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지난 18일 사내하도급 노동자의 노동조건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하청 노동자에게 기여도를 고려한 적정임금을 주라는 내용이 핵심이다. 지방고용노동지청별로 ‘불법 사내하도급 신고센터’를 설치하라는 내용도 들어갔다. 가이드라인은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의 의제별위원회인 노동시장선진화위원회의 공익위원안을 토대로 마련됐다. 전체 의견이 아닌 공익위원들만의 의견을 종합해 안을 낸 것은 노사가 반발했기 때문이다. 노동부가 가이드라인을 발표하자 노사는 즉각 반대의견을 냈다. 시민사회와 노동계·재계는 가이드라인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가이드라인 불법막을 핵심 해법 비껴가”
이은미 참여연대 선임간사

노동부의 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은 핵심 문제를 비껴가고 있다. 현재 사내하도급 문제의 핵심은 불법파견이다. 대법원의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판결로 가이드라인 논의가 시작된 것을 감안할 때 지금 시점은 적법과 불법의 기준을 명확하게 해서 불법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가이드라인은 사용자가 스스로 규율해서 불법파견을 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인데, 어떻게 하면 불법인지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다만 합법도급을 준수하라, 최저임금을 지급하라는 선언만 하고 있다.
기준이 없으니 사용자들은 불법사실을 인지하기도 어렵고, 불법파견을 활용하고 있어도 처벌이 아니라 노력하라는 권고 수준이니 부담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고용을 유지하도록 노력하라는 가이드라인에 무슨 부담을 느끼겠는가. 최저임금 준수 같은 준수사항 정도만 법적 강제가 있는데 이는 근로기준법으로도 제어할 수 있다.
결국 실효성 있게 근로조건을 향상시키기에는 미흡하다. 노동부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현장이 조금이라도 변하길 원했을 것이다.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효과를 보기는 힘들다. 이미 대법원은 판결을 통해 불법파견의 기준을 제시했다. 굳이 가이드라인이 없어도 노동부가 감독을 강화하면 현장은 바뀐다.


"사내하도급 노동조건 개선 지렛대"
박영범 한성대 교수
(노동시장선진화위원회 위원장)

사내하도급은 사적자치 영역이다. 이에 규제를 법률로 규정하려면 기존의 법체계를 모두 바꿔야 한다. 현실적으로 매우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래서 나온 것이 행정적인 지침 성격의 가이드라인이다. 이번 가이드라인을 통해 정부는 바람직한 원·하청 관계를 제시하고, 사내하도급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앞으로 사내하도급 노동자의 근로조건 보호와 개선에 지렛대가 될 것이다.
다만 가이드라인이 강제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기업들의 협조가 필요하다. 경영계가 사내하도급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보호하겠다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 줘야 한다. 노사정위원회에서 가이드라인을 논의할 당시 경영계의 반발이 심했다. 그만큼 기업들이 가이드라인 제정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의미다. 이제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공식 발표했으니 기업들도 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
노동계는 이번 가이드라인이 실효성이 없다며 무용론을 제기하고 있지만 실제 노동시장에서 갖는 가이드라인의 의미는 매우 크다. 정부도 고발센터를 만들고 서포터즈도 구성해 관리·감독해 나가겠다고 밝힌 만큼 현장에서 조금씩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본다.


“근본적인 보호입법만이 해법”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국장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있다. 한국노총은 사내하도급 근로조건 보호대책과 관련해 여러번 우려를 보냈다. 노사정위가 전례 없이 공익위원들만의 비공개 논의로 진행했고, 공개토론회 등 최소한의 절차도 무시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온 결과는 우려했던 대로다.
가이드라인에는 원도급 사업주와 수급 사업주가 사내하도급 노동자의 근로조건 보호를 위해 지켜야 할 모델이 제시돼야 한다. 임금 등 근로조건 개선과 차별해소·산업문제·고용문제 등에 대해 실질적 권한이 있는 원청의 책임이 담겼어야 했다.
하지만 정부의 가이드라인은 원청의 책임에 대해 ‘필요시 배려’라는 무책임한 단어로 생색내는 데 그쳤다. 원하청 간 노사공동협의회 구성에 대한 대책이 대표적이다. 사내하도급 문제를 원청의 필요에 따라 선택하도록 맡겨 놓고 보호 가이드라인이라고 버젓이 발표했다.
이제 사내하도급 노동자의 보호대책과 관련해 정부나 여당에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야당·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해 근본적인 보호입법을 마련하는 방법밖에 없다.


“원사업주에게 과도한 부담”
이형준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

고용노동부의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가이드라인’은 원사업주가 사내하도급 근로자의 사용자인 수급업체처럼 임금보장부터 고용안정까지 일정 책임을 분담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도급계약을 체결한 것을 이유로 원사업주에게 사내협력업체 근로자의 고용관계 전반에 대해서까지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것이다. 계약관계 질서마저 훼손한다.
특히 수급사업주 교체시 원사업주는 신·구사업주와 협의해 고용이나 근로조건 유지를 위해 노력하고, 원사업주의 노사협의회에 사내하도급 근로자대표가 참여해 의견을 개진하도록 했다. 이것은 원사업주를 사내협력업체 근로자의 사용자로 오인하도록 하는 등 현장 노사관계에 불필요한 갈등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 가이드라인에 제시된 준수 및 공동노력 사항들은 지금까지 법원과 정부가 불법파견의 징표로 판단한 요소들로 가이드라인을 따를 경우 적법하도급이 ‘위장도급’이나 ‘불법파견’으로 오인될 수 있다. 불법파견 관련 다툼이 발생했을 경우 지침에 불과한 가이드라인 준수가 당해 다툼에서 정당성을 보장해 줄 수 있는지 의문이다.


“사내하도급 문제, 핵심은 불법파견 근절”
박유순 금속노조 기획실장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사내하도급 근로자보호 가이드라인’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사항일 뿐이다. 사업주가 당연히 지켜야 할 의무를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 게다가 직접 생산공정은 물론 간접 생산공정까지 광범위하게 불법파견 판정을 내리고 있는 법원의 판결 흐름은 전혀 담지 않았다. 노동부가 불법파견 문제는 피하면서 오히려 원청사업주의 책임회피를 도와주는 꼴이다.
사내하도급 문제해결의 핵심은 원청사업주가 도급제를 악용하는 것, 즉 위장도급을 통해 불법파견을 하고 있는 행태를 근절하는 것이다. 때문에 노동부의 대책 역시 법원의 판결 취지에 맞게 위장도급 행태에 대한 근로감독 강화와 위장도급 사업주에 대한 노동자 직접고용 등을 강제하는 방향으로 나와야 한다. 합법적 도급이라 하더라도 노조활동 보장만을 명시할 것이 아니라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고 교섭의무를 부과해 사내하도급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이 궁극적으로 없어져야 할 사내하도급 제도를 유지·보완하는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대법원 판결 이후 지금도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등 법조차 무력화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노동부는 지금이라도 법원 판결과 현실에 맞는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작성·발표해 실질적으로 사내하도급 노동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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