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인정에 대해 1차 판정을 담당하는 행정기관은 근로복지공단·공무원연금공단·사학연금공단이 있다. 이후 당해 기관의 판정에 대한 행정심판이 있고, 이에 불복할 경우 종국적인 판단은 법원에서 하게 된다.

이 중 대표적인 근로복지공단의 판정절차를 살펴보자. 업무상재해는 사업장 관할 공단 지사가 담당한다. 업무상질병은 공단이 지역을 관장하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질판위)에 심의를 의뢰하고, 이 중 직업성 암은 산업안전보건연구원과 직업성폐질환연구소에 역학조사를 의뢰한다. 질판위는 이 기관들의 역학조사 결과를 토대로 판정을 내린다. 질판위를 거친 처분에 대해서는 산재보험심사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산재보험재심사위원회에 재심사를 청구할 수 있다.

이렇듯 질판위는 1차 판단기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질판위 구성을 보면, 전체 308명의 위원 중 신경외과 61명·정형외과 60명·산업의(예방의 포함) 44명·정신과 16명·내과 3명·기타 51명·변호사 및 노무사 31명·산재전문가 12명·조교수 이상 3명이다. 즉 신경외과와 정형외과 등 임상의사들이 다수를 차지해 이들의 판단이 곧 질판위의 판단이 되고, 공단의 산재판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임상의사들이 과도한 비중을 차지하는 구조는 심사위나 재심사위에서도 거의 동일하다. 심사위나 재심사위는 업무상질병에 대한 산재판정뿐 아니라 업무상사고에 대한 행정심판도 담당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근로복지공단→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산재보험심사위원회→산재보험재심사위원회’ 그리고 이후 법원의 판정절차(행정법원·고등법원·대법원)를 거쳐 최종 판단을 내린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법원 이전의 판정시스템은 '의사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판정을 하는 구조다. 위원 구성상 ‘의학적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업무상재해(업무상사고·업무상질병)는 의학적 판단이 선행돼야 하고, 이것을 반드시 필요한 구성요소로 봐야 하는 걸까. 먼저 산업재해보상보험법부터 살펴보자. 산재법 제5조(정의) 제1호는 “업무상의 재해란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근로자의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 제37조(업무상재해의 인정 기준) 규정은 업무상사고와 업무상질병은 “근로자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로 부상·질병 또는 장해가 발생하거나 사망하면 업무상의 재해로 본다. 다만,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없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국 법상 기준은 ‘상당인과관계가 있느냐 없느냐’일 뿐 의학적인 인과관계 또는 의학적인 발생기전을 요구하고 있지 않다. 이는 곧 업무상재해 여부에 대한 판단이 ‘의학적 판단’이 아니라 상당인과관계에 대한 ‘법률적 판단’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법원은 “업무상재해는 근로자의 업무수행 중 그 업무에 기인해 발생한 질병을 의미하는 것으로 업무와 사망 원인이 된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업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면 증명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대법원 2010.1.28. 선고 2009두5794 판결 참조)는 입장이다. 이 같은 상당인과관계론은 소위 '공동원인설'이라는 이론으로도 수렴되고 있다.

결국 현재의 산재 판단절차는 ‘임상의사의 지나친 비중’과 ‘이로 인한 의학적 원인주의 및 의학적 판단주의 경향’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의사들이 심사위 또는 재심사위에서 ‘근로자성 여부·당연적용사업장 여부·행사중사고 등’ 등 법률적 판단에 개입하게 되는 것도 문제지만, 질판위에서 ‘상병의 의학적 원인을 명백하게 밝히는 시스템’은 더 지양돼야 한다. 이는 산재법의 법률원리 및 규정해석, 법원의 인과관계에 대한 판시 내용상 당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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