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노조 SC제일은행지부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다. 30일 현재 나흘째다. 지부의 파업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쟁의행위 절차를 밟았으며, 본점과 지점의 영업을 방해하지 않았다. 합법파업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은행의 파업은 근래에 드문 일이었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인수합병과 구조조정으로 은행에서 파업이 빈번했다. 최근에는 인수합병설만 떴을 뿐 현재진행형은 없다. 메가뱅크를 둘러싼 논란만 계속되고 있다. 하나금융이 인수를 추진한 외환은행에서도 파업은 일어나지 않았다. 금융당국이 매각심사를 보류하면서 하나금융과 외환은행의 인수합병이 유야무야됐기 때문이다.

SC제일은행지부의 파업은 임금·단체협약 갱신협상 결렬이 표면적인 이유다. 그것도 2010년 임·단협의 연장선이다. 지난해 금융 산별교섭에서 2% 인상에 합의했으니 지부가 파업을 벌일 만큼 쟁점은 되지 못한다. 큰 폭의 감원을 동반하는 인수합병도 아닌데, 지부가 파업을 벌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노사는 개별성과급제와 후선배치 문제로 의견이 엇갈렸다. 은행이 도입하려는 개별성과급제는 영·미식 연봉제다. 개인별 실적평가에 따라 임금인상률을 차등 적용하는 것이다. 5등급으로 판정된 이들은 아예 임금이 동결된다. 2년간 5등급으로 평가되면 후선업무로 발령받는다. 올해 초 SC제일은행은 지점장급에서 실적이 좋지 못한 이들을 재택근무시켰다. 결국 이들은 퇴출됐다. 재택근무와 실적부진에 따른 당연면직 조항이 사규에 있었기 때문이다. 개별성과급제와 후선배치는 재택근무로 이어져 고용불안을 조성할 수밖에 없다. 성과향상이 아니라 사실상 퇴출프로그램이다.

SC제일은행은 대주주인 스탠다드차타드은행그룹(SCB)의 글로벌 인사방침이라며 버티고 있다. SCB는 지난 2005년 뉴브리지캐피털로부터 제일은행을 인수했다. SC금융지주의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으며, 배당금은 영국에 있는 SCB 본사로 흘러간다. 게다가 SCB는 인수하자마자 제일은행의 상장을 폐지했다. 개미군단(소액주주)과 금융당국의 감시망에서 합법적으로 벗어난 셈이다. 국부유출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배경이다.

2005년 SCB가 제일은행을 인수한 후 지난해 8월까지 3천억원어치의 부동산이 매각됐다. 제일은행 소유의 연수원과 영업점 등을 매각한 것이다. 이 매각대금이 SCB로 유출됐다는 의혹이 나왔다. SC제일은행과 SCB 간에 내부계정(MR)이 활용됐다는 증언도 제기됐다. 당기순이익에서 배당금이 차지하는 비율인 배당성향을 보면 SC제일은행은 지난해 62%가 넘었다. 배당금은 모두 대주주인 SCB로 흘러갔다. 문제는 지난해 SC제일은행의 순이익이 줄었다는 점이다. 결국 대주주인 SCB는 선택의 기로에 직면했을 것이다. 부동산 자산매각에 이어 임금비용을 삭감하느냐 아니면 고액배당을 줄이느냐…. 개별성과급제와 후선배치는 사실상 임금비용 삭감을 겨냥하고 있다. SC제일은행은 대주주인 SCB의 의중이 반영된 전자를 밀어붙이고 있다. 고배당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1조1천800억원의 매각차익을 챙긴 ‘먹튀’ 뉴브리지캐피탈이나 부동산매각·고배당에 혈안이 된 SCB의 행태는 별반 다르지 않다. 금융당국은 사각지대에 있는 SC제일은행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감독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국내 은행 중 어느 곳도 전 직원에게 개별성과급제를 도입하지 않았다. 미국계인 한국씨티은행에서도 상위직급에 국한해 성과연봉제를 실시한다. 이런 현실을 보면 SC제일은행의 개별성과급제 도입은 억지다. 지부가 집단행동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글로벌 인사제도 도입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더 이상 은행은 대주주의 고배당을 위해 직원과 국민들을 희생양으로 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제일은행은 외환위기 후 17조원의 국민혈세(공적자금)가 투입돼 회생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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