은 노조설립과 무관하게 해고하셨단다. 한진그룹의 회장님은 35미터 크레인 위에서 방울토마토를 경작하는 한 여인보다 평창 알펜시아 스키점프대만 바라보고 계시고, 한진중공업 회장님은 외국으로 ‘출장’ 가신 이후 근 50일이 다돼 가는데도 행방이 묘연하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대표들의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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