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린이 주 : 서정희씨는 남동공단을 다니다가 93년부터 만 8년동안 대우자동차에서 일하다 지난 2월17일 1750명의 동료들과 함께 정리해고된 조립2부 대의원 전종운씨의 부인입니다. 서와 전씨 부부에게는 21개월 된 아들이 있습니다.

어느 날인가 우리에게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 당신이 아는 분의 소개로 대우자동차 원서를 들고 왔습니다. 그때 당신의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얼굴 가득 상기된 모습으로 '나도 이젠 대기업 노동자가 될 수 있어'하며 얼마나 들떠 있었던지.... 그토록 바라던 대우자동차에 입사해 주야간 2교대 작업으로 허리 통증이 한 달이상 계속돼도 '힘들지만 아끼고 절약하고 욕심 내지 않으면 아이 한 둘쯤 낳고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살아왔습니다.

사실 IMF 이후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임금을 70%만 지급한다고 해도 '나라가 어려운데 고통을 함께 해야지' 생각했고, 임금협상 때에도 인상은커녕 복지, 후생까지 후퇴시키면서 고통분담을 했습니다. 나중에 임금이 체불돼 아이 우유 값까지 부담스러워 끊을 정도로 더 이상 졸라맬 허리도 없이 살았습니다.

언론에서 곧 1750명의 해고자 명단을 발송할 회사가 것이라고 할 때, 가슴을 졸이며 이 상황이 한낱 꿈이길 바랬습니다. 그리고 노조에서 순환 휴식제와 위로금 지급 내용을 가지고 최종 협상에 들어갔다는 전화에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걸고 있을 때 이미 회사는 1750명의 명단을 발표했다는 보도가 나오더군요.

회사를 살리겠다는 놈들이 고작 뒤꽁무니로 우리의 뒤통수를 치다니? 입술을 부르르 떨며 그 동안 고통분담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온 내 자신이 억울해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꼈습니다. 그날 저녁, 벌써 일주일째 들어오지 않아 아빠 얼굴을 잊어 가는 아이를 재우고 이후 어떻게 해야 할지 밤새 뒤척이며 고민했습니다. 생각하다 지쳐 울고, 울다 잠이 들고, 깨면 다시 가슴 졸이면서 뜬눈으로 새우고 해고 통지서를 받는 날, 집 안밖을 수십 번씩 나갔다 들어갔다 안절부절못했습니다. 이건 부당해고다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제발 우리 집에는 그 통지서가 배달되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습니다.

결국, 도저히 집에 있질 못한 채 20개월 된 아이를 들쳐업고 회사로 향하는 그 시간 해고통지서를 받은 사람들이 이미 하나 둘 모여들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집에 못 들어와 까칠까칠해진 아이 아빠의 얼굴, 푹 눌러쓴 모자 사이로 삐죽삐죽 삐쳐나 온 수염, 더럽혀진 작업복. 그날 당신이 "나는 빽이 든든해서 해고되지 않을 거야"했던 말이 사실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제발 정리해고가 우리를 피해가길 그때까지도 바랬습니다.

하지만 농성장 안에 들어선 순간, 우리가 피해갈 수 없음을 느꼈습니다. 자식보다 아내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들인데, 힘들 땐 술친구로 기쁠 땐 형제처럼 라인 작업대 위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한 사람들인데... 해고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으면 오히려 견디기 힘든 죄책감으로 더 힘든 생활을 할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솥밥을 먹고 때로는 싸우면서 정든 동료들을 단 한사람도 배신 못할 당신이, 앞에 나서지도 뒤에 처지지도 않고 꾸준히 사람들을 만나고 성실하게 일하던 당신, 당신의 뼛골이 뒤섞인 일터, 당신의 동료들이, 형님들이 평생동안 지켜낸 일터.

내가 함께 할께요. 차라리 해고자 명단에 당신의 이름 석자가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더 다행스럽다고 여기기로 했습니다.

이제 막 '엄마, 아빠'를 불러대는 아이가, 유난히 겁 많고 소심해서 엄마의 속을 태우던 아이가, 그런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모질기만 한 싸움터에 데리고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아이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맡길 곳이 없어 들쳐업고 나온 아이를 질질 끌어다 놓고, 그 어린아이 앞에서 어미를 닭장차에 쳐 넣고 연행하는 현실, 20개월 된 아이가 연행돼야만 엄마와 함께 있을 수 있는 현실이 아이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아이에게 자연을 알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사람 사는 냄새를 맡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이의 꿈을 그대로 표현해 내고 싶었는데, 그런 우리 아이는 엄마의 슬픈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며 불끈 쥔 주먹을 앞으로 내밉니다.

그 모진 눈보라에 유난히도 추웠던 이 겨울에, 싸움을 시작해서 봄을 앞두고 있습니다. 아직도 인천 산곡동 성당 천막 안에서는 어린이들이 올망졸망 모여 우리에게 희망의 꽃씨를 날리기 위한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이 설움을 아이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우리 가족들은 마음과 마음을 엮어 결코 끊어지지 않는 질긴 노동자의 아내, 노동자의 엄마로 싸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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