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최근 경영합리화를 이유로 단행된 구조조정이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대법원은 진방스틸 해고노동자 17명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 취소 청구소송에서 이같이 판결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기업이 정리해고를 단행하려면 기업 자체가 존폐 위기에 처할 만큼 심각한 재정적 위기가 도래했거나 예상치 못한 급격한 경영상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노사가 체결한 고용안정협약에도 주목했다. 단체협약으로 고용안정을 약속해 놓고 이를 어기고 노동자들을 해고한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다. 이런 형태의 구조조정은 인력을 대규모로 감축한 대부분의 기업이 취한 방식이다. 그동안 노동위원회도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를 느슨하게 해석하는 경향을 보였다. 대법원 판결의 의미는 무엇이고,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까.


"당연한 사실 확인, 그러나 진일보한"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장

진방스틸코리아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노사가 합의한 고용안정협약을 위반한 정리해고는 부당하다는 내용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지만 이전에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고용안정협약의 효력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한 공기업 구조조정 사건에서는 노사가 '경영상의 이유로 구조조정을 할 때 노사가 합의한다'는 내용의 고용안정협약을 체결했지만 법원이 그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법원은 회사 경영사정이 어려워져 구조조정 등 정리해고를 해야 할 상황이 됐다는 점만 고려해 판결했다. 노사가 합의한 협약은 인정받지 못했다.
고용안정협약은 대부분 노조의 요구에 의해 제기되는 사안이지만 회사측도 합의해 체결했다는 점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할 사안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협약이 유효하다고 봤다. 그 특별한 사정도 기업이 예상치 못한 급격한 경영상의 변화 등 중대한 사정일 때만 인정한다고 판결했다. 기존 판결에 비해 '긴박한 경영상의 요건'이 강화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구체적인 사건을 두고 판결이 내려졌던 만큼 비슷한 사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된다.


“진방스틸, 한진중과는 경영사정 달라”
황인철 한국경총 기획홍보본부장


진방스틸 정리해고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고용안정협약’이 있는 경우 정리해고를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정리해고 관련 노사에 성실한 협의의무를 부과한 것으로 봐야 한다. 고용안정협약 자체가 판결에 절대적인 효력을 미친 것이 아니다. 이번 판결의 취지는 노사, 특히 회사측이 일자리 유지를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고용안정협약과 별도로 근로기준법상 정리해고 요건을 모두 갖췄다면 해고의 정당성이 인정될 수 있다.
이번 판결이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사태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진방스틸과 한진중공업의 경영사정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한진중공업은 국내에서 선박을 건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고부가가치 선박에 주력하겠다는 경영방침도 노조의 반발에 부딪혀 실현되지 못했다.
오히려 정리해고의 요건이 완화돼야 한다는 것이 경영계의 입장이다. 미래의 경영환경에 대한 전망을 토대로 인원 조정이나 사업 축소 등을 계획하는 경우 이런 다양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관련법이 재정비돼야 한다.


“법원도 기업 편향 잘못 인정”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진방스틸에 대한 대법원 결정은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에 대해 엄격하게 해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기존 판례는 정리해고가 필요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장래에 올 수도 있다는 위기’까지 넓게 봤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장래에 위기가 올 수 있다 하더라도 ‘현재 기업자체가 존폐위기에 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긴박한 경영상위 위기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동안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빙자해 무분별하게 정리해고를 하던 기업의 관행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다. 법원이 그동안 표면상으로만 경영상의 위기를 내세워 인력을 감축하는 기업들의 손을 들어줬던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한 했다는 점도 큰 의미가 있다.
다만 이번 판결이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는 단체협약의 효력을 인정해 내린 판결이라는 점은 다소 아쉽다.


“대법원 판결, 노동부 행정해석과 일맥상통”
박종길 고용노동부 근로개선정책관


진방스틸코리아의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대법원의 판결은 올해 2월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을 그대로 인정한 것이다. 당시 고용노동부에서 판결문을 분석했는데, 정리해고 요건과 관련한 기존 해석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대법원 판결 역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요건에 대한 노동부의 기존 행정해석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회사 인수 뒤 기업이 존폐 위기에 처할 심각한 재정적 위기가 도래했거나 예상하지 못했던 급박한 경영상 변화가 있는 경우 등 특별한 사정이 없을 경우에 한해 고용안정협약이 유효하다"고 밝혔다. 이는 존폐 위기에 처할 정도의 심각한 재정위기나 예상 못한 급박한 경영상 변화라는 단서조항에 한해서만 고용안정협약이 유효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재판부는 또 경영상 필요에 의한 해고의 정당성 여부는 고용안정협약을 맺은 경위나 동기, 협약 체결 이후 변화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모든 사업장에 일반적으로 적용하는 게 아니라 사례별로 판단해야 한다는 얘기다. 현재 정리해고 문제로 논란이 되고 있는 한진중공업 사건도 법원이 종합적으로 검토해 판단할 것이다.

 
“시의적절하고도 당연한 판결”
이호근 전북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진방스틸 사건의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취소’와 관련한 대법원의 판결은 시의적절하고도 당연한 결정이다. 근로기준법 제24조는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의 제한’ 규정에서 그 요건으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 해고회피 노력의 이행,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고의 기준설정, 근로자측과의 성실한 협의 등을 규정하고 있다. 단 경영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사업의 양도·인수·합병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본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진방스틸 사건의 경우 2007년 경영권의 인수시 노사가 특별단체교섭을 통해 단협의 승계와 함께 “인위적으로 구조조정을 시행하지 않는다”는 ‘고용안정협약’을 체결한 데다, 협약체결 당시 예상치 못한 특별한 사정변경이 발생한 경우도 아니다. 오히려 경영권 인수 이후 시점인 2007~2008년에는 국내 강관가격이 올라 사상 최대수준의 매출을 올리는 등 고용안정협약의 효력을 배제할 합리적인 사유가 없었고, 정리해고의 사회적 상당성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부당해고 판결은 당연한 결정이다. 특히 기업자체가 존폐의 위기에 처해 있거나 심각한 재정적 위기, 예상치 못한 ‘급격한’ 경영상의 변화 없이 일시적인 매출감소나 기타 통상적인 경영합리화 조처 등에 의한 그간의 정리해고의 관행에 법원이 제동을 건 사례로 그 사회적 의의가 주목된다. 무엇보다 불가피한 정리해고시에도 적극적인 해고회피 노력이나 충분한 사회적 상당성이 있는 조처를 다하지 않고 이뤄지고 있는 최근의 정리해고 관련 사건에 많은 시사점을 주는 판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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