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중소병원 노사가 의료전달체계를 바로잡기 위해 의료취약지역의 민간중소병원을 지역거점병원으로 육성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건의료노조(위원장 나순자)와 보건의료산업 민간중소병원 사용자협의회(대표 이왕준)는 지난 15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민간중소병원 발전을 위해 처음으로 노사 공동 토론회를 열었다. 보건의료노조의 병원특성별 교섭이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노사가 공동으로 산업정책을 제안해 관심을 모았다.

이날 토론회는 이재선 자유선진당 의원·윤석용 한나라당 의원·박은수 민주당 의원·곽정숙 민주노동당 의원이 공동주최했다. 노사가 각각 추천한 발제자(이진석 서울의대 교수·지영건 차의과대 교수)와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 대표·노길상 한나라당 보건복지 수석전문위원·김수철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 등 전문가와 병원 관계자 200여명이 함께했다.



민간중소병원, 외래는 의원·입원은 대형병원과 경쟁

현재 민간중소병원들은 외래의 경우 의원과 경쟁하고, 입원은 대형병원과 경쟁하는 실정이다. 민간중소병원의 경영난은 저임금과 높은 노동강도를 유발해 인력수급 문제를 초래한다. 이는 의료접근성 저하와 의료비용 추가 발생 등 국민들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노사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거점병원 육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날 사측의 추천으로 발제에 나선 지영건 차의과대학 교수(예방의학과)는 "공공의료원이 10%에 불과한 가운데 지역거점 민간중소병원을 공공보건의료 서비스의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며 "이들에게 필요한 사항을 지원하고 역할을 부여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농촌 등 사각지대 지역의 병원을 거점병원으로 지정해 공공의료서비스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조 추천으로 발제에 나선 이진석 서울의대 교수(의료관리학)도 “중소병원의 경영 안정화를 위한 무조건적인 지원은 명분이 없고, 의료전달체계 정상화 측면에서도 타당하지 않다”며 "공공보건기관 등의 역할을 맡을 수 있는 병원을 선별해 육성하는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과잉공급된 병상을 적정 수준으로 정리하고, 불필요한 병상 증가를 막기 위해 ‘병상 총량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한편에서는 이 같은 제안이 또 다른 불균형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정일용 원진녹생병원 원장은 "중소병원 중 10%인 300병상 이상 중급병원 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자칫하면 다수를 퇴출시킬 수도 있다"며 "지역점병원으로 지정받지 못한 다수 병원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위험이 있어 또 다른 소외를 나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 원장은 “어차피 국가가 공공병원을 확충하지 않을 거라면 민간중소병원을 공공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으로 인정해야 한다"며 "지역거점병원으로 지정해 활성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공공의료서비스 사업 등에 중소병원을 참여하게 해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간중소병원, 공공의료 제공기관으로 인정해야

민간중소병원 경영난에 따른 병원인력 수급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지영건 교수는 의사 인력난에 대해 “의료체계가 붕괴돼 대형병원에 비해 수입이 열악하고 또 ‘중소’라는 낮은 네임밸류로 인해 월급만으로 해결이 안 되는 구인의 어려움이 있다”고 진단했다. 지 교수는 “지역병원이 물적자원을 제공하고 의원 의사가 이를 활용하고 진료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개방형 병원제도를 실시하자"며 "나아가 병원에 독립적인 외래존을 만들어 의사에 진료공간을 임대하는 제도를 고민해 보자"고 말했다. 병원은 인력난에 대한 걱정을 줄이고, 의사들은 개업 및 의료 장비구입에 따른 부담을 줄이자는 것이다.

김경규 보건의료노조 민간중소병원 대표지부장은 "민간중소병원이 간호사 구인난에 시달리는 이유는 저임금과 열악한 근무조건 때문"이라며 "단기적으로는 임금격차를 줄이고, 장기적으로는 간호관리료 단가 조정과 등급 간 구간 확대 등 근로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간호사가 부족하다고 간호조무사 인력으로 대체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며 "단기적으로는 병원에 득이 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의료의 질을 떨어뜨려 국민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등 결국에는 중소병원의 안 좋은 이미지를 더 악화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윤정 민주당 보건복지 전문위원은 "중소병원의 인력수급 문제는 우리나라 모든 자원의 수도권 집중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로 병원 문제로만 풀기 쉽지 않다”며 “우리나라 전체 자원의 불균형 배치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 모색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복지부 "공공보건의료법 개정해 대책 마련하겠다"

정부도 노사의 의견에 공감하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상진 보건복지부 공공의료과장은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의료취약지역을 중심으로 거점의료기관을 지정·지원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 과장은 “민간중소병원의 공공적 기능 수행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병상 총량제 규제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노사가 처음으로 공동 토론회를 개최한 것과 관련해 이왕준 보건의료산업 민간중소병원 사용자협의회 대표는 “노사가 같은 위기의식을 갖고 역사적인 첫 공동토론회를 연 만큼 선진적인 관계로 비상하는 상징적인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노조가 생긴 아래 서로 기싸움을 하며 마주보기만 했는데 절박한 위기의식 아래 처음으로 한 방향을 보게 됐다"며 “이번 토론회가 빅4 병원으로 집중된 의료전달체계를 바로잡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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