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치러진 6·2 지방선거의 화두는 단연 야권연대였다. 선거연대이자 정책연대이기도 한 야권연대는 예상했던 대로 파괴력을 드러냈다. 연대는 선거 이후에 공동지방정부로 구체화됐다. 연대에 참여했던 정치세력과 시민·사회세력이 지방정부 운영의 한 축으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인천시에서는 시정참여정책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경상남도에서는 민주도정협의회라는 명칭을 얻었다. 지난달 재선거에서 당선된 최문순 강원도지사도 민주도정협의회 구성을 추진하고 있다. 도정협의회나 참여정책위원회는 말하자면 공동지방정부의 아이콘인 셈이다.

공동지방정부 아이콘 '도정협의회'

야권의 선거연합과 후보단일화의 아이콘인 도정협의회는 어떤 모습일까. 원조 격인 경상남도를 보면 이렇다. 민주도정협의회는 공동의장 2명, 위원 22명으로 구성된다. 위원은 시민·사회노동단체와 야권연대에 참여한 정당, 도지사가 추천한 인물이 참여하고 있다. 경남도의 설명에 따르자면 “도민과 행정기관이 함께하는 민·관 협치 방식의 정책자문단으로 운영되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주요 도정에 대한 자문역할을 하는 기구”다.

민주도정협의회가 야권연대의 아이콘이라면, 그 정점에는 강병기(51·사진) 경상남도 정무부지사가 있다. 민주노동당 후보로 김두관 지사와 도지사 자리를 놓고 경합했던 선거의 상대방이기도 하고, 야권연대로 구성된 공동지방정부의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민주도정협의회 의장을 맡고 있다.

강병기 정무부지사는 그러나 ‘조용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에 대해 '자기 색깔을 드러내지 않은 인물'이라고 평가한 지역여론이 생겼을 정도다. 강 부지사는 이에 대해 “처음부터 고민이었고, 지금도 고민”이라고 운을 뗐다.

“도정의 핵심 축은 지사이기 때문에 지사를 중심으로 가는 것이 맞고 (부지사는) 도움을 주는 형태의 포지션이 맞습니다.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진영의 정책을 계속 들이미는 방식도 한계가 있다는 생각 때문에 의도적으로 그런 부분도 있고요. 일정 중 80~90%가 보수진영 인사를 만나는 일인데 이런 분들에게 진보진영에 대한 왜곡된 인식, 잘못된 관념을 바로잡아 드릴 필요가 있지 않겠어요.”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일 농민운동가와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국회의원·도지사 후보를 거쳐 공무원이 된 강 부지사를 만나 공동지방정부 1년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경남도청 인근 식당에서 진행됐다.

만만찮은 ‘소리없는 저항’

경상남도에서 야권 도지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상 첫 정권교체인 셈이다. 인사나 정책에서 마찰이 없을 리 만무하다. 이에 대해 강 부지사는 “소리 없는 저항이 많이 있다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특히 의회와의 관계가 가장 껄끄러웠던 모양이다. 그는 “대폭인사를 하지 않았고, 일정하게 의견을 수용하면서 안고 가니 내부공직자 사회가 눈에 띄게 반대하지는 않았다”며 “당이나 의회 관계에서는 정책적인 이견이 드러나고 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무리 좋은 사업이라도 무조건 반대하고 나선다는 것이다. 실제로 ‘어르신 틀니 보조사업’은 예산이 삭감됐다가 사회단체의 반발로 복원되기도 했다.

특히 민주도정협의회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지난해 11월 초 민주도정협의회가 출범했을 당시 한나라당 경남도당은 해체를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이들은 “경남발전을 위해 여당·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공조를 하라는 도민의 여망을 무시하고 야당·일부 시민단체와 자기들끼리 갈 길을 가겠다는 독선에 다름 아니다”고 비판했다. 또 “도민이 직접 선출한 도의회를 무시하고 의회정치를 경시하는 포풀리즘적 정치행태”라고 주장했다.

논쟁은 정권교체 당시부터 시작했다고 봐야 한다. 도의회 본회의에서 한나라당 도의원들은 민주도정협의회를 놓고 “설치근거가 없는 불법조직”이라거나, “특정한 이념에 사로잡힌 정치조직을 만들어 그 조직의 요구사항을 도정에서 펼치려 한다”는 공세를 펼쳤다. 이런 질의에 김두관 지사는 “비난하고 매도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금도를 넘은 정치공세로 매우 유감”이라고 반발했다.

강 부지사의 말대로 공무원들의 저항이 ‘조용’했다면 의회와는 끊임없이 소란을 일으키며 대척해 온 셈이다. 현재 경남도의원 54명 중 한나라당을 당적으로 가진 도의원은 38명이다. 나머지 16석을 야당이 나눠 가진 것이다. 협의회 설치근거를 조례가 아니라 훈령으로 마련한 것도 이런 저항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강 부지사는 “처음 하다 보니까 걱정을 했는데 이제는 자리를 잡아 가는 것 같다. 자기 역할을 할 수 있지 않겠냐는 분위기가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의회와) 적당한 긴장관계는 계속될 것 같다”며 웃기도 했다.

하나 둘 나오는 성과

소란의 와중에도 공동지방정부의 성과는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무기계약직의 처우개선이다. 이들은 특히 노조에 가입하면서 힘을 쌓아 가고 있다. 경남도가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해 보인다. 경남도청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이 참여한 민주노총 일반노조 경남도청지회 발대식이 경남도청 대강당에서 열렸고, 강 부지사는 행사에 참석했다.

현재 경남도청과 시·군청에 소속된 무기계약직은 3천여명에 달한다. 그중 1천여명이 지회에 가입했다. 이들은 호봉제 도입을 요구했는데, 최근 경남도는 이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강 부지사의 설명을 들어보자.

“호봉제를 도입하면서 1인당 38만원가량 인상될 것으로 봅니다. 사실 무기계약직이라는 용어부터 맞지 않습니다. 단순화시키면 정규직화해서 제대로 된 처우를 받게 해야 하는 거죠. 하지만 그게 쉽지 않아요. 예컨대 총액인건비제의 한계, 인원수가 방대해지는 것을 감당할 수 있느냐의 문제, 시·군은 또 어떻게 할 것인지…. 수시로 이러한 문제에 부딪힙니다.”

강 부지사는 “구체적으로 준비된 우리의 정책참모가 있어서 해외사례나 다른 지방정부에서 무기계약직 문제를 극복한 사례를 확인하고, 해당 실·국에 대안을 주면서 해결방향을 지시했으면 훨씬 달라졌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오랫동안 업무를 추진해 온 공무원을 움직이려면 정책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생각은 야권연대 방향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이번 재보궐선거까지 야권연대는 국민다수의 명령이고 요구라는 것이 판명 났습니다. 문제는 나름대로 진보진영의 정책과 철학·입장이 분명히 있는데 연대라는 이름으로 수위를 조절하고 맞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앙에는 진보진영의 준비된 정책과 내용이 상당수 있지만 지방정부를 운영하는 데에는 준비가 덜 돼 있어요. 막연히 진보적인 정책, 이런 것들로는 통하지 않아요. 지역에서는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살아서 접목해야 할 내용을 준비하고 생산해야 합니다. 그것을 가지고 수위를 조절하면서 전진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부족하죠. 앞으로 진보진영에서 지방정부를 독자적으로 운영하고 집행해야 할 텐데…. 국정운영 경험을 축적해 나가야 합니다. 강병기가 만약 지사가 됐다면 우리 진영이 제대로 운영하고 집행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느냐 하는 고민이 있는 거죠. 도정은 종합행정입니다. 진보진영에서 앞으로 상당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 부지사는 진보대통합에 대해서는 “진보진영이 크게 통합해서 국민에게 희망과 대안을 주는 집단으로 가야 한다”며 “부지사직을 그만두면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진영 위기를 얘기하는데, 저는 지금이 기회라고 봅니다. 그걸 못해서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소외당하는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칼날 위에 서 있다는 절박함이 있어요. 우리가 국민 요구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이면 내년에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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