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동운동은 재미가 없다. 필자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이 나라 노동자에게 노동운동이 그렇다. 부담이 되고 답답하다. 자신이 그걸 해야 하는 것인지부터 명확하지 않다. 해야 하는 것이라고 인식한 뒤에는 당위와 의무가 노동자를 짓누른다. 노동자는 세상의 생산자이니까, 세상의 주인이라며 노동자가 투쟁해야 한다고 말한다.

2. 제국주의에 맞서 자주독립을 외칠 때도, 온갖 독재권력에 맞서 민주주의를 외칠 때도 노동자는 중심에서 투쟁해야 한다고 했다. 노동자니까. 새로운 세상은 노동자의 것이라며 세상의 온갖 불의와 낡은 것에 맞서 앞장서서 투쟁해야 한다고 했다. 따지고 보면 노동자니까 그래야 한다는 게 다였다. 그래서 노동자는 나라가 독립되면 자신이 어떻게 독립되는 것인지 몰라도 독립투사를 따라 민족해방가를 불렀다. 노동자는 나라가 민주화되면 자신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확보되는 것인지 물어보지도 못한 채 노동자니까 왕·총통·대통령 등 갖가지 직함의 독재자에 맞서 야권인사의 선창에 따라 독재타도를 외쳤다. 그때마다 노동운동가는 노동자에게 말했다. 노동자는 민주투사여야 하고 독립투사가 돼야 한다고. 그것이 노동운동이라고. 그래야 노동자세상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노동자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싸웠다. 그리고 그의 나라는 민주화되고 자주독립됐다. 노동자에게 민주주의와 민족자주를 위해 싸우라고 말했던 그들의 손엔 나라의 권력이 쥐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말에 따라 싸웠던 노동자의 손엔 아무것도 쥐어져 있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권력과 자본의 지시에 따라 복종해야 하는 노동자다. 그리고 독립투사와 야권인사가 권력을 독차지하자 다시 노동운동가는 노동자에게 나라의 자주와 민주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때 노동자는 그에게 물었다. 노동자의 자주와 민주를 위해 싸우는 거냐고.

3. 이 세상에서 조직적으로 노동운동이 전개된 지 200년이다. 그 기간 동안 노동운동은 기존의 권력과 질서에 맞서는 온갖 운동에 바쳐졌다. 그래야 노동자세상은 쟁취될 수 있다고 해서 노동자는 싸웠다. 노동자의 세상은 자유의 왕국, 세상의 낙원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불의와 낡은 것이 사라진 세상이므로 그것들을 청소하는 것이 먼저였다. 그래서 이 세상의 청소부로 동원됐다.
노동운동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노동운동은 노동자계급의 운동이었다.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한 운동이었다. 무엇을 위해 동원되는 운동이 아니었다. 세상에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내놓으라고 주장하면서 투쟁했다. 노동자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이 세상에 새로운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세웠다. 이 세상에서 자본과 공존하면서 또는 자본을 넘어서 그것을 세웠다. 새로운 노동자의 권리들이 탄생했다. 노동기본권·사회권, 노동하는 인민의 권리가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로 획득됐다. 노동자의 권리의 확장과 독점은 자본가의 의무의 확장과 자본의 폐지일 수밖에 없었다. 노동운동은 철저히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운동이었다.
당시 노동자는 압도적인 다수는 아니었다. 노동자의 힘만으로는 노동자의 권리를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연합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운동이었으므로 노동자는 자신을 위해 싸울 수 있었다. 그 노동운동에서 노동자는 폭발했다. 노동운동가는 권리를 말해 주고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라고 말하면 됐다. 노동자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오늘은 노동자의 권리를 확보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오늘 확보할 수 있는 노동자의 권리를 노동자에게 말해 줬다.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울 때 노동자는 누구보다도 용감할 수 있었다. 그것이 앞에서 본 새로운 노동자의 권리를 탄생시켰다.

4. 20세기 초 러시아는 농민이 압도적 다수였고 노동자는 소수였다. 노동운동가들은 농민을 노동운동의 동지로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러시아 노동운동은 농민의 자유와 권리를 획득해 준다고 약속했고,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농민을 깨워 냈다. 다민족의 러시아에서 피지배민족을 깨워 동지로 삼아야 했다. 그렇게 러시아에서 노동운동은 농민운동이 되고 민족운동이 돼야 했다. 그 뒤 러시아를 좇아 다른 나라들에서 노동운동이 전개됐다. 그런데 일부에서 노동운동이 다른 운동에 동원되는 일이 발생했다. 노동운동이 약한 나라에서 이런 일들이 나타났다. 노동운동가가 다른 운동의 지도자와 뒤섞이고 구분되지 않았다.

지금 이 나라에서는 아직도 노동운동은 농민도 동지, 야당인사도 민주동지다. 심지어 외세에 맞서기 위해선 자본가도 동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 이 나라에선 노동자가 압도적 다수다. 그럼에도 노동운동은 노동자를 묶어 자신의 힘을 키우기보다는 같은 편먹기에 골똘하고 있다. 야권의 연대니 통합이니 갖가지 방안이 제시되고 여기에 노동운동은 휩쓸리고 있다. 201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아닌 야권후보를 당선시키는 것이 노동운동의 목표라고 노총과 산별조직, 그리고 사업장조직까지도 휩쓸리고 있다. 반독재 민주화운동이라고 하고 노동운동이 그 운동에 복무해야 한다는 것인가. 어찌된 일인지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하진 않는다. 한나라당이면 독재고 민주당이면 민주라고 말한다면 이에 대해 뭐라 할 말이 없다. 다만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당신은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노동운동은 무엇을 위해 투쟁했냐고 묻고 싶다. 무엇이 이 나라 노동운동을 이 지경에 빠뜨렸을까. 노동운동이 좌절과 절망, 쇠락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힘이 없기 때문에 자꾸 외부연대로 돌파하고자 한다. 무엇이 이 나라 노동운동을 좌절과 절망, 쇠락으로 떨어뜨렸을까. 노동운동이 노동자의 권리를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권리 확보를 위해 노동운동은 바쳐지고 그것을 위해 투쟁해야 하는데 이것을 망각했다. 민주화운동·민족운동에 동원되면서 노동자의 권리 확보를 위한 노동운동은 그 부문운동으로 전락했다.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요구는 전체 운동의 요구 때문에 제어됐고 노동운동에서 노동자의 욕구는 충족될 수 없었다.

5. 지금 이 나라 노동운동은 법적으로 권리 보장이 미흡한 비정규직·특수고용노동자와 노동기본권을 제한받는 교원·공무원의 권리 확보투쟁으로 전개돼 왔다. 노동운동이 노동자의 권리 확보를 전면에 내걸지 않고 일부 권리 보장이 미흡한 노동자의 운동으로 전개됐다. 그래서 노동운동은 대다수 노동자에게 의무일 뿐 자신의 권리를 위한 투쟁으로 보이지 않는다. 노동자 일반의 권리을 위해 노동운동은 무엇을 내세워 투쟁했던가. 심지어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행사조차도 확보되지 않는 상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확보하기 위한 요구를 전면화하지도 않았다. 오직 아예 금지된 일부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문제만 주된 것으로 제기해 왔다.

얼마 전 있었던 불법파업시 업무방해죄 적용에 관한 대법원 판례가 노동운동의 결과로 보면 오산이다. 노동운동의 결과로 내세운다면 당장 불법파업시 형사처벌하는 노조법 등의 폐지투쟁에 나서야 한다. 이것은 노동운동이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확보하기 위해 당장 나서야 할 지점이다. 물론 그 투쟁은 노동자의 권리 확보를 위한 것으로 조합원을 분명히 인식시켜야 한다. 이를 위한 요구와 교섭, 쟁의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지금 쌍용자동차·한진중공업·대우자동차판매, 그리고 많은 사업장에서 정리해고로 일자리를 잃고 쫓겨난다. 그럼에도 노동운동은 해당 사업장의 정리해고 저지 문제로만 전개되고(이렇게 되면 나머지 사업장은 지원 내지 연대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그 조합원에게는 의무만 보일 뿐이다) 노동자 일반의 정리해고 문제를 전면에 걸고 전개되지 않는 것일까. 법개정투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역량상 법개정투쟁이 어렵다면 전체 사업장에서 고용보장 요구를 전면화해 교섭하고 투쟁해야 한다. 노총과 산별조직은 이를 점검하고 그 투쟁을 모아 법 개정 투쟁의 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기존 협약에 제한규정이 있다 해서 그 사업장은 제외하라는 것이 아니다. 기존 협약보다 높은 고용보장요구안을 가지고 투쟁하도록 해야 한다. 노총과 산별조직이 고용보장요구를 직접 사용자들을 상대로 교섭하고 체결할 수 없다면 사업장조직에게 하도록 하고 쟁취할 수 있도록 사업장조직들을 묶어 하나의 투쟁으로 만들거나 지원해야 한다. 정리해고만이 아니라 해외공장·분할과 매각·사업 폐지·외주화 등 고용불안을 야기할 수 있는 일체의 사항을 사업장조직에 요구하도록 하고 조합원들에게 직접 제시해서라도 요구하고 투쟁하도록 해야 한다.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권리 확보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시켜야 한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조차도 그가 지급받는 임금·복지가 노동자의 인간다운 생활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분석해 제공해야 한다. 정규직의 고용안정투쟁이 비정규직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조정하는 일은 당연히 노총과 산별조직이 수행해야 할 몫이다. 이것을 통해 노총과 산별조직은 조합원과 노동자들에게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자신들의 역할을 보여 줌으로써 그 위상을 제고할 수 있다. 그리고 임금 근로조건이 어느 정도 확보됐다면 본격적으로 새로운 노동자의 권리를 제시하고, 그것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하도록 해야 한다.

6. 지금 이 나라 노동운동에 필요한 것은 노동운동 자체를 살리는 것이다. 그것은 노동운동이 무엇이냐 하는 단순한 질문에 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노동자에게 노동자의 권리를 끊임없이 제시해야 한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생산직이든 사무직이든 그 노동자의 권리를 말해 줘야 한다. 기존 권리의 보잘것없음을 알리고 새로운 권리를 말해 주고 그것을 위해 노조가, 노동운동이 전개되면 된다. 노동자의 권리 확보를 위해 노동운동이 전개되면 노동자는 노동운동이 자신의 것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그것이 이 나라 노동운동을 세우는 길이다. 그렇게 되면 이 나라 노동운동은 압도적 다수인 노동자를 통해 새로운 노동자의 권리를 세울 수 있다. 노동운동이 대다수 노동자에게 의무가 아닐 때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것이 될 수 있다. 이 나라에서는 노동자의 권리의 과잉이 아니라 권리의 결핍이 문제다. 노동자에게 의무를 말할 때가 아니다. 지금 노동운동은 노동자 권리를 위해 나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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