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엔진 부품업체인 유성기업 노사의 갈등을 계기로 ‘주간연속 2교대제’가 자동차업계의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98년 고용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 제기된 주간연속 2교대제는 10년 넘게 풀리지 않고 있는 어렵고 복잡한 과제다. <매일노동뉴스>가 자동차업계 주야 맞교대 생산시스템의 문제점을 점검하고,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을 둘러싼 업계의 분위기를 살펴봤다.


#. 내 이름은 고성수. 올해 나이 서른일곱. 충남 아산에 있는 유성기업이 나의 직장이다. 인터넷 검색어 1위까지 오른 우리 회사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진 않겠다. 지난 24일 경찰력이 투입돼 공장 안에 있던 조합원 506명이 연행될 때 나도 잡혀 갔다. 그 뒤 경찰조사를 받고 풀려났지만 회사 문은 열리지 않았다. 회사는 직장폐쇄를 풀지 않았고 용역들도 철수하지 않았다. 마을 이장님이 내준 비닐하우스를 거점 삼아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다들 아시다시피 유성기업에서 벌어진 이번 사단은 “밤에는 잠 좀 자자”는 요구에서 비롯됐다. 올해로 입사 12년. 12년 동안 나는 일주일은 낮근무, 일주일은 밤근무를 했다. 야간조일 때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6까지 정취근무를 한 뒤 매일 2시간씩 연장근무를 했다. 새벽 2~4시쯤이 제일 힘들다. 졸면서 일할 때가 허다하다. 아찔한 순간은 때때로 찾아온다. 기계에 손이 끼거나, 주물을 붓다 화상을 입기도 한다. 하루 10시간씩 주야로 돌아가는 맞교대 시스템은 시간이 흘러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힘에 부친다.

아침 8시. 해가 훤히 떠오른 시간에 퇴근을 한다. 딸 둘은 어린이집으로 학교로 갔을 시간. 집에 도착하면 아내가 밥을 차린다. 퇴근하고 먹는 이 밥은 아침인가 저녁인가. 밥을 다 먹고 TV 리모콘을 집어든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며 시간을 때운다. 낮 12시쯤 점심을 먹고, 낮 1시쯤 잠이 든다.

서너 시간 눈을 붙였나. 더 자고 싶어도 잘 안 된다. 이래서 잠은 밤에 자야 되나 보다. 잠은 이미 달아나 버렸지만 눈을 감아 버린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 무기력감이 밀려온다. 매일매일이 그렇다. 신경이 예민해진다. 아내가 청소기라도 돌릴라치면 “조용히 좀 해” 하고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럴 땐 애들도 나를 슬슬 피한다.

최근 두 달 정도 신경정신과에 다녔다. 수면제와 안정제를 처방받아 먹었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고혈압에 협심증·과민성대장증후군 증세도 있다고 한다. 비록 의사는 아니지만, 밤낮이 바뀌고 잠을 깊게 못 자서 생긴 병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주간조로 바뀌어도 화요일까지는 무기력증이 계속된다.

최근 진행된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조합원 78.2%가 ‘주간연속 2교대제’ 시행을 위한 파업 돌입에 찬성했다. 10명 중 8명이 지금과 같은 주야 맞교대에 반대한 셈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만성적인 무기력감에서 벗어나 남들처럼 생활하고 싶은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남들과 같은 생활패턴이 주어진다면 해 보고 싶은 일이 많다. 바람 부는 강변에 나가 조깅을 하고, 딸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싶다. 욕심이 너무 과한가.

심야노동에 노동자 건강 적신호

현재 국내 기업의 약 44%가 야간노동을 실시하고 있다. 이 중 40%가 일주일 단위로 주야 맞교대 근무를 한다. 자동차업계에서는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한국GM이 주야 맞교대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들 업체에 거의 실시간으로 부품을 대는 협력업체 중 상당수도 주야 맞교대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근무형태는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위협하고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대한산업의학회는 야간근로로 인한 생리적 기능 이상(유산·조산)·불면증·수면 장애·소화기 장애·심혈관계 질환을 경고했고, 최근에는 신경정신의학계가 정신질환과 야간근로의 연관성에 주목하고 있다. 법원도 주야 맞교대 사업장 노동자의 건강 문제를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내용의 판결을 내놓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서울행정법원은 12년간 주야간 맞교대 근무를 한 노동자가 자신의 수면·각성장애를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해 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수면장애가 교대제 근무로 인한 업무상질병임을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도 2008년 ‘교대작업자의 보건관리지침’을 내고 △야간작업은 연속해 3일을 넘기지 않도록 할 것 △교대작업자, 특히 야간작업자는 주간작업자보다 연간 쉬는 날이 더 많도록 할 것 △야간근무 후 다음 근무 전 최소한 24시간 이상 휴식을 취하도록 할 것 등을 권고했다.

주간연속 2교대제는 노동자들의 건강을 좀먹는 주야 맞교대와 심야노동을 폐지하기 위한 유력한 대안으로 제기됐다. 10시간씩(10시간+10시간) 주야 맞교대로 돌아가는 현재의 근무형태를 8시간씩(8시간+8시간) 일하도록 바꾸자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시간 줄이기 프로젝트는 생각만큼 단순하지가 않다. 노동시간 단축을 넘어 생산방식과 임금체계, 노동강도와 설비투자 등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시행하기까지 노사는 곳곳에서 충돌할 수밖에 없다. 가장 먼저 주간연속 2교대제 논의를 시작한 현대차 노사가 10년 넘게 교대제 개편 논의를 마무리짓지 못하는 이유다.



느림보 걸음, 현대차 교섭

현대차 노사는 98년 고용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때 처음 주간연속 2교대제가 제안됐다. 그 뒤 2003년 노사 간 교섭의제로 확정됐고, 2년 뒤인 2005년 단체교섭에서 2009년 1월1일부터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2006년에는 교대제 변경과 연계한 월급제 시행에 노사가 합의했다.

노사는 2008년 단체교섭에서 ‘8+8’ 체제로 가는 과도기로 ‘8+9’(1조 8시간, 2조 9시간) 체제에 합의해 교대제 개편 논의에 진전을 이루기도 했다. 임금은 생산물량의 보전을 전제로 ‘10+10’ 체제를 기준으로 연간 총액임금을 보장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2009년 1월 전주공장 시범실시, 같은해 9월 전 공장 실시에 대한 합의도 이뤘다. 하지만 2008년 후반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자동차산업의 위기가 가시화되고, 여기에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집행부 사퇴까지 겹치면서 주간연속 2교대제 이행 여부는 공중으로 떠버렸다.

2008년 논의 당시 현대차지부는 ‘3무 원칙’을 내세웠다. ‘고용불안이 없고, 노동강도 강화가 없고, 임금삭감 없는’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이 원칙은 관철되지 못했다. 임금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강도 증대를 일정부분 수용해야만 하는 자기모순에 빠져 버린 것이다. 그해 교섭에서 노사는 생산물량 보전을 전제로 임금을 보전하고, 생산물량의 보전을 위해 ‘맨아워 위원회’를 설치한다는 데 합의했다. 당시 합의에 대해 엄교수 현대차지부 근무형태변경추진위원회 실무팀장은 “주간연속 2교대제는 노동시간을 줄이자는 것이지, 이 제도를 통해서 고용을 보장하겠다는 것은 설정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주간연속 2교대제의 본래 목적이 아닌 임금 보전까지 추가되면서, 심야노동을 철폐하고 노동시간을 줄이는 제도 본연의 취지가 퇴색하고 말았다”고 평가했다.

부품사 노사, 우리가 먼저?

자동차업계에서 주간연속 2교대제 논의의 ‘패턴 세터’ 역할을 해 온 현대차 노사가 2008년의 혼란을 겪으며 숨고르기를 하는 사이 몇몇 부품업체 노사도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을 위한 논의에 들어간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현대로템·현대모비스·오리엔스·일진베어링·한라공조·엠시트·세정·만도·깁스코리아·위아·유성기업·케피코·대원강업·메티아·세종공업·두원정공 등이 단체교섭을 통해 주간연속 2교대제 시행에 합의했다. 이 중 실제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곳은 경기도 안성 소재 부품업체인 두원정공이 유일하다.
 
두원정공은 지난해 9월21일부터 월급제와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시행하고 있다. 1조(주간조)는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근무하고, 2조(야간조)는 오후 4시부터 자정까지 일한다.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시행하면서 일체의 잔업을 없앴다. 물론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주말 특근은 열어뒀다.

생산물량은 주간연속 2교대제 시행 이전의 물량을 유지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이전의 물량은 8시간 정취근무에 해당하는 물량을 기준으로 계산한다. 교대제를 개편한 이후에도 기존 생산물량의 약 95%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임금 문제는 월급제 도입을 통해 해법을 찾았다. 기존 시급제 임금체계는 일을 많이 하는 만큼 급여가 올라가는 구조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의 함정에서 빠져 나오기 어려웠다. 이에 두원정공 노사는 월급제를 도입하고 월 30시간에 해당하는 고정 OT수당을 신설하는 방식으로 급여수준을 맞춰 나갔다.

주간연속 2교대제가 도입된 뒤 노동자들의 생활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축구모임 같은 사내동아리가 활성화되고, 집안일을 돕는다는 노동자도 늘었다. 일찍 퇴근해 술집으로 향한다는 노동자도 없지 않다. 금속노조 두정정공지회는 조합원의 여가 활용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회사나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여가활동 프로그램 지원 등을 요청할 계획이다.

하영철 금속노조 정책국장은 “회사가 생산물량의 소폭 감소를 감수하고 노조가 임금의 일부 축소를 감수한 결과 노동자들의 삶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며 “노사가 제도 시행의 필요성에 공감하면, 주간연속 2교대제 합의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부품사 합의, 완성차 교섭에 영향 줄까

두원정공의 주간연속 2교대제 시행은 ‘조용하게’ 이뤄졌다. 유성기업 사태가 있기 전까지 두원정공의 노사합의 사실은 업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유성기업 사건을 계기로 각계의 눈이 두원정공으로 향하자 노사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금속노조 두원정공지회는 최근 자체 회의를 통해 주간연속 2교대제와 관련해 언론의 취재협조 요청에 응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지회 관계자는 “유성기업 사태를 보면서 우리도 자본과 정부의 집중타깃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만큼 유성기업 노동자들에 대한 정부와 자동차업계·언론의 공세는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심지어 유성기업 교대제 개편논의에 현대차가 개입한 정황까지 드러났다. 유성기업 회사측이 작성한 쟁의행위 대응문건에는 “현대·기아차 (주간연속 2교대제) 시행 前 ‘先 시행’ 노사합의 방지”라고 명시돼 있다. 이 문건은 유성기업을 방문한 현대차 구매본부장의 차량에서 발견됐다.

현대차가 이처럼 일개 부품업체의 교대제 개편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종탁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부품사의 주간연속 2교제대 시행은 부품공급 시스템의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고, 이는 원청업체인 완성차기업들의 지배적 지위를 위협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현대차 노사의 교섭에 부품사의 합의내용이 직접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안재원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대차는 ‘부품사도 저 정도 합의를 하는데 우리는 왜 안 되냐’ 라는 현대차지부의 압박을 피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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