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달 전남 광양시와 순천시를 방문했다.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을 1주일 앞둔 시점이었다. 광양과 순천은 포스코 광양제철소를 끼고 있는 배후도시다. 노동계는 일찌감치 ‘포스코와 삼성에 노조 깃발을 꽂겠다’고 공언한 반면 포스코는 ‘차별화된 복지와 인사제도를 구축했기 때문에 복수노조가 들어서지 않을 것’이라고 맞섰다. 그런데 광양제철소는 분위기가 달랐다. 민주노총 전남본부가 순천을 거점으로 삼고 있는 데다, 최근 야권 단일후보인 김선동 민주노동당 의원이 이 지역에서 당선됐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런 흐름이 광양제철소에서 새로운 변화로 이어지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광양제철소와 연관 산업단지, 광양만이 있는 광양시는 전라남도의 대표적인 공업도시다. 반면 순천시에는 대규모 제조업체는 없지만 제철소와 직·간접으로 연계된 노동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광양시에는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공장 정비와 증설작업에 투입되는 전남동부·경남서부건설플랜트노조(조합원 1만명)가 있다. 또 광양제철소와 광양만을 오가는 물류를 담당하는 이들의 상당수가 화물연대 조합원들이다. 건설일용노동자이거나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되는 노동자들이다. 광양제철소에는 정규직 6천300명과 42개 외주협력업체 소속인 하청노동자 7천40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현재 포스코에는 고용노동부로부터 설립신고증을 받은 정규직 노조(조합원 20명)가 있다. 이 노조는 노동계로부터 회사 노조(Company Union)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반면 포스코 광양제철소 외주협력업체에는 한국노총 소속 4개 기업별노조와 민주노총 금속노조 포스코사내하청지회가 조직돼 있다.

포스코는 81년 광양을 제2 제철소 입지로 선정해 85년에 1기 설비를 준공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여파를 타고 포항제철에도 노조가 설립돼 당시 대기업노조연대회의에 가입했다. 이어 89년 광양제철소 외주협력업체인 삼화산업에 노조가 설립돼 전노협에 가입했다. 기업별 노조로 출발한 삼화산업노조는 금속노조 포스코사내하청지회로 전환했다. 삼화산업노조는 전남동부·경남서부건설플랜트노조 등 지역 내 노조설립에 밑거름 역할을 했다. 사내하청노조임에도 광양지역에서 노조운동을 이끌었던 맏형 격이었다.

광양과 순천지역 노동계는 최근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지역 노동계는 복수노조 시대 개막에 앞서 광양제철소를 겨냥한 조직화의 토양을 만드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포스코사내하청지회·건설플랜트노조·화물연대 조합원뿐 아니라 지역 시민단체와 노동단체들이 지난달 18일 광양제철소 앞에서 집회를 열고 그 포문을 연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 계획은 성사되지 못했다. 5월31일 광주지법 순천지원에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낸 포스코사내하청지회의 입장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평균 근속연수 15년 이상인 사내하청 비정규직은 정규직 대비 50% 밑도는 임금을 받고 있지만 그 실태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사내하청 비정규직이 불법파견임을 증명해 파견법에 따라 고용의무가 발생하면 자발적인 가입이 늘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수의 사내하청 비정규직들이 가입해 포스코와 사내하청업체들로부터 집중견제를 받는 것도 고려됐다. 대법원으로부터 불법파견 철퇴를 맞은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조직화 사례를 참조했다.

비록 지역 노동계의 대규모 집회계획은 불발됐지만 복수노조 허용에 따른 조직화 작업이 중단된 것은 아니다. 포스코사내하청지회·건설플랜트노조·화물연대는 3자 협의체를 만들어 광양제철소에 공동대응할 계획이다. 각 조직에서 진행되는 단체교섭을 지원하면서 조직화 작업을 병행하겠다는 것이다.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설립이 허용된 후 지난 6일 현재 144개의 노조가 설립신고를 마쳤다. 이 가운데 무노조 사업장에서 설립된 신규노조는 13개에 불과하다. 대부분 기존에서 분화된 복수노조다. 노동계의 조직확대 전략이 무노조 사업장보다 기존노조가 있는 사업장에 치우쳐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반면 경영계는 포스코의 사례를 거론하며 노조가 없어도 되는 기업문화를 형성해 이미 예견된 일이라고 평가한다. 포스코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만족도가 높아 노조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는 섣부른 판단이다. 광양과 순천의 사례에서 보듯이 포스코와 직·간접으로 관련 있는 노조들이 이미 포스코와 노사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원청 정규직과 하청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조직화작업을 꾸준히 시도하고 있고, 지역 노동계의 분위기도 역동적이다. 포스코는 그간 끊임없이 외주화를 추진해 정규직조차 고용불안을 느끼고 있고, 차별과 격차 해소를 요구하는 사내하청 비정규직의 목소리가 높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포스코나 경영계는 너무 자만하면 안 된다. 정규직과 사내하청 비정규직 차별 해소, 하청 협력업체에 대한 무리한 단가인하와 불공정거래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포스코의 철옹성같은 노무관리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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