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인위로 추진하는 메가뱅크(초대형은행)가 금융시장 질서를 왜곡할 뿐만 아니라 은행산업 독·과점을 강화시켜 예금자들과 국민에게 피해를 입힐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메가뱅크, 국민에게 득인가 실인가' 공청회에 참석한 교수·전문가들은 메가뱅크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했지만, 현 시점에서 이를 추진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고 한목소리로 주장했다. 이날 공청회는 금융산업노조(위원장 김문호)와 박선숙(민주당)·이정희(민주노동당)·유원일(창조한국당)·조승수(진보신당) 의원이 공동으로 개최했다.

 

국내은행 자산 1천722조원, 편중 심각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성균관대 겸임교수)은 이날 토론회 발제에서 "메가뱅크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리스크 관리와 자산운용, 안정적 자금조달 능력을 갖추지 못한 인위적 메가뱅크는 시기상조"라고 강조했다. 또 "정부 주도로 메가뱅크를 설립하기보다는 시장에서 자생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박 연구위원은 "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내 은행산업은 구조조정을 통한 대형화를 꾸준하게 추진하면서 국내 금융산업의 은행 편중 현상이 심화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우리금융지주는 2001년 4월 한빛·평화·경남·광주·한아름종합금융 등이 통합해 탄생했고, KB국민은행은 같은해 11월 주택은행을 합병했다. 2002년 12월 하나은행이 서울은행을, 2003년 6월 신한은행이 조흥과 제주은행을 각각 합병했다.

박 연구위원은 "지난해 말 현재 국내 예금은행의 자산규모는 1천722조4천억원으로 2000년 말에 비해 2.3배나 성장했다"며 "이는 같은해 기준으로 은행 다음으로 자산규모가 큰 생명보험(408조5천억원)보다 4배 이상 높고 증권(200조원)·손해보험(99조원)·저축은행(86조8천억원)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은행 대형화에도 국제경쟁력 하락

문제는 은행(혹은 금융지주)들이 합병·대형화를 통해 몸집을 불렸음에도 국제 금융경쟁력이 오히려 악화됐다는 것이다. 박 연구위원은 "지난해 말 기준 KB국민은행의 자산규모는 254조9천억원, 우리은행은 217조9천억원으로 세계은행 순위에서 각각 69위와 71위를 차지했고, 200위권 안에 국내 6개 은행이 포함돼 있다"며 "그러나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평가한 한국의 금융산업 국제경쟁력 순위는 외환위기나 카드대란 직전인 95년 34위나 2002년 29위에서 2010년 30위·2011년 28위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세계경제포럼(WEF)이 평가한 금융시장 성숙도는 지난 2009년 58위에서 지난해 83위로 추락했다"고 우려했다.

은행 대형화로 국내 금융산업의 독·과점이 심화하면서 국내 소비자금융시장이나 자산운용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구조적 리스크가 높아지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그는 "가계부채가 800조원에 이르고 부동산시장 침체로 국내 금융시장 리스크가 높아진 상태"라며 "무리한 외형 확대를 추구하다가 공멸에 직면한 저축은행의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금융시장이 포화인 상태에서 자산 200조원 이상을 관리할 능력이 국내 금융권에는 미흡한 상태"라며 "메가뱅크는 리스크관리 및 자산운용 능력 등 국내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한 후에야 고려할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국내은행, 덩치만 큰 아이”

이동걸 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은 "우리나라 은행은 덩치만 큰 아이"라며 "국내 시장은 작은데 규모만 키우면 영양실조에 걸리거나 아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비유를 통해 메가뱅크 반대론을 펼쳤다.

이 전 위원장은 "메가뱅크 핵심 논리는 국내은행이 작으니까 덩치를 키워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은행을 만들자는 것"이라며 "그러나 국내은행은 절대적인 수치나 상대적인 규모로 평가해도 충분하게 규모가 크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세계 100위권 안에 드는 KB·우리·신한은행의 자산규모는 거대 경제규모인 미국의 현지 은행과 비교해도 10위권에 들 정도다. 상대적인 규모를 살펴봐도 우리은행(약 220조원)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9.1%를 차지하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미국 GDP 대비로 환산하면 2조8천억달러(19.1%) 규모인데, 미국에서도 자산규모가 1조달러가 넘는 은행은 4개밖에 없다"며 "우리은행을 포함한 우리금융지주사 전체(약 290조)의 상대적 규모는 국내 GDP의 24.8%를 차지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정황을 살펴볼 때 메가뱅크를 만들어야 국내 은행산업이 발전한다는 논리는 허구"라며 "지금은 규모보다는 국제 금융시장 경쟁력을 확보하는 질적인 발전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산업+우리' 메가뱅크, 금융권 '대운하사업'

이 전 위원장은 메가뱅크 중에서도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산은지주와 우리지주의 합병에 대해 "위험할 정도로 너무 큰 규모"라고 우려했다. 두 은행의 자산규모만 336조7천억원(GDP 대비 28.7%)에 달하고 지주사 연결기준 총자산액은 450조9천억원(38.4%)나 되기 때문에 어떤 경제위기가 일어나든 그 위험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그는 "메가뱅크, 특히 산은과 우리의 합병은 금융산업에 있어 4대강·대운하사업과 마찬가지"라며 "너무 큰 규모는 오히려 실패를 부르고 시스템 리스크를 증가시키면서 우리나라 금융산업에 되돌릴 수 없는 피해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양적인 성장보다는 질적인 성장을 추구할 때라는 의견에 공감했다.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경제학부)는 "규모를 제한하고 감독을 강화하면서, 대마불사를 믿고 고위험·고수익을 추구하는 금융관행을 없애라는 것이 국제적인 추세"라며 "한국의 메가뱅크는 이런 국제적인 논의와 거리가 멀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아일랜드는 정부 정책에 따라 소수 금융기관만 키우다 나라경제가 풍비박산했다"며 "국내 금융경제력 강화는 관치의 압력을 금융부문에서 철수시키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준환 유한대 겸임교수(외환은행 되찾기 범국민운동본부 사무처장)는 "글로벌 경쟁력은 대형은행이 아닌 해외 네트워크를 형성한 '작지만 강한은행'도 갖출 수 있는 무기"라며 "국내 4대 은행이 국내 금융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는 현실에서는 덩치를 키우기보다는 질적인 경쟁력을 갖추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대형화와 글로벌화라는 말은 전혀 다른 말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합병 쓰나미, 피해는 국민에게”
산업-우리, 두 노조 모두 메가뱅크 반대
메가뱅크 논란의 당사자이자 주체인 금융노조 산업은행지부와 우리은행지부는 지난 3일 국회 토론회에 참석해 "메가뱅크나 산은지주와 우리지주 간의 합병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강태욱 산업은행지부 위원장은 "산업은행은 국내 유일무이한 투자은행"이라며 "일부 부족한 수신기반만 확보하면 독자생존 여지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강 위원장은 "거대 금융기관과의 무리한 인수·합병은 투자은행으로서의 산업은행(산은지주)의 가치를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며 "필요하다면 국내외 소규모 인수합병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는 것이 산은이 보유한 투자은행 역량을 살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또 "산업은행과 우리은행의 합병시 인적 구조조정은 필연적인 과정"이라고 우려했다.
임혁 우리은행지부 위원장도 "산은지주와 우리지주가 합병하면 자산 450조원에 달하는 거대 금융회사가 생기는데, 이는 금융산업의 합병 쓰나미를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자산규모 우위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메가뱅크가 또 다른 메가뱅크를 불러올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임 위원장은 "결국 국민은 앞으로 2~3개 거대 은행과 거래를 할 수밖에 없고, 금융산업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에 시달릴 것"이라며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경쟁입찰에 의한 분산매각, 즉 대규모 블록세일(Block Sale)을 우리지주의 바람직한 민영화 방식으로 제시했다. 김봉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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