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고용노동부의 산재통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일터에서는 산업재해로 3시간마다 한 명씩 목숨을 잃고 5분마다 한 명씩 다치는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노동자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고 하는데,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2006년을 기준으로 조사해봤더니 노동자 10만명당 우리나라 산재 사망자 비율이 20.99명으로, 두 번째로 높은 멕시코(10명)의 두 배가 넘었다. 또한 산재로 인한 부상자는 2008년 9만5천806명, 2009년 9만7천821명, 지난해 9만8천620명 등으로 매년 늘고 있다. <그래프 참조>  
 

 
하지만 실제 산재로 인한 부상과 사망자는 이보다 더욱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지난 4월 민주노총이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의 날’에 즈음해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정부가 적발한 산재은폐 건수만 9천13건이었고, 그나마 보험모집인·화물운송 노동자·학습지 노동자 등 특수고용직 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는 산업재해를 당하더라도 제대로 된 집계가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특히 2007년 고용노동부 산재통계개선위원회의 대규모 사업장 2천40곳을 대상으로 한 시험표본조사 발표결과를 보면 산재 사망자 총 34명 가운데 고용 형태가 확인되지 않은 2명을 빼면 비정규직이 21명, 정규직 11명으로 비정규직의 중대재해 위험도가 정규직의 2배에 이르는 셈이다. 산업재해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에 견줘 2배에 이른다니 노동자의 생사기로에도 차별이 존재하는 세상이다.
대상판결 역시 자동차 부품제조업체에서 파견노동자로 일하다 다친 한 젊은이의 산재사건이다.

2. 대상 판결의 개요

1) 사실관계의 요지
2005년 11월 C사(파견사업주)와의 파견계약에 의해 B사(사용사업주)에서 일하게 된 노동자 A씨는 출근한지 6일째 되던 날 B사에서 작업을 하던 중 플라스틱 사출기에 이물질이 있는 것을 보고 손을 넣어 빼려다 오른팔과 손목에 골절과 화상 등을 입었고, A씨는 “사출기 안으로 손을 집어넣을 경우 작동을 멈추게 하는 안전장치가 고장으로 작동되지 않았고, 사출작업 중의 이물질 제거방법 등에 관해 안전교육도 받지 못했다”며 B사와 C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2) 판결의 요지
근로관계 당사자들 사이에 실질적으로 사용자와 피용자의 관계에 있는 경우 사용자는 피용자가 노무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생명·신체·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물적 환경을 정비하고 필요한 조치를 강구할 보호의무를 부담하고, 이러한 보호의무는 실질적인 고용계약의 특수성을 고려해 신의칙상 인정되는 부수적 의무로서 이를 위반한 실질적인 사용자는 피용자에 대해 채무불이행 책임과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한다.
그 중 채무불이행 책임은 당사자 사이에 위와 같은 보호의무를 인정할 수 있는 계약관계 또는 이에 준하는 법률관계가 존재하는 경우에 인정되는 것인데 위 보호의무가 사용자의 지휘·감독권에 부수하는 의무인 점에 비추어 그러한 의무를 반드시 직접적인 고용계약 당사자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피용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하에 노무에 종사하는 법률관계 즉, 사용자가 당해 피용자의 노무를 지배 관리하는 법률관계의 개재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비록 당사자 사이에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이를 인정할 수 있다.
안전배려 의무 위반에 따른 채무불이행 책임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은 회사의 고용계약이 상법상 보조적 상행위인 점에 비추어 5년의 상사소멸시효가 적용되는 것이다.


3) 관련법령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제35조(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에 관한 특례) ①파견중인 근로자의 파견근로에 관하여는 사용사업주를 산업안전보건법 제2조제3호의 규정에 의한 사업주로 보아 동법을 적용한다. 이 경우 동법 제31조제2항의 규정을 적용함에 있어서는 동항 중 “근로자를 채용할 때”를 “근로자파견의 역무를 제공받은 때”로 본다.

[산업안전보건법]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산업재해”란 근로자가 업무에 관계되는 건설물·설비·원재료·가스·증기·분진 등에 의하거나 작업 또는 그 밖의 업무로 인하여 사망 또는 부상하거나 질병에 걸리는 것을 말한다.
2. “근로자”란 근로기준법 제2조제1항 제1호에 따른 근로자를 말한다.
3. “사업주”란 근로자를 사용하여 사업을 하는 자를 말한다.

제31조(안전·보건교육) ①사업주는 해당 사업장의 근로자에 대하여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정기적으로 안전·보건에 관한 교육을 하여야 한다.
② 사업주는 근로자를 채용할 때와 작업내용을 변경할 때에는 그 근로자에 대하여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해당 업무와 관계되는 안전·보건에 관한 교육을 하여야 한다.

3. 대상판결의 의의

1) 보호의무(안전배려의무)와 손해배상책임
강학 상 ‘보호의무’란 급부의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용태의무로서 상대방의 일반적 이익(생명·신체·건강)을 보호하고 배려할 의무1)를 의미한다. ‘보호의무’는 급부의무와는 직접 관련성이 적은 행태의무로서 급부의무의 발생 전·발생 중·발생 후에 걸친 사회적 접촉에서 생기는 상대방의 신체나 일반적 재산에 대한 손해를 방지하고 안전을 배려할 의무다. 즉 ‘보호의무’는 일반적으로 계약체결을 전제로 발생하는 것이다.

근로계약의 경우 그 주된 의무(급무의무)는 근로자의 근로제공의무와 사용자의 임금지급 의무고, 이러한 관계에서 사용자에게는 업무명령권이 인정되고 근로자에게는 임금청구권이 발생하는데, 인적·계속적인 성격에서 유래되는 신뢰관계가 요청된다는 이유로 당사자 쌍방은 상대방의 이익을 고려해 성실히 행동할 것이 요구된다. 이 성실·배려의 요청에 근거하는 부수적 의무의 대표적인 것이 직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 근로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해야 할 사용자의 보호의무, 즉 안전배려 의무이다.

한편 이러한 사업주의 보호의무가 계약상 의무에 포함되는지에 대해서는 학설이 대립한다. 보호의무가 계약상 의무에 포함되는지 여부에 따라 사용자에게 불법행위 책임만을 물을 수 있는지 또는 채무불이행 책임까지 같이 물어 청구권 경합을 인정할 수 있는지 나눠 질 것인데, 이러한 구분은 ‘입증책임의 분배’와 ‘소멸시효 기간’에서 그 구별의 실익이 있다. 근로계약의 특성을 고찰할 때 사업주의 보호의무는 계약상 의무에 포함되는 것으로 봄이 타당할 것이다. 다만 판례는 직접적인 계약관계를 전제하지 않고도 보호의무를 인정하고 있다.

2) 사업주 등의 보호의무에 관한 판례의 태도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판례는 사업주의 노동자에 대한 보호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책임 법리를 비단 근로계약의 당사자들 사이뿐만 아니라 노무도급과 같이 실질적으로 사용자와 피용자의 관계에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도 이러한 보호의무를 부담한다고 본다(대법원 1997.4.25. 선고 96다53086 판결2) 등). 사업주의 안전상 조치의무를 규정한 산업안전보건법 제23조가 적용되지 않은 사용자인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용자의 피용자에 대한 보호의무 위반에 대해 판례는 이를 일률적으로 계약상의 의무로 보아 그 위반에 대해 채무불이행책임으로 다루는 것은 아니고, 유형에 따라 채무불이행책임을 인정하기도 하고, 불법행위 책임으로만 다루기도 한다.

다만 사용자의 피용자에 대한 보호의무는 업무관련성 및 예견가능성이 인정되는 범위에 한정되는데 보호의무 위반을 이유로 사용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사고가 피용자의 업무와 관련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 사고가 통상 발생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예측되거나 예측할 수 있는 경우라야 한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다(대법원 2006. 9. 28. 선고 2004다44506 판결3)).

3) 결

원심은 ‘파견지 회사인 B사에게 불법행위 책임만을 인정했고, C사에는 불법행위 책임은 소멸시효가 완성돼 채무불이행책임만을 인정’했었던 반면에 대상판결은 파견 노동자가 산업재해를 입은 경우 원소속사(파견사업주 C)가 아닌 파견지 회사(사용사업주 B)에도 채무불이행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봤다. 즉 사용자의 노동자 보호의무는 반드시 직접적인 고용계약 당사자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사용자가 피용자의 노무를 지배·관리하는 법률관계의 개재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당사자 사이에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이를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극히 타당한 결론이다.

또한 노동자가 산업재해를 입은 경우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만을 인정하고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를 3년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이번 판결에서는 채무불이행책임까지 인정해 상사소멸시효가 적용돼 그 시효가 5년으로 늘어나게 됐다.

대상 판결과 같은 파견노동자의 경우 소위 ‘삼면적’ 근로관계를 형성해 노동력 제공의 과정에서 사용사업주의 지휘, 감독을 받게 되므로 사용사업주 B와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없다고 하더라도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제35조에서 사용사업주를 산업안전보건법 제2조 제3호의 규정의 사업주로 규정된 점에 비추어 사용사업주는 신의칙상 보호의무를 부담한다고 봄이 지극히 타당하다. 물론 제조업 내 불법파견과 수차례에 이르는 다단계 하청구조가 팽배해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비단 대상판결과 같이 근로자파견법이 직접 적용되지 않더라도 사실상의 고용관계가 형성된 경우라면 동 판결의 취지에 따라 사용자는 보호의무, 즉 안전배려 의무를 부담한다고 볼 것이다.

나아가 판결문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제조업 생산라인에 파견노동자가 일하는 것이 현행 근로자파견법의 위반의 소지가 분명하다는 점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대상판결과 같이 ‘삼면적’ 근로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많은 파견노동자들은 사용사업주의 실질적인 지배하에 노무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파견노동제도의 존재 필요성에 대해 다시금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으며, 또한 법 위에 군림하면서 파견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파견노동 사용업체의 각종 산업안전보건법 위반행위에 대해서도 철저한 개선책 마련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각주]
1) 형법의 영역에서도 자기의 지배영역 내에 일정한 위험원(물건·공작물 등)을 소유·점유한 자는 이로부터 타인의 법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할 보증인적 지위에 있으며, 안전의무를 부담하게 된다(형법 제18조 참조).
2) 상가 신축공사를 시공하는 건축주로부터 일부 공사를 도급받은 수급인에 의해 고용된 전문기술자가 공사 중 누전으로 사망한 사안에서 수급인의 안전조치의무 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사례다.
3) 인쇄재료 등의 판매회사에서 차량을 이용한 배달업무를 하는 운전기사로 근무하고 있던 자가 직원들끼리 회식을 한 후 다음 날 출차한다는 조건으로 주변 주차장에 주차돼 있던 위 업무용차량을 임의로 출차해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운전해 퇴근하다가 도로의 연석을 충돌하고 전복되는 사고를 일으켜 차량에 적재돼 있던 인화성 물질로 인한 화재로 사망한 사건에서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위 사고와 사망자의 업무 사이에는 관련성이 있다고 할 수 없어 손해배상 책임을 부정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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