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주최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근퇴법) 개정안 공청회가 국회에서 열렸다. 2008년 11월 정부가 근퇴법 개정안을 제출한 뒤 1년여 만에 열리는 공청회였다. 퇴직연금제도 도입 같은 많은 이슈에서 노사의 의견은 엇갈렸다.

이런 와중에도 퇴직금 중간정산에 대해서는 노사가 한목소리를 냈다. 기업부담 완화를 바라는 재계와 퇴직금의 유연한 활용을 강조하는 노동계의 요구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노후보장 수단을 강조하며 중간정산을 금지하려는 정부에 노사가 대항하는 모양새였다.

논란은 공청회 뒤에도 1년 넘게 계속됐다. 올해 6월30일 근퇴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을 때 중간정산 관련 조항은 정부의 생각대로 됐다. 중간정산 요건을 엄격하게 하고, 시행령에 그 요건을 나열하는 방식이 도입됐다. 고용노동부는 중간정산 요건으로 병가나 교육, 주택구입 등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근퇴법 개정안이 시행되는 내년 7월26일부터는 이런 요건에 해당하지 않으면 퇴직금 중간정산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개정 근퇴법 '숨은 효과' 발휘할까=중간정산 금지는 의외의 방향에서 효과를 낼 듯하다. 바로 중소·영세업체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퇴직금 쪼개기’를 막는 방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월급에 퇴직금이 포함돼 있다고 주장하면서 노동자들이 회사를 그만둔 뒤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는 사례가 잦았다.

민주노총은 지난해 공청회에서 근퇴법 개정안에 반대하면서도 “사용자들이 연봉에 퇴직금을 포함시켜 지급하는 등 중간정산제도를 악용해 지급하는 사례가 왕왕 있었다”며 “중간정산 요건을 강화하자는 것은 노동계의 요구였다”고 밝혔다. 정부가 예고한 중간정산 사유가 너무 제한적이어서 반대했을 뿐 중간정산 지급요건을 엄격히 하는 것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는 설명이다.

중간정산을 금지한다는 것은 곧 퇴직금을 한꺼번에 지급하도록 강제하겠다는 뜻이다. 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동부의 중간정산 요건 강화방안에 대해 “퇴직금제도를 퇴직연금제도로 전환시키기 위한 소극적인 방안”이라고 풀이했다. 정부가 퇴직연금제도 활성화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지적이다.



◇관건은 노동부의 감독의지=실제로 노동부는 법원이 퇴직금을 급여로 나눠 지급하는 방식에 대해 불법이라고 제동을 거는 상황에서도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대법원은 2002년과 2005년 “퇴직금을 월급이나 일당과 함께 지급하기로 약정했다면 그것은 퇴직시 발생하는 퇴직금청구권을 근로자가 사전에 포기하는 것으로 법에 위배돼 무효”라고 판시했다.

노동부가 퇴직금 분할지급의 길을 열어 둔 ‘연봉제하 퇴직금 중간정산 요건 지침’을 바꾼 것은 2006년 6월이다. 당시 노동부는 “현행 ‘연봉제 관련 퇴직금 중간정산 요건’에 대한 해석이 근로기준상 요건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고 밝혔다.

바뀐 지침에는 “연봉액에 포함될 퇴직금의 액수가 명확히 정해져 있어야 한다”, “퇴직금 중간정산을 받고자 하는 근로자의 요구가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근로자의 요구’와 관련해서는 “근로계약서나 연봉계약서에 분할지급 내용이 들어 있어도 자율적 의사로 보기 어렵다”며 이들 계약서 외에 별도의 요구가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됐다. 별도의 요구에는 중간정산금을 매월 분할지급한다는 내용이 명확히 포함돼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97년 사업주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중간정산 제도를 도입했다가 최근 근퇴법을 개정해 중간정산 요건을 엄격히 한 것처럼 노동부가 퇴직금 분할지급에 대해서도 오락가락 행보를 하고 있는 셈이다. 윤여림 노무사(법무법인 한울)는 “법적으로는 안 된다고 했는데 현장에서는 사실상 분할지급되고 있다”며 “노동부가 자율점검을 비롯해 감독을 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데도 의지가 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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