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노조가 최근 조합원 투표를 통해 민주노총을 탈퇴하고 제3 노총 격인 '국민노총'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강성노조였던 서울지하철노조의 변신을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노동계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서울지하철노조에서 민주노총을 탈퇴하고 제3의 노총을 설립하겠다는 논의가 나온 것은 지난 2000년부터다. 오히려 복수노조 시행시기와 맞물려 11년 만에 민주노총 탈퇴와 제3 노총 설립 추진이 본격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제3 노총의 등장. 어떻게 봐야 할까.


“정부·사용자 기생 노조, 유통기한 얼마나 될까”
정호희 민주노총 대변인


과연 제3 노총에 가입하겠다는 조직들이 쟁의권을 행사했던 적이 언제였던가. 현재 제3 노총 세력은 강산이 변할 만큼의 시절 전부터 노동기본권을 스스로 포기하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등 뒤에서 사용자들의 비위를 맞춰 가며 잇속이나 챙기던 조직들일 뿐이다. 민주노총 탈퇴야말로 노동운동을 고립시키기 위한 ‘철 지난 억지 쇼’에 불과하고, 이에 정부와 보수언론이 박수를 쳐 주는 형국이다.
‘탈이념 탈정치’라는 주장도 가증스럽다. 4·27 재보선에서 현대중공업노조와 현대미포조선노조는 보란 듯이 한나라당을 지지했다. 이것이 과연 ‘탈정치’라 할 수 있는가. 이들 단체는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노동유연화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정부와 기업에 순종적인 노조임을 자임한다. 제3 노총은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의 이념에 사로잡힌 세력일 뿐이다. 스스로 살아남을 수도 없지만, 더 유감인 것은 그들이 매달려 구걸하는 이명박 정권의 미래가 그리 밝지 않다는 점이다. 게다가 신자유주의도 이미 유행이 지났고 MB의 대기업 프렌들리도 우왕좌왕하는 상황이다. 실패는 불을 보듯 뻔하다.
시대역행적인 제3 노총은 노동운동이 아니다. 전체 노동자, 특히 비정규 노동자들을 짓밟고 정권의 편에 붙어 출세해 보겠다는 일부 야심가들의 수단일 뿐이다. 소속 조합원들의 외면을 받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철 지난 이벤트, 권력 섬기는 노동운동 되지 않길”
조기두 한국노총 조직본부장

복수노조 시행을 앞두고 제3 노총 설립과 관련한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결사의 자유보장이라는 측면에서 그들이 무슨 단체를 조직하던 그들의 자유다. 한국노총이 신경 쓸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내세우는 명분과 주장을 들여다보면 상당한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양대 노총을 비방하는 것으로 제3 노총의 설립 명분을 찾고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노동운동을 혐오하는 정권과 자본 그리고 보수언론의 주장과 너무나 흡사하다.
특히 노조 활동을 옥죄는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와 복수노조에 대한 이들의 입장은 정권과 자본과 맞닿아 있다. 양대 노총이 연대해 이명박 정권의 반노동정책을 바꾸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시점에 제3 노총을 설립하려는 것은 어떻게든 노동운동을 분열시키고자 하는 현 정권의 속내와 다를 바 없다.
과거 이들이 해 온 행태를 보면 의구심은 더욱 커진다. 이들은 두 노총을 정치적 이념투쟁, 귀족노동운동으로 비방하며 지금까지 철저히 기업별 이기주의에 충실한 노조활동을 해 왔다.
우리는 단 한 번도 이들이 자신의 기업을 넘어 비정규 노동자나 열악한 환경의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위한 활동을 했다는 얘기를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그런 이들이 국민을 섬기는 노동운동, 봉사하는 노동운동 등 번지르르한 내용으로 또 다른 상급단체를 만들겠다는 것은 표리부동의 극단을 보여 주는 것이다. 오히려 일각에서 이들에 대해 의심하고 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겨냥한 정치적 의도라는 것이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내용도 없는 얄팍한 주장으로 노동계를 분열시키고 정권과 자본의 나팔수가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시장 참여적인 노동운동 필요"
정연수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


6월 출범을 목표로 하고 있는 국민노총(제3 노총)은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 중심의 노동운동을 지향하고 있다. 국민과 노동자가 함께 하는 선진노사문화 패러다임을 정착시키자는 의미다. 그동안 민주노총 방식으로 이념 위주의 투쟁을 한 결과가 어떠한가. 현장조직은 피해만 입고 노동계는 전망을 잃어버렸다. 국민들의 반감만 샀다. 반대로 한국노총은 상층 지도부만의 귀족권력을 유지하는 데 혼을 다 바치고 있다. 결국은 정치적 거래로 귀결됐다.
이제 제3 노총을 통해 노동자의 삶의 질을 본질적으로 어떻게 개선하느냐의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정치쇼다’, ‘정부가 뒤에서 지원하고 있다’고 헐뜯는다. 자기 모습은 스스로 돌아보지 못해 나타나는 오류다.
현재 조직 노동자들은 기득권층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10%에 불과한 기득권층이 더 많은 것을 달라 요구하면 국민들로부터 거리만 멀어질 뿐이다. 기존의 노동운동은 한계에 봉착했다.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사회시스템부터 바꿔야 한다. 정부 예산편성 시기부터 개입하고, 사회적 협약을 통해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시장을 모르고, 경영을 이해하지 못하는 노동운동은 '장님' 노동운동이다. 자본 내부로 들어가 경영을 지원하고 감시하고 철저히 견제하는, 시장 참여적인 노동운동이 필요하다.

“제3 노총은 대공장 실리주의의 구정물”
김성희 고려대 연구교수




민주노총을 탈퇴하고 제3 노총을 추진하는 서울지하철노조 현 집행부는 현실 노동운동이 상층 지도부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정치이념 투쟁과 귀족노동운동에 매몰됐다고 평가하며, (사측과) 상생·협력을 통해 조합원 중심의 노동운동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이들을 비롯해 KT노조·현대중공업노조 등 제3 노총 추진세력이 겨냥하는 건 비정규직과의 연대 문제나 도덕성 회복 문제가 아니다.
정치파업이란 용어가 정부와 보수언론에게는 데모꾼의 낙인을 찍는 먹잇감일지 몰라도, 민주노조운동에게는 대공장 정규직만의 실리주의를 넘어서는 연대의 실천이다. 세계 노동운동 역사의 주역은 전 사회적인 약자의 대변자로서 사회정의의 무기로써의 역할에 주목한 사회연대주의노조였다. 노사화합을 통한 실리주의를 미화하는 순간, 정의의 칼로 노조의 재생을 꿈꾸기는커녕 점점 움츠러들어 기득권 보호에 안달하는 어용노조의 틀에 갇히고 만다.
최근의 민주노총 탈퇴와 제3 노총 추진 움직임은 미래를 열어 가는 맑은 샘물이 아니라 민주노조운동이 진전하지 못한 틈새를 비집고 나온 대공장 실리주의의 구정물이다. 노사협력과 실리주의라는 두 바퀴로 추진되는 제3 노총은 노조의 독립성조차 포기하는 어용노조로의 퇴행이 될 뿐이다.
따라서 기존 노조운동은 노사협력적 실리주의와 차별성을 보일 적극적 계기로 삼는 것이 마땅하다. 노조운동은 하루빨리 사회연대의 실현체로서 노동운동의 대의를 새롭게 구축하는 길로 나서야 한다. 강자를 위한 허약한 조직이 아니라, 약자를 위한 강한 조직이어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 대안 내놓아야"
박영범 한성대 교수(경제학)


노동계의 자율성을 전제로 하나의 국가에서는 하나의 노총으로 통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30만명에 이르는 미가맹노조가 있다. 제3의 노선을 추구하는 노동운동 세력이 존재한다. 게다가 복수노조 시대를 앞두고 새로운 수요를 반영하는 노동운동 출현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본다. 기존 노동운동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다만 제3 노총은 말 그대로 국민을 섬기는 노동운동을 해야 한다. 국민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사회공헌활동을 하겠다는 계획을 보다 구체화해야 한다. 예컨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현실성 있는 대안을 내놓지 못하면 자기들만의 노동운동이 될 것이다. 일각에서는 제3 노총이 정부나 특정 정치권과 연계돼 있다고 의혹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노동운동은 정치적 색깔을 띨 수밖에 없다. 또 정부가 원한다고 해서 제3 노총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정치적인 문제는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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