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페인 은행의 한국 진출 시도가 두드러지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스페인에서 자산규모 두 번째 은행인 방코 빌바오 비스까야 아르헨따리아(BBVA)가 오는 9월 한국에 지점을 연다. 스페인 최대 은행인 산탄데르은행도 조만간 한국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은행은 유럽연합(EU)에서도 2~3위를 다투는 글로벌 은행이다. KB국민은행이나 하나은행 등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적극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운 산탄데르은행을 롤모델로 꼽은 바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은행들이 산탄데르은행을 따라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스페인 노동계 고위 관계자로부터 나왔다. 금융노조 SC제일은행지부의 파업처럼 스페인 은행의 한국 진출에 따라 발생할 수도 있는 노사갈등과 관련해 “한국의 정체성과 한국인의 특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깐디도 멘데즈 로드리게즈(59·사진) 스페인노총(UGT) 사무총장은 지난 15일 오전 서울 다동 금융노조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UGT는 스페인노동자위원회(CCOO)와 함께 스페인에서 양대 노총으로 분류되는 단체다.

로드리게즈 사무총장은 서울 노사정협의회가 주최한 포럼 참석차 방한했다가 금융노조 SC제일은행지부 파업 등 외국계 은행의 노사갈등을 목격하고 이날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로드리게즈 사무총장은 국내 은행들이 산탄데르은행을 롤모델로 삼고 있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그는 “한국 정부나 경영자들이 (인수합병을 통해 글로벌은행으로 성장한) 산탄데르은행의 모델을 하나의 리퍼런스(참고) 모델로 삼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산탄데르은행이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스페인이 유럽연합(EU)에 가입한 이후다. 따라서 “산탄데르은행은 스페인 은행인 동시에 유럽연합의 은행이고, 한국의 은행은 한국의 은행일 뿐”이라는 것이 로드리게즈 사무총장의 분석이다. 그는 특히 “스페인은 금융감독 시스템이나 규제가 잘 돼 있는 반면 한국은 구멍이 많다”며 “한국의 경영진이 무조건 대형화를 추구하는 것에 대해 경고를 보내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로드리게즈 사무총장은 산탄데르은행이 왕성한 인수합병을 통해 대규모 은행으로 성장한 것도 한국의 은행과 차이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로 외국자본의 힘을 빌려 인수합병을 한 한국의 은행들과 달리, 산탄데르은행은 단순히 규모만 키우지 않고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는 금융시스템 기술을 내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산탄데르은행이 한국에 진출할 경우 우려되는 것이 구조조정과 노사갈등이다. 외국계 은행이 대주주인 외환은행이나 SC제일은행의 사례를 보면 기우는 아니다. 최근 유럽재정 위기로 타격을 받고 있는 스페인 금융권은 정리해고와 아웃소싱 등이 한창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브라질에 있는 산탄데르은행의 경우 국제노동계가 개입할 정도로 노사갈등이 심각하다. 이에 대해 로드리게즈 사무총장은 “다국적 자본이 한국 문화에 맞지 않게 (행동해) 오랫동안 문제를 일으킨 것에 놀랐다”며 “어떤 외국자본과 투자자라 하더라도 한국의 정체성과 한국인의 특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어느 기업도 실시하지 않는 개별성과급제 추진으로 노사갈등을 겪고 있는 SC제일은행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로드리게즈 사무총장은 “스페인에서도 금융위기 때 구조조정 등으로 노사갈등이 발생했는데, 노사가 합의한 것은 반드시 지켜졌다”며 “한국에서도 노사합의 준수 여부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스페인 노동계는 외국에 진출한 은행에서 노사분규가 잇따르자 최근 사용자단체와 윤리규정을 만들었다. 윤리규정은 △인간의 존엄성 존중 △노동자 착취 금지 △직장과 가정에서의 노동자 삶 영위 지원 △노조권리 인정 △단체교섭권 보장 등이 뼈대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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