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위해 김진숙씨와 정리해고자가 크레인 고공농성을 벌이고 비정규직·성소수자·장애인·인권활동가·문화예술인까지 동참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만나는 30일은 이 시대 가장 아름다운 휴가가 될 것입니다.” 천주교 인권위원회가 30일 떠나는 희망버스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하며 밝힌 내용이다.
“희망의 버스에 대한 시민들의 호응을 보면서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만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박노자 오슬로대 교수), “자신의 먹을거리 문제 해결을 위해 모였던 촛불집회가 이해관계가 없는 다른 사람의 일에도 연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일종의 진화”(노회찬 진보신당 상임고문)라는 식의 해석도 나온다.
희망의 버스는 분명 시대의 아이콘이 돼 가고 있다. 노동자들은, 시민들은, 종교인들은 배당을 늘리면서 노동자를 해고하는 나쁜 회사를 비난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정리해고자와 나, 김진숙과 나를 서로 이입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갑남을녀에게 물었다. 희망버스는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우리의 시선이 필요한 곳에 희망 보내기”
직장인 박희경씨(인테리어회사 근무)

올해 1월 김진숙씨가 크레인에 오른 후 트위터에서 한진중공업 이야기를 처음 접했다. 평소 사회 문제에 관심이 있었다. 트위터에서 오가는 소식을 보면서 처음엔 '추운데 고생 많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희망의 버스가 간다는 소식을 접했다. '부산까지 먼데'라는 고민이 들면서도 '한 번은 가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희망의 버스에 올랐다.
정리해고·비정규직과 같은 문제는 사실 쉽게 다가가기 어렵다. 머리 아픈 사회 문제일 뿐이다. 희망의 버스는 그런 문제에 시민이 쉽게 다가서도록 만들어 준 계기였다. 무언가 거창한 것은 필요 없었다. 그냥 버스 타고 가서 ‘잘 있냐’고 인사 전하고 ‘잘 있다’고 인사 받고, 같이 간 사람들끼리 즐겁게 놀다 오면 그만이다. 일반시민도 부담 없이 갔다 올 수 있다. 가족 동반이 많았던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 삶의 애환을 나누는 듯한 느낌이 좋았다. 나와 희망의 버스 참가자들의 작은 행동이 김진숙씨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2차 희망의 버스에도 올랐다.
희망의 버스가 앞으로는 다른 곳으로도 시선을 돌렸으면 좋겠다. 외로워 사람이 그립고, 우리의 시선이 필요한 그런 곳들로. 아마 한두 곳이 아닐 것이다. 우리의 작은 행동이 그런 사람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희망의 버스는 충분히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믿고 있다.



“외로워 본 사람은 안다. 연대의 소중함을”
유흥희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조합원

공장에서 쫓겨나 장기투쟁을 해 본 당사자로서 외롭고 힘들 때 사람들의 도움의 손길이 얼마나 절실한지 잘 알고 있다. 그런 이유로 희망의 버스에 함께하게 됐다.
쌍용자동차 사례를 통해 정리해고는 사회적 살인이라는 점이 확인됐다. 노동자 개인과 그 가족의 삶이 송두리째 파괴된다. 한진중공업에서 그러한 비극이 되풀이되고 있다. 예정된 비극을 막기 위해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나도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진중의 노동자들이, 또 크레인 위의 김 지도위원이 죽어 가게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희망버스 기획단에도 참여하고 있다.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면서 여러 번 놀란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소풍 오듯 참여하는 분들이 많다. 정리해고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발걸음이 부산으로 향하는 것 아니겠다. 많은 사람들이 한진중의 정리해고가 철회되기를 기원하며 자발적으로 희망의 버스에 오르고 있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과 정성이 한데 모여 큰 결실이 이뤄질 것이라 믿는다. 정리해고를 이유로 누군가가 목숨을 잃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



“희망의 버스는 아픈 손가락”
박은지 진보신당 부대변인

내게 희망의 버스는 아픈 손가락이다. 지난 2차 희망의 버스 때 참여했다. 경찰의 폭력진압 과정에서 넘어지고 다치고 하다 보니 어느새 손톱이 빠져 있더라. 오랜만에 무식한 경찰의 진압을 경험했다. 서울과 지방은 완전히 달랐다. 국회의원이 있어도 신경도 안 쓰더라.
97학번인데, 97~98년 이후 볼 수 없었던 최루탄(액)을 다시 경험했다. 최루액을 넣은 물대포를 맞고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때 세대별로 다른 표현을 하던데, 노회찬·심상정 진보신당 상임고문과 같은 이들은 내성이 있어(?) 꿋꿋이 버티는 반면 우리 세대나 보통 시민들은 그 맹독성으로 견딜 수 없어 병원에 가겠다고 하면서 힘들어했다.
희망의 버스는 21세기가 만들어 낸 새로운 투쟁문화인 것 같다. 트위터·SNS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가 적절히 결합한 예다. 실제 버스에 타 보니 인터넷을 보고 신청한 사람들이 많더라.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를 보며 가슴이 아팠는데 희망의 버스를 통해 그 응원 방법을 찾게 됐다는 분위기였다. 이것이 내게는 21세기형 연대투쟁의 발견으로 느껴졌다.
3차 희망의 버스는 1·2차 이어 새롭게 진화될 것이다. 이미 희망의 버스가 정치권 쟁점이 되는 걸 보니 정권과 보수정권에는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한진중공업이 정리해고를 철회하는 것만이 답이다. 그리고 나는 3차 희망의 버스에 당연히 오를 것이다.



“노조 일 안 해도 희망의 버스에 올랐을 것”
김준영 한국노총 부천지역지부 의장

한진중공업은 모든 국민의 문제다.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가 합법으로 끝난다면, 김진숙 지도위원의 투쟁은 무모한 도전으로 포장될 것이다. 희망의 버스에 희망을 싣고 있는 노동자 모두는 앞으로 안정적 직장은 애당초 꿈도 꾸지 말아야한다. 평생일터가 없으니 그때그때 대충 일하고, 언제 잘릴지 모르는 공포감을 항상 느껴야 한다. 그래서 한진중공업의 문제는 모든 노동자, 모든 국민의 문제다. 노동위원회의 결정에 동의할 수 없다.
유성기업의 투쟁은 이 땅에서 합법적 파업이 불가능함을 확인시켜 줬다. 아울러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마저 합법으로 포장되는 순간, 우리 노동자는 더 이상 법에 의지할 수 없고, 물리적 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로지 살기 위해서.
희망의 버스는 내가 노조 일을 하고 있지 않았다 할지라도 꼭 탔을 것이다. 87년 그때, 이한열 장례식 그자리에 함께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을 아직도 가지고 살고 있다. 희망의 버스를 타지 않으면 그보다 더 큰 아쉬움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 같다.


“희망의 버스는 희망의 눈물”
황인덕 보건의료노조 조직국장

그동안 마음으로만 함께하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동승한다. 정리해고에 따른 상처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생각에 버스에 오른다.
한진중공업의 문제는 이제 노사가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봤을 때 자본과 양심세력 간의 대리전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희망의 버스가 사측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 내거나 구체적인 해결방법을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양심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희망의 버스는 자발적인 새로운 시민운동으로 시민들에게 연대와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삶의 방식과 큰 틀을 제시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이 같은 맥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탄압으로만 일관해 오히려 갈등과 반목을 조장해 안타깝다. 정부가 갈등을 부추길수록 오히려 이 같은 자발적인 운동은 더 확산될 것이다.
촛불집회·등록금 투쟁·희망의 버스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에 새로운 시민운동의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노동계는 맡은 바 역할에 충실히 하면서 이들과 소통하고 연대할 수 있는 접점을 넓혀 갔으면 한다. 희망의 버스는 희망의 눈물이다. 그간 쌓아 왔던 절망과 무기력감을 털어내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희망의 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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