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은 노동자와 시민의 건강상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발암물질과 같은 독성이 강한 화학물질 사용을 근본적으로 줄이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정물질을 국가적으로 금지하거나, 사용을 허가하더라도 높은 세금을 부과해 기업이 자발적으로 사용량을 줄이거나 대체물질을 개발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정책을 시행하기도 한다. 또 유해성이 큰 물질에 대해서는 기업이 우선적으로 대체물질을 검토하고 실시하도록 의무규정을 법에 명시하기도 한다.

금속노조 산하 60여개 사업장에 대한 발암물질 조사 결과가 지난 2009년 11월 발표됐다. 조사가 이뤄진 전체 9천여개 제품 중 10% 정도가 발암성 12급에 해당됐다. 돌연변이·생식독성·환경호르몬 등을 포함할 경우에는 거의 절반에 달했다. 특히 전체 제품의 10%에 해당하는 약 1천개 제품은 해외 사례와 비교했을 때 금지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제품들이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결과였다.

필자는 최근 몇 달간 발암물질 조사를 실시한 사업장을 방문해 노동자들에게 조사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이러는 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난 사업장들이 발암물질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 지에 대해 보고 듣게 됐다.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사례 1. 세척제에 벤젠이 함유된 것으로 확인되자 회사는 해당 작업을 외주화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다른 노동자들에게 위험을 떠넘기고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의 회사측 제안을 거부하고 투쟁해 결국은 안전한 제품으로 바꿨다.(충남 A사업장)

사례 2. 탈지제로 쓰이는 트라이클로로에틸렌(TCE)이 발암물질이라는 것을 노사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노조는 발암물질 조사를 통해 현장노동자들의 문제인식과 대체물질에 대한 요구를 높였다. 이를 바탕으로 결국 발암물질이 들어 있지 않은 안전한 제품으로 바꾸는 성과를 거뒀다.(경남 B사업장)

사례 3. 스프레이에 유럽기준의 8배나 많은 벤젠이 함유돼 있었다. 환기장치가 가동됐지만 노동자가 상당량에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 문제의 심각성이 제기됐고, 회사는 결국 벤젠 함량을 유럽기준에 근접할 정도로 낮춘 제품을 도입했다.(울산 C사업장)

사례 4. 공장바닥 청소용 세척제 안에 환경호르몬 성분이 다량 함유돼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노조는 회사에 제품변경을 요구하고 있다.(경주 D사업장)

사례 5. 열처리부서에서 사용하는 발암물질 용제에 대해 수년째 회사에 대책수립을 요구해 왔지만 답이 없었다. 그러던 중 가까운 지역의 OO사업장 열처리에서는 해당 발암물질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노조는 빠른 시일 내에 OO사업장을 방문해 대안을 찾아볼 예정이다.(경기 E사업장)

그간 노동자들은 회사가 화학물질을 주면 주는 대로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설령 발암물질처럼 독성이 강한 물질을 쓴다고 하더라도 기업이 알아서 바꿔 주기 전에는 위험을 감수하고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현장에서는 노동자가 주도적으로 발암물질추방운동을 전개하고, 의미 있는 성과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유해한 화학물질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대안을 요구하고 대체물질을 찾아 현장에 적용해 이 같은 성과가 현장에 전파돼 그들의 건강을 보호하는 데 기여할 가능성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발암물질추방운동은 결국 정부나 기업의 화학물질 사용과 관리방식을 변화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사회를 보다 안전하게 만드는 힘이 될 것이다. 이러한 운동이 여러 현장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 출발은 간단한 질문에서 시작될 것이다.
"우리 사업장에서 쓰는 물질, 이거 안전한 거야?", "유해한 물질이면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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