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달 30일 '서민생활 안정과 지속성장 기반 강화'라는 제목의 하반기 경제정책을 내놓았다. 이명박 정부가 하반기 경제정책 핵심으로 삼은 바는 물가안정·일자리창출과 내수기반 강화, 사회안전망 확충과 동반성장, 경제체질 개선과 지속성장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예상하고 있듯이 실제 정책 각론을 보면 별게 없다. 아니 오히려 서민생활 안정이라는 명분으로 부자들이 더 마음껏 부를 축적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MB식 역발상(?)이 곳곳에 눈에 띈다.

먼저 물가안정 대책에는 부동산 투기꾼들을 위한 부동산시장 규제완화 정책이 버젓이 자리 잡고 있고, 일자리 창출 대책에는 지금도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와 타임오프제 정착을 위한 정부 개입 강화가 제시되고 있으며, 내수기반 강화에는 의료민영화 정책의 일환인 투자개방형 외국 의료법인 도입이 있고, 경제체질 개선에는 공공기관에 대한 민영화 촉진 정책이 있다.

이런 정책을 서민생활 안정대책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이제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마저 머쓱하다. 솔직히 정부의 하반기 경제정책은 비판의 대상이라기보다, 아무리 정부가 친기업적이라 해도 이렇게까지 막무가내 정책을 밀어붙일 생각을 하는지 되돌아봐야 할 계기로 삼는 것이 적당해 보인다.

한국 경제는 근대적 산업화가 시작된 이래 최악의 분배상황을 보이고 있다. 노동소득분배율도, 지니계수 등의 소득불평등 지표도 모두 최악이다. 3년 동안 실질임금도 삭감됐다. 반대로 재벌 대기업들은 한국에서 자본주의가 시작된 이래 가장 많은 돈을 지난해 벌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세계적 신자유주의 흐름 때문인가. 대부분의 국가에서 부익부 빈익빈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소득불평등·노동시장유연성에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상위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속도 역시 다른 국가들보다 빠르다. 재벌 대기업 위주의 수출 중심 성장전략 때문일까.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출 비중을 보이는 스웨덴이나 독일은 경제위기 시기에 오히려 소득분배율이 향상됐고, 소득격차도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다. 특히 스웨덴은 한 그룹이 상장 기업의 절반 가까이를 소유할 정도로 대기업의 경제 장악력이 강한 나라인데도 한국과 차이가 크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노동운동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자본은 언제나, 어느 나라에서나 최대한의 이윤을 획득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이 점에서 서유럽의 자본과 한국의 자본은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이러한 자본에 맞서는 노동운동에는 차이가 있었다. 진보진영이 부러워하는 서유럽의 복지제도는 20세기 초 강력한 노동운동의 힘으로 자본을 타협장소에 끌어올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공장 울타리 안에 갇혀 기업의 시장경쟁에 노동이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전국적 산업노조를 통해 계급적 단결을 좀 더 크게 도모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진보진영은 경제위기 이후 복지를 이야기하고, 재벌 대기업 문제를 수 없이 이야기해 왔지만 정작 그 요체라 할 수 있는 노동운동의 힘에 대해서는 그다지 치열한 논의를 진행하지 못했다. 현재 한국 상황에 대해 정권과 대기업만이 아니라 노동운동도 중요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잠시 서민생활 불안의 핵심 원인 중 하나인 실질임금 감소 문제를 되돌아보자. 2009년에 실질임금이 감소한 원인은 세계적 경제위기도 있었지만 쌍용자동차 투쟁에 대한 정권의 탄압 이후 제조업 노조 전체가 꽁꽁 얼어붙어 제대로 된 임금교섭을 진행하지 못했던 점 역시 컸다. 지난해에도 금속노조의 주축 사업장인 자동차 부품사 노조들이 정권과 자본의 기획 탄압에 무너졌고, 완성차 노조들은 사상 처음으로 3사가 함께 무쟁의 타결을 봤다. 그리고 수많은 공공부문 노조들도 임금교섭은커녕 단체협약도 지키지 못해 무단협 상태로 한 해를 보내야 했다.

이런 결과 한국 경제에서 가장 많은 수출을 했다는 지난해에도 대부분의 기업들이 자연스레 실질임금 동결 혹은 감소를 관철시킬 수 있었다. 보수언론은 조직 노동자의 임금인상 요구에 대해 ‘집단 이기주의’라고 매도하고 있지만 사실 지난 역사를 보면 조직 노동자의 임금인상 투쟁은 그나마 한국 노동자들의 전체 임금을 상승시켜 나가는 중요한 힘이었다. 실질임금 감소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2~3년간 조직된 노동자들의 임금조차 올리지 못했을 정도로 민주노조운동 진영이 패배했기 때문이다.

올해 하반기 경제정세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는 이미 기대조차 없는 정권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운동이다. 7월에 본격적으로 진행될 임투, 저임금을 보충하기 위한 장시간 노동체제에 맞선 유성기업 투쟁, 사업조정 과정을 경영상의 문제로 속여 진행되는 정리해고에 맞선 한진중공업의 투쟁를 노동운동이 어떻게 바꿔 내는가가 문제다.

립서비스용 서민정책에 대한 일말의 기대도 없는 상황에서 많은 국민들은 노동운동이 현실을 어떻게 바꾸는가에 오히려 관심을 가지고 있다. 최근 희망버스 등에서 볼 수 있는 국민적 관심사가 그 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