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창피한 나라요. 우리나라만큼 장시간 근로(하는 나라가) 어디 있노. 그러면서 노동생산성은 뒤처진다는 말이오. 선진국 턱밑까지 왔다고 하는데 이건 아니잖아요.”
경상도 사투리가 섞여 오히려 단호하게 들리는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문형남(64·사진)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이다. 노사발전재단은 지난달 21일 기존 노사발전재단과 노사공동전직지원센터·국제노동협력원 등 3개 기관이 통합해 재출범했다.

지난달 3일 취임한 문형남 총장은 몸집을 불린 노사발전재단의 첫 번째 총장이다. 몸집이 불어난 만큼 하는 일도 많아졌다. 노사협력 촉진사업과 고용·인적자원개발사업을 비롯해 정관에 규정된 사업범위만 13가지에 달한다. 재단의 사업은 이명박 정부가 국정과제로 내건 노동·고용정책을 포괄하고 있다. 재단은 정책을 실행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MB정부 출범 당시부터 매번 개각 때마다 노동부장관 하마평에 올랐던 문 총장이니, 제자리를 찾은 셈이다.

그가 제시한 장시간 근로 문제 해법은 한국식 모델을 보여 주는 것이다. 문 총장은 “유연한 근무양태를 가지고 생산성이 올라갔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며 “그래야 급여를 깎지 않으면서 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근로시간을 줄이면서도 임금은 깎지 않고, 기업의 생산성도 올라가는 사례를 만들어 내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재단을 재구성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손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9일 오전 서울 공덕동 재단 사무총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3개 기관 통합, 임금테이블 일원화 고민

- 통합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나.

“재단이 3월21일 통합했으니까 근 한 달 된다. 이색적이고 기능과 내부 운영시스템이 다른 3개 기관이 통합했다. 지난해 노동연구원에 있던 작업장 혁신센터가 재단으로 들어왔다. 기능적으로는 노동교육원이 가지고 있던 노사관계 교육까지 포괄한다. 속된 말로 과도기적인 혼란 상태다.”

- 통합된 기관마다 임금테이블이 다르다고 들었다.
“그게 가장 큰 고민이다. 공공부문 선진화라고 해서 정부가 내건 것이 성과연봉제로 전환하라는 것이다. 100% 연공급인 곳도 있고, 성과급도 있고, 직능급 비슷한 곳도 있다. 이런 것들을 하나의 테이블로 만들기가 쉽지 않다. 업무도 별개다. 조직의 기능을 효율적으로 발휘해 어떻게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인지, 기능을 어떻게 조정하고 연관시킬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 관심을 두는 재단 사업은 뭔가.
“두어 가지다. 노사발전재단이니까 노사 문제를 노사가 자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전국적인 차원도 그렇지만 지역적인 차원에서 노사관계를 안정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구심점을 만드는 것이다. 재단이 서포팅과 컨설팅을 해 주고 있다. 두 번째는 우리사회 최대 화두인 고용이다. 일자리를 늘리는 차원에서 근로시간 줄이기나 단시간 유연근무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

- 재단이 웬만한 수단은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산만하게 돼 있는 게 문제다. 산만한 것을 시스템으로 짜야 한다. 그게 중요하다. 고용구조개선 컨설팅이나 근로시간 줄이기 컨설팅 등은 일터혁신과 연관돼 있다. 기업에 통합적인 서비스를 할지, 단편적으로 순서에 따라 특정한 분야를 지원할지 진단해서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부서도 팀도 다르다. 팀이 다르면 업무가 단절된다. 이를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한다.”

- 노동부에서 노사관계 업무를 주로 담당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노동부에서) 노사관계 업무를 하면서 절실하게 느낀 것이 있다. 장관이 노사분규 현장에 가서 자기가 해결하겠다고 달려드는 것처럼 무모하고 잘못된 게 없다. 장관이 나갔는데도 해결이 안 되면 대통령에게 어떻게 보일까 하고 조급해진다. 조급하면 무리한다. 신속한 해결에 얽매이다 보니 엉망이 되는 경우가 많다. 원리에 안 맞게 무리수를 두면 다음에 노사분규가 또 난다.”

법·제도 대신 사전조정 관심을

- 노동부가 조정 역할을 해야 하지 않나.

“장관이 들어간다고 조정이 되는 게 아니다. 가서 분위기만 돋우면 되지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조정이란 게 노사가 51대 49 정도는 접근해야 가능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고무풍선 누르는 것과 똑같다. 전문성이 필요하다. 사람들의 명분보다 이익에 착목하는 전문성과 인내심을 갖고 대안을 만드는 게 조정이다. 노동위원회가 조정 전문성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 정부도 그런 기조를 지키겠다고 밝혔는데.
“꼭 하고 싶은 말은 노사 문제가 터졌을 때 질서·법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먼저 조정해 주는 역할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법을 위반하는 것은 감정이 격앙돼 있기 때문이다. 그 수준에 이르기 전에 들어가서 조정해야 한다. 지금은 타이밍을 놓치고 있는 듯하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 법 위반 아니냐 하고 강조하고 있다. 노동위원회가 조정에 실패한 뒤 노사에 알아서 하라고 방치해서는 안 된다. 재단이 갈등을 조정하는 일을 많이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역별로 구성된 노사민정협의체에서 일종의 사적조정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노총 대화참여 마당 만들겠다

- 지역별에서는 민주노총도 노사공동사업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아직 중앙의 기조 때문에 사업에 참여하는 게 좀 적다는 것이 안타깝다. 지역단위에서는 충분하게 할 수 있다고 본다. 민주노총이 전국적 차원과 지역이나 기업 단위에서 기조를 달리해 풀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민주노총이 참여할 수 있는 마당이 필요할 것 같다.
“마당을 만드는 데도 재단이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 3개 기관이 통합한 지 20일밖에 지나지 않아 지금은 내부정리에 정신이 없다. 사무실도 최근에야 대충 정리했다. 앞으로 민주노총 위원장과 부위원장·본부장을 만나 얘기를 나눌 생각이다. 현재 민주노총은 옛날과 비교하면 상당한 지위에 올랐다. 조합원·영향력 면에서 대단한 위치에 있다. 그동안 고생을 하면서 키워 왔다. 이제는 참여하면서 대화해도 민주노총이 세우는 정책기조를 달성하는 데 큰 애로가 없다고 본다.”

- 한국노총이 대정부 투쟁에 나섰다. 재단 사업에 영향이 있다고 보나.
“어떻게 풀어야 할지, 나도 옆에서 역할을 할 게 있으면 하겠다. 지금 어떻게 하겠다고 해법을 말하기는 어렵다. 이 사람 저 사람 만나서 많은 얘기를 하고 있다. 5월1일이 분수령이 될 것이다. 상징적인 의미가 있으니까. 이후 중간 다리 역할을 할 것이다.”

- 정부의 일자리 사업은 어떻게 생각하나.
“고용부라고 스스로 부를 정도로 노력하는 것은 틀림없다. 아쉬운 것은 고용에서는 고용노동부가 총괄부처가 돼야 하는데 그런 역할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제한적인 자원으로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총괄부처에서 교통정리를 해 줘야 한다. 그게 안 된다. 서로 부딪히니까 마이너스가 나는 부분이 있다.”

- 장시간 근로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보나.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선진국 안 된다. 국민소득 올라갔다고 선진국이 되는 게 아니다. 그건 거품이다. 우리 국민들이 의외로 의식적으로 고집이 세다. 문명은 잘 바뀌는데 문화는 잘 안 바뀐다. 시간제 근로도 하나의 근무양태다. 이것도 정규직인데, 사람들은 '알바'라고 부른다. 그러니 체면 때문에 시간제를 안 한다. 경영하면서도 자기 좋아서 쓰면서도 아무 때나 해고하고, 임금도 적게 준다. 의식구조를 바꿔야 한다. 임금은 시간에 대비해 정확하게 주고, 당연하게 급여 이외의 혜택도 다 해 줘야 한다. 안 해 주면 그게 차별이다. 좋은 케이스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서구는 정의보다 외면적인 합리성·효율성을 따지지만 우리는 다르다. 우리국민의 의식에 맞게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케이스를 많이 만들 생각이다.”


[문형남 사무총장은]

노동부 노정국장과 산업안전국장·기획관리실장을 역임한 노동관료 출신이다. 퇴임 뒤에도 한국기술교육대 총장과 한국산업안전공단 이사장을 지냈다. 최근까지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40년 동안 거의 매일 새벽 산행을 빠뜨리지 않을 정도로 꼼꼼한 스타일이다. 앉은 자리에서 소주 3병을 마실 정도로 애주가다. 공적으로는 바늘 하나도 용납하지 않지만 사사롭게는 수레나 말까지 통과하게 한다는 뜻의 ‘관불용침(官不用針) 사통거마(私通車馬)’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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