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삭기 노동자 이아무개(43)씨는 만년 적자인생이다. 19년째 굴삭기를 운전하고 있지만 신용불량자와 실업자 사이를 오가고 있다. 이씨는 현재 2천만원의 빚을 안고 있다. 매달 집 월세·기계 할부금·은행 이자·차량 유지비·보험료·여섯 식구 생활비 등으로 450만원이 고정적으로 나간다. 굴삭기 임대료(일당)는 하루에 28만원으로 97년 당시와 같은 수준이다.
 
반면에 물가는 3배 이상 올랐다. 그 사이 툭하면 터지는 임대료 체불과 어음 부도에 3차례 신용불량자가 됐다. 특수고용노동자인 이씨의 체불은 정부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사회적인 보호장치가 하나도 없다는 얘기다. 최근에는 건설경기 불황으로 일마저 줄어 한 달에 보름은 쉬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하는 시간을 8시간에서 10시간으로 늘리거나 임대료를 깎아 주는 ‘출혈 경쟁’을 감수하고 있다.

"당장 달마다 나가는 고정 지출이 있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일할 수밖에 없어요. 생활 여건과 나이를 고려하면 새 직업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구요. 굴삭기가 10대면 일터는 7곳 밖에 없어 ‘너 죽고 나 살자’라는 분위기예요. 4대강 사업이 끝나면 굴삭기가 쏟아져 동료들과 전쟁이라도 치러야 할 판입니다."

이씨는 "차주라는 허울로 인해 임금을 떼이고 어음이 부도가 나도 어디에 하소연할 곳도 없는데 공급마저 규제가 안 돼 동료들끼리 서로 죽기만을 기다리는 상황"이라며 "굴삭기 노동자는 대한민국에서 국민이 아닌 것 같다"고 토로했다.

"너 죽고 나 살자"

건설기계노동자들의 삶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건설기계업계에서는 '신용불량자 양산 업계’라는 자조마저 나온다. 건설노조가 지난 2월 굴삭기 노동자 891명을 대상으로 생활실태를 조사한 결과 이들의 평균부채는 5천880만원으로, 30%가 신용불량자였다. 84.1%는 임대료가 체불됐고, 42.8%는 임대료를 어음으로 받았다. 90%는 연장근무에 따른 초과수당을 받지 못했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40대로 대부분 전 재산을 투자해 건설기계를 구입했다. 사업채산성이 악화돼도 직업을 바꾸는 게 쉽지 않다. 굴삭기 노동자 대다수(90.2%)가 처우개선을 위해 ‘굴삭기 수급 조절’을 꼽은 이유다.

노조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09년 사이 굴삭기는 연평균 3천34대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건설업 최악의 위기였음에도 무려 4천22대가 늘었다. 공급이 과잉된 왜곡된 구조를 개선하지 않고는 건설기계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은 요원하다.

대한건설기계협회에 따르면 2000년부터 10년간 건설기계의 평균 가동률은 46%에 불과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2007년 덤프와 레미콘에 한해 영업용 신규등록을 제한하는 수급조절 제도를 신설했다. 2009년부터 시범사업을 실시해 올해 7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덤프와 레미콘의 영업용 신규등록을 제한하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수급조절 지속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올해 1월부터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국토연구원이 진행하는 연구용역 최종 결과는 6월에 나올 예정이다. 쟁점은 덤프와 레미콘의 수급조절기간 연장 여부와 대상 기종의 확대 여부다. 특히 건설기계의 대표 격인 굴삭기의 추가 여부가 관전 포인트다. 국토부에 따르면 굴삭기는 건설기계 27개 기종 중 지게차 다음으로 많다. 전체 건설기계의 30%를 웃돈다.



"최소한의 보호” vs “시장경제 위반”

건설기계업계에는 전운이 감돌고 있다. 수급조절을 놓고 각 기관들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며 싸움을 예고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6월에 발표될 연구용역 보고서를 앞두고 폭풍전야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며 “각 기관들이 일전을 벌이기 위해 물밑에서 치열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전했다.

건설기계임대업계와 건설노조는 건설기계 노동자의 삶과 공익을 위해 수급조절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지식경제부와 공정거래위원회, 건설기계제작업계와 사용자측인 전문건설업계 등은 시장경제에 반한다며 맞서고 있다.

대한건설기계협회에 따르면 외국과 달리 국내 건설기계임대업계는 특수고용직노동자(차주)가 건설기계임대사업자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건설업 구조상 최하위에 위치해 다단계 계약에 따른 저가계약과 불공정거래의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협회가 2006년 말 주요 건설기계(6종) 과잉공급으로 인해 시장에 주는 피해액을 분석한 결과 가동일을 1년 중 200일로 환산할 경우 굴삭기는 3천500억원, 덤프는 408억원, 레미콘은 743억원의 피해를 보는 곳으로 조사됐다.<표 참조>


 
대표적인 건설기계 6종의 과잉공급에 따른 시장 피해액은 6천512억원에 달했다. 장인섭 건설기계협회 기술정책팀장은 "대형화된 장비렌탈사업체 중심인 외국은 경기상황에 따라 장비를 풀지 말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지만, 영세사업형태인 우리나라는 수급조절 능력을 가질 수 없다"며 "기계임대업자가 ‘을’이다보니 공정한 시장원칙이 자율적으로 작동될 수 없다 ”고 지적했다. 장 팀장은 “화물차도 공익을 위해 2004년부터 진입을 규제한 것처럼 건설기계도 정부가 공급량을 조절해야 한다”며 “수급조절은 건설기계임대업자의 현실을 개선하고 건설산업 내 동반성장을 위한 최소한의 보호장치”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제조업계는 수급조절이 시장경제를 위배하고 직업선택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제조·임대업계가 상생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건설기계산업협회는 △건설기계임대료 포괄보증제도 도입 △유류보조금 지원 △건설기계임대단가 협의회 구성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협회 관계자는 “화물·택시 등은 별도의 지원을 통해 수급조절을 도입했지만 건설기계의 수급조절은 제조업체의 희생만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려 한다”며 “등록 제한에 따른 생산량 감축으로 건설기계 제조업계의 대량실직과 도산이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시범사업 놓고도 해석 분분

이들은 오는 7월에 끝나는 시범사업이 별다른 효과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토부의 건설기계등록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자가용 덤프 등록대수는 5천939대다. 1년 새 1천884대(46.46%)가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용 덤프는 4만8천479대에서 4만8천328대로 151대(0.4%)가 감소했다.
 
하지만 자가용과 영업용을 포함한 전체 덤프수는 5만2천894대에서 5만4천633대로 1천739대(3.2%)가 늘었다. 레미콘은 같은 기간 자가용이 2천216대에서 2천141대로, 전체 등록대수가 2만3천195대에서 2만2천468대로 각각 75대와 727대가 감소했다. 영업용은 건설업체가 필요한 건설기계를 임대차계약에 의해 차주(특수고용노동자)와 계약을 맺고 공급하는 형태를 말한다. 자가용은 건설사가 필요한 건설기계를 직접 구입한 후 기사를 고용해 자체공사에 공급하는 형태를 의미한다. 현장에서는 대부분 영업용형태로 일한다.

이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사용자측인 대한전문건설협회 관계자는 “시범사업 결과는 공급 조절을 목표로 했던 수급조절의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라며 "장비가동률과 기계임대가격에도 큰 변화가 없는 만큼 인위적인 규제를 가하기보다 중간 브로커를 줄이는 등 다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해석이 분분하지만 제도의 취지와 달리 정작 시장에서는 자가용 덤프가 급증해 풍선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며 "레미콘 등록대수가 감소한 것은 수급조절 영향보다도 레미콘 경기 침체로 레미콘 수요가 크기 줄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대한건설기계협회는 당연한 결과라고 반박했다. 장인섭 기술정책팀장은 “수급조절은 영업용 등록만 제한한 것으로 4대강 특수와 맞물리면서 자가용은 당연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자가용이 늘어난 건 전체 매출 중 내수가 20%가량인 건설기계 제조업계의 손실이 크지 않다는 것으로, 수급조절로 인해 큰 피해를 입는다는 제조업계의 주장이 허구임을 보여 준 것”이라고 반박했다. 장 팀장은 “전체 매출 중 수출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설기계제조업계가 수급조절로 인한 손실이 구체적으로 얼마인지 정확한 근거를 수치로 제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 건설기계노동자 생계대책 마련해야”

제도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은 정부의 책임이 크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신영철 건설경제연구소장은 "제도가 신설돼 시행착오가 생기면 제도의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보완책을 마련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며 “하지만 정부는 대안을 찾기보다 수급조절을 폐지하자는 쪽으로 가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신 소장은 "건설기계업계의 문제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건설경기 요인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 산업의 특성상 시장경제에만 맡길 수 없다”며 "수급조절은 건설기계노동자 처우개선을 위한 최소한의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오히려 수급조절을 더 확대해 자가용을 포함한 ‘총량제’를 도입하고, 직접시공의무제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4대강 사업은 내년 초에 마무리된다. 건설경기 불황으로 건설사들의 도산이 잇따르면서 일자리는 더 줄어들것으로 예상된다. 4대강 사업의 후폭풍이 벌써부터 우려되는 상황이다. 건설노조는 6월 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4대강 사업 완료 후 발생할 문제와 건설기계노동자들의 생계대책에 대해 전반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다.

 “건설기계임대료 품셈보다 낮아”
국토연구원 중간보고 발표 … 객관성 확보가 관건
오는 6월 마무리되는 ‘건설기계 수급조절 연구용역’을 놓고 관련업계와 정부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토연구원이 진행 중인 연구용역에는 건설경기 동향·전망, 건설기계 등록 및 가동률 추이, 대여 시장 동향·전망, 건설기계 기종·용량·지역별 수요 예측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겨질 예정이다. 연구용역 대상은 굴삭기·덤프·레미콘·펌프카 등 건설현장 주력 장비이면서 영업용 비중이 높은 7개 기종이다.
국토해양부 건설기계수급조절위원회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 이를 토대로 기종별 수급조절 여부를 심의·의결한다. 앞서 국토연구원은 지난달 이해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연구용역 중간보고회를 개최했다. 연구원이 보고회에서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영업용 건설기계 등록대수는 2009년 대비 2010년 2천750대가 늘었다. 이 중 2천218대가 굴삭기였다. 수급조절을 시행 중인 덤프는 188대, 레미콘은 691대가 줄었다. 건설기계가동률은 97년 62.7%로 지난 20년 새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98년 외환위기 사태로 33%로 급락했다. 이후 현재까지 평균 46%를 유지하고 있다.
시장에서 유통되는 건설기계 임대단가는 기중기를 제외한 전 기종에서 표준품셈단가에 비해 10만원 이상 낮았다. 하지만 이 가격조차도 5~10년 동안 오르지 않았다.
건설기계제조업체 생산은 굴삭기와 지게차가 92.5%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기중기(수출 30%)를 제외한 전 분야의 건설기계가 내수보다 수출에 비중을 두고 있었다. 수·출입 구성을 보면 굴삭기 97%·레미콘 99%·덤프 95% 등이 수출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부 관계자는 "연구원이 기간 연장을 요청했기 때문에 연구결과가 미흡하면 추후 연구기간이 연장될 수도 있다"며 "이해관계가 첨예한 만큼 얼마나 객관적인 자료를 발표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2009년 건설기계수급조절위원회에서 2007년 10만7천대에 달하는 굴삭기가 2013년까지 12만5천대로 증가할 것이라는 조사 결과를 내놓으며 굴삭기의 수급조절을 제안했다.
하지만 지식경제부와 건설기계산업협회가 2007년 굴삭기 등록대수가 10년 전에 비해 51대 줄어든 7만6천대에 불과하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자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당시 김성순 민주당 의원은 “지식경제부와 협회가 잘못된 등록대수를 근거로 제시해 수급조절위원회에서 굴삭기 수급조절계획을 무산시켰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김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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