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장만 보면 무시무시한 사람인데 직접 뵈면 정말 착하신 분 같아요.“
나한테 징계해고 사건을 배당해 주던 다른 변호사님이 하신 말이다. 변호사에게 무언가를 원하는 의뢰인, 그 의뢰인의 말을 무조건 믿지는 않는 나는 ‘착한 사람’인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 채 노동자 한 분을 만났다. 처음 만났을 때 느릿느릿 말씀하는 모습이 또 해고를 당했다고 말하며 울먹거리시던 모습이 왠지 나쁜 분 같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해고통보서에 적힌 그분의 해고사유는 식당변경에 대해 원상회복 요구, 직원들의 융화저해 및 마찰로 인한 직원들 퇴직유발, 고의적인 교통사고 유발 위협, 할복협박이었다. 글자만 놓고 보면 당연히 해고돼야 할 것 같은 내용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그분은 팀원들로부터 선출된 팀장이었고, 팀장으로서 팀원들의 의견을 사장에게 전달했던 것뿐이다. 또 회사에 불만을 가진 팀원의 말을 술자리에서 언급했고, 해고당하고 나서 우는 소리로 “할복합니다”라고 조용히 말한 것뿐이다. 이러한 정황을 살핀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그분에 대한 해고를 부당해고로 판정했고, 그 뒤 회사가 행정소송을 내 법원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런데 그분이 해고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동료들과 함께 민주노총에 가입했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회사의 급격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7년 전과 비교해 한 푼도 오르지 않은 월급, 나아지지 않는 대우…. 그 때문에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보장받겠다는 생각으로 찾아간 곳이 민주노총이었다.
동료들과 함께 민주노총에 가입하자 사장이 그분을 조용히 불렀다. 사장은 식사를 하면서 “노조를 하지 마라”고 권유했다. 그분은 그동안 쌓아 온 정과 친분이 있는지라 “노조에 가입한 팀원들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면 탈퇴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장은 그로부터 한 달 뒤 그분을 해고했다. 겉으로 포장된 해고사유는 위에 적은 것과 같지만 실상은 노조에 가입했다는 것이 해고 이유였다.

소송이 진행됐고, 재판날짜 며칠 전 상대방으로부터 서면이 왔다. 서면에는 “그분이 사장에게 하극상을 했다”, “노조에 가입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분이 하극상을 했던 것이 노조 가입 이후였나 보다”, “우리 회사는 가족과 같은 분위기다” 등의 내용이 가득 차 있었다. 서면을 보니 마치 이 회사는 21세기 대한민국이 아니라 19세기나 20세기 어느 마을의 사업장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들과 우리의 후손, 자라나는 아이들은 법치국가에서 살고 있다고 배우고 그 법에 의해 우리의 기본권이 당연히 존중되고 보장돼야 한다고 배운다. 우리는 노동자로서 이 사회에서의 생존권과 자유·평등을 위해 뭉칠 수 있다고 배운다. 누구도 돈이 없다는 이유로, 권력이 없다는 이유로 무시 받아야 된다고 배우지 않는다. 우리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래 제목같이 사람이기 때문에 존중받을 수 있다고 배운다.

그런데 21세기 대한민국의 어떤 사업장에서는 “우리는 가족이니까 노조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그런 이유로 그 사람의 생계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간다. 그리고 그런 주장을 대한민국 법정에서 아무렇지 않게 하기도 한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법정에 같이 간 그분은 내내 불안해하고, 걱정과 염려로 얼굴이 펴질 새가 없었다. 그분은 재판이 끝나고 “부족한 사람을 위해 애써 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분은 함께 노조에 가입했던 동료들의 이름을 재판부에 밝히거나 가입원서를 제출하지 않겠다고 했다. 자기 혼자 피해를 당했으면 됐지, 다른 동료들에게 해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해고사유를 이유로 그분을 고소한 사건이 불기소처분되던 날, 기쁜 목소리로 전화하던 그분의 목소리를 듣자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판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분의 변호사로서 내가 바라는 바는 자유민주주의·법치주의 국가라는 이 사회에서 적어도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들의 기본권이 지켜지는 것이다. 그 권리를 지키기 위해 행동했다는 이유만으로 생계와 목숨을 걸어도 되지 않는 세상, 그런 세상 말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