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서울지방노동청 서울강남지청장(노동부)은 한국발전산업노조(발전노조) 규약 중 ①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을 인정한 규정과 ② 조합원 총회를 거쳐 단체협약을 체결하도록 한 규정 등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위반된다며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시정명령을 했다.
이에 발전노조는 노동부의 규약시정명령에 대한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는데, 1심 법원(서울행정법원 2010.9.8.선고, 2010구합8928 판결)은 발전노조가 초기업별 노조이므로 해고자도 조합원 자격을 가질 수 있다고 판시해 해당 규정에 대한 시정명령은 취소했으나, 조합원 총회를 거쳐 단체협약을 체결하도록 한 규정은 노조 대표자의 단체협약 체결권을 침해하므로 위법하다며 노조의 청구를 기각했다.
원고(노조)와 피고(노동부) 모두 항소했고 본 리뷰의 대상판결을 행한 2심 법원은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을 인정한 규정에 대해서는 1심 법원과 판단을 같이 했고, 나아가 조합원 총회를 거쳐 단체협약을 체결하도록 한 규정에 대해서도 위법함이 없다며 시정명령을 취소하는 판결을 했다.

2. 먼저 살펴볼 두 가지 의의

대상 판결은 크게 세 가지의 의의를 가지고 있다. 본 리뷰에서 주제로 다루고자 하는 이른바 총회 인준권 조항에 대해 살펴보기에 앞서 다른 두 가지 사항을 우선 간단히 언급해보자.

먼저 이 판결은 노사자치주의 및 조합민주주의를 훼손하며 근래 급증하고 있는 노동부 및 노동위원회의 과도한 시정명령 행태에 대해 다시 한 번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보다 상세한 내용은 필자의 2011년 5월4일 판례리뷰 ‘노사평화를 해치는 진짜 주범은 누구인가’ 참조) “조합규약이 강행법규에 해석될 여지가 있다 해도 그렇게 해석하지 아니할 수 있고 더구나 강행법규에 위배되지 않게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기도 한 경우, 굳이 강행법규에 위배되게 규약을 해석한 다음 이를 시정하도록 하는 것은 자치법규인 규약 해석권을 행정청이 갖는 것이 돼 노동조합이 자주적,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것을 보장하기 위해 규약을 두는 취지에 반한다”는 대상 판결의 판시내용만 강조해보는 수준으로 지면관계상 넘어가자.

두 번째로 해고된 자의 노조법 상 근로자(노조 조합원) 신분유지 기한을 규정한 노조법 제2조 4호 라목 단서는 기업별 노조에만 적용되는 규정이고, 초기업별 노조의 경우에는 해고자나 실직자도 조합원 자격이 있다는 것이 일관된 법원의 판례(대법원 2004.2.27. 선고, 2001두8568 판결 등)인바 산업별노조인 발전노조에서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을 인정한 규약은 애초부터 문제될 소지조차 없었다. 그런데 노동부는 대법원 판례도 무시하는 위법한 행정해석을 역시 일관되게 고집하고 있으니 도대체 이 나라가 법치국가이긴 한 것인지 답답할 따름이다.(관련 내용은 필자의 2010년 8월18일 판례리뷰 ‘노동부, 최소한 판례대로만이라도 하자’ 참조)

3. 노조 대표자의 단체협약 체결권 및 그 제한 범위

옛 노조법에는 노동조합 대표자의 단체협약 체결권에 대한 명시적 규정이 없어서 대표자의 단체교섭권한에 단체협약 체결권이 포함돼 있는 것인지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어 왔으나 1997년 법 개정(1997.3.13. 개정, 법률 제5310호)으로 노동조합 대표자의 단체협약 체결권이 노조법에 명문화되면서 일단 논란은 종지부를 찍었다.

대신 당해 조항에 대한 위헌논란이 제기됐고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노동조합의 대표자 또는 노동조합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자에게 단체교섭권과 함께 단체협약체결권을 부여한 이 사건 법률조항의 입법목적은 노동조합이 근로3권의 기능을 보다 효율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조건을 규정함에 있다 할 것”이라는 이유로, “비록 이 사건 법률조항으로 말미암아 노동조합의 자주성이나 단체자치가 제한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근로3권의 기능을 보장함으로써 산업평화를 유지하고자 하는 중대한 공익을 위한 것으로 그 수단 또한 필요·적정한 것이므로 헌법에 위반된다고 할 수 없다”고 합헌결정을 했다(헌법재판소 1998.2.27. 선고, 94헌바13·26, 95헌바44 병합 결정).

한편 노동조합 대표자의 단체협약 체결권이 인정된다하더라도 그에 대한 조합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른 제한이 가능한가, 또 가능하다면 그 범위는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논란이 더욱 중요한 의제로 제기돼 왔다. 이에 대해 대법원(전원합의체)은 “노동조합의 대표자 또는 수임자가 단체교섭의 결과에 따라 사용자와 단체협약의 내용을 합의한 후 다시 협약안의 가부에 관해 조합원총회의 의결을 거쳐야만 한다는 것은 대표자 또는 수임자의 단체협약 체결권한을 전면적·포괄적으로 제한함으로써 사실상 단체협약체결권한을 형해화해 명목에 불과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노동조합 대표자의 단체협약 체결권을 전면적·포괄적으로 제한하는 총회 인준권 조항은 위법하다는 내용으로 입장을 정리했다(대법원 1993.4.27.선고, 91누12257 판결).

그러나 이러한 대법원의 견해로 인해 이른바 직권조인이라 불리는 노조 대표자의 극악한 비민주적 행태가 오히려 법의 보호를 받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이로 인한 또 다른 분쟁이 촉발되고 있어 판례의 입장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노조법이 노조 대표자의 단체협약 체결권을 규정하고 있다고 해서 체결권에 대한 일정한 제한(단체협약 체결뿐만 아니라 단체교섭의 절차와 방식 및 내용 포함)까지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규정인 것은 아니다. 생존권적 기본권이자 사회권적 자유권인 노동3권 중 가장 중심적 권리는 단체교섭권이라 할 때 단체협약은 개개 조합원의 근로조건 및 처우에 관한 기준을 직접 결정하는 규범적 효력을 가지는 것이므로 그 실질적 귀속주체인 조합원들의 총의가 곧 조합의 의사이고 단체협약은 이에 근거해 체결돼야 한다. 나아가 자주성과 민주성은 노동조합의 실질적 성립 및 존속요건이기도 한바, 대표자의 어용화나 배임행위를 견제하고 노조의 자주성과 민주성을 확보하기 위해 조합원들이 노조 대표자의 교섭이나 단체협약 체결을 감시 및 감독하고 통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도 당위적인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노조 대표자의 단체협약 체결권을 노동삼권 실현의 기능적 효율성을 보장해주는 조건으로 보고 이를 통한 산업평화 유지를 중대한 공익으로 간주해 조합민주주의에 대한 불합리하고 위헌적이기까지 한 제한을 인정하고, 노조 대표자의 단체협약 체결권을 확대 해석해 그에 대한 민주적인 제한조차 과도하게 금지하는 대법원의 견해는 동의하기 어렵다.

4. 조합민주주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대상 판결은 노조법에서 단체협약에 관한 사항을 총회 의결사항으로 정하고 있는 점, 노조에서 가장 중요한 단체협약 체결에 조합원 총의를 반영해 조합민주주의를 실현할 필요가 있는 점, 실질적 합의에 이르기 전에 조합원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절차로서의 총회 결의는 사용자측으로 하여금 성실 교섭을 하기 어렵게 할 우려가 없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교섭 과정에서 노조 대표자는 총회 결의를 통해 조합원 총의를 계속 수렴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는 전제 하에 이 사건의 경우 규약에 대표자의 단체협약 체결권을 명시하고 있고, 총회 결의를 거쳐 단체협약을 체결하도록 했을 뿐 사측과 합의된 안에 대해 단체협약 체결에 앞서 총회 결의를 거쳐야한다고 하고 있지는 않은 점, 총회 결의를 거치지 않거나 결의에 위반한 단체협약의 효력을 부인하고 있지도 않은 점 등을 근거로 발전노조의 규약이 노조 대표자의 단체협약 체결권을 본질적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판례 취지에서 벗어나지는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조합민주주의의 원칙에 가까운 규약 해석을 해내기 위한, 아쉽지만 고심이 녹아있는 판결로 생각된다. 다만 노동현장 안에서 노무사로 일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많은 판례나 학설들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지극히 현학적인 논리로 보일 때가 많다. 노동3권의 본질이나 성격, 조합민주주의의 원칙 등을 어렵게 분석하고 해석할 필요조차 없어 보인다. 대다수 민주노조가 최소한의 민주성을 구현하기 위해 당연히 규정하고 있는 총회 인준권 조항이 그 자체로 노동삼권의 효율적 기능을 방해하거나 산업평화의 유지를 해한 실제 사례가 있는가. 오히려 노조 대표자의 직권조인이, 총회 인준권 조항이 위법하다는 판례가, 또 남발되는 노동부의 시정명령이 노동3권의 효율적 기능을 방해하고 산업평화를 해친 사례는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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