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기 한 나라의 노동운동이 있다. 오늘 노동운동이 전개되는 지점을 들여다보자. 한진중공업에서는 김진숙이 크레인 85호에 올라가 3개월째 버티고 있고 정리해고 반대 투쟁 중이다. 대우자동차판매에서도 조합원들이 지난 1월 정리해고 저지를 위해 본사 점거농성에 들어갔다. 쌍용자동차에선 잇따른 죽음에 무급휴직자, 정리해고자들이 사회의 여론을 업고 복직투쟁을 하고 있다. 금속노조는 정리해고 공투단을 꾸려 종각 등에서 집회를 개최해 왔다. 현대자동차에선 비정규노동자들이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다. 얼마 전 인천 지엠대우에서도 비정규직 해고자들이 비정규직철폐, 복직 등을 요구하며 정문의 아치형 조형물 위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했었다. 대우조선해양에선 하청업체에서 해고된 강병재가 비정규직 철폐, 직접 고용을 주장하며 1개월째 송전탑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얼마 전 홍익대에서 청소용역노동자의 투쟁이 있었고, 대학의 청소용역노동자의 투쟁이 잇따라 전개되고 있다. 이렇게 지금 치열하게 전개되는 것은 정규직노동자의 정리해고 투쟁, 비정규직노동자의 정규직화 투쟁, 그리고 최저임금수준 노동자의 투쟁이다. 여기에 민주노총 등 노동단체는 집중해 지원하고, 많은 활동가들이 결합하고 있다. 오늘 한국노동운동의 지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 나라 노동운동의 현재를 평가해야 한다.

2. 이들 투쟁의 목적이 무엇일까. 한진중공업, 대우자동차판매, 홍익대는 정리해고 저지고, 쌍용자동차는 이미 정리해고된 후 복직을 위해 투쟁 중이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과 지엠대우 비정규직, 대우조선해양 비정규직은 불법파견 등 비정규직 철폐, 정규직화, 복직 등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홍익대에서도 비정규직 해고철회로 투쟁했다. 정규직 노동자는 정리해고가, 비정규직 노동자는 비정규직 철폐가 목적이다. 그렇다면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모두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는 셈인가. 정규직 노동자의 경우를 보자. 해고될 상황에서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 투쟁하고 있다. 임금 등 근로조건, 해고 인사 등 고용 및 인사권행사, 경영참여, 분할합병 등 회사구조조정 등에 관한 것이 아니라 직접 해고가 목전에 닥치자 이를 저지하겠다고 투쟁하는 것이다. 정리해고가 추진되거나 추진될 수 있는 기업의 분할 합병 매각 등 이외 사항에 있어서는 치열한 투쟁을 찾기 어렵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는 비정규직 철폐 즉 정규직화를 직접 목적으로 해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일부에 있어서는 하청업체로부터 해고된 경우 그 해고의 철회도 목적이 되지만 현수막으로 내걸리는 것은 비정규직 철폐다. 결국 한국노동운동에서 치열한 투쟁은 비정규직 철폐를 목적으로 한 비정규직 투쟁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고, 정리해고가 실시될 때에야 해당 정규직노동자의 저지투쟁이 발생한다.

3. 여기에 한국노동운동의 현재가 있다. 이 나라 노동운동의 문제가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이 노동운동의 중심인 것.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만으로 노동운동이 전개되는 것.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필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이 나라 노동운동의 치열한 전선에는 정리해고 되지 않는 한 정규직 노동자는 없고 비정규직 노동자만 있다. 당신은 말할지 모른다. 투쟁은 열악한 비정규직에서 전개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비정규직이니까. 열악하니까. 사회적 약자니까. 그들을 위해 활동가가 노조가 노동운동이 집중해서 지원해야 한다고. 그러나 아니다. 당신은 다시 말할지 모른다. 노조가, 노동운동이, 그리고 활동가의 역할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그러나 아니다. 이제 당신은 물을 것이다. 그러면 뭐라는 것이냐. 나는 말한다. 노동자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 정규직 노동자를 깨워야 한다. 당신은 말할 것이다. 정규직 노동자는 보수화됐다. 임금 복지 등 높은 처우를 보장받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 비정규직 노동자를 차별하고 비정규직 투쟁을 지원하지도 않고 어떨 때는 적개심을 드러낸다. 정규직 노동운동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 희망은 비정규직 투쟁에 있는데 원장이 뭘 몰라서 하는 소리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4. 이제 필자가 말할 차례다. 정규직 노동자에게서 희망을 찾지 못한다면 이 나라 노동운동은 희망이 없다. 비정규직 투쟁을 통해서 이 나라 노동운동의 희망인 노동자의 세상을 가져올 수 없다. 비정규직 투쟁은 비정규직 철폐투쟁이고 정규직 노동자가 되는 것이 목적이다. 비정규직 투쟁에서 이 나라 노동운동의 희망을 찾는다면 당신은 정규직 노동자가 대부분이었던 IMF 구제금융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이 나라의 노동운동의 목표라고 말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반대가 당신 인생의 유일한 목표라면 아직 신자유주의 초기였던 당시로 되돌리는 것이 당신에겐 전부일 수 있겠다. 그래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기만 하면 그 자가 누구라도 연대하고 연합하는 것이 당신에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그렇지 않다. 이 나라 노동운동은 신자유주의 반대를 넘어서 나아가야 한다. 비정규직 철폐를 넘어서 이 나라 노동자에게 노동운동이 희망이어야 한다. 정규직 노동자에게서 희망을 찾을 수 없는 게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가 당신에, 이 나라 노동운동에 희망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정규직 노동자는 치열하게 투쟁할 수 없는 것이다. 당신이 비정규직 투쟁의 대의를 강조하면 할수록 정규직 노동자는 주눅이 들고, 운동에서 주변화 된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조건을 말하면 할수록 정규직 노동자와 비교하게 되고, 정규직 노동자는 비정규직에 비해 그나마 확보한 것을 지키고자 한다. 정규직 노동자가 보수화된 것이 아니라 당신이 정규직 노동자를 보수적으로 만든 것이다. 심지어는 비정규직의 업체와의 교섭하면서 원청업체의 횡포와 착취를 말하는 업체 사용자의 말이 그대로 당신의 말이 돼 원청업체에서 정규직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임금, 복지 등 근로조건 때문에 비정규직이 조건이 열악한 것이라고 어느새 사고하기 시작하고 이때부턴 당신에게 정규직 노동자는 더 이상 노동운동의 중심이 아니게 된다. 결국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등 조건의 양보를 통해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와 조건을 확보할 수 있는 것으로까지 연결되고 만다.

그런데 비정규직 투쟁조차도 비정규직 노동자만으로 원청업체를 상대로 정규직화를 쟁취하고 투쟁하기 어렵다. 그래서 당신은 당신이 주변화시킨 정규직 노동자에게 비정규직 투쟁을 지원하고 연대하라고 호소하거나 당신이 산별노조 간부라면 지시한다. 그러나 그 투쟁은 당신과 당신의 노조의 투쟁일 뿐이다. 정규직 노동자는 이미 비정규직 투쟁의 지원과 연대의 대상으로 전락했고, 그 투쟁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자신의 권리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의무감에서 정규직 노동자는 행동하게 된다. 자신의 투쟁으로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노조가 지시하니 기껏해야 하라는 대로 지원하고 연대할 뿐이다. 운동은 점점 비정규직만의 투쟁으로 왜소해져간다. 그러면, 그래서 치열한 투쟁은 비정규직 투쟁일 수밖에 없었다. 정규직 노동자는 그나마 조건을 확보한 조건이 만족할 만하니까 더 이상 무엇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하기 보다는 지키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정규직 노동자에게 치열하게 전개될 수 있는 투쟁은 그 조건에서 아예 배제되는 해고만이 위협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데 개별적인 해고에는 집단적인 투쟁으로 전개될 수 없는 것이므로 정리해고만이 치열한 투쟁으로 남게 됐다. 이것이 오늘 이 나라 노동운동이다. 이것은 정규직 노동자를 중심에 세우지 못하고 노동운동의 내일을 보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노동운동의 실패다.

5. 노동자의 권리를 끊임없이 말해야 한다. 이 세상이 억누른 노동자의 욕망을 계속해서 들추어내야 한다. 임금 복지 등 조건을 비정규직 노동자와 비교할 것이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에게 어떠한 권리를 새롭게 확보해야 하는지 말해줘야 한다. 1980년대까지는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작업장에서 그야말로 ‘사람취급’받지 못하고 일해야 했기 때문에 그들은 쉽게 투쟁할 수 있었다. 투쟁을 가로 막는 권력이 문제일 뿐이었다. 그 투쟁으로 임금 등 조건이 확보됐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에 자족한 채 머물고 있다. 그들에겐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날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조건만 본다. 자신들이 과거 경험했던 조건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자신을 비교해서 볼 뿐이고 그러니 그들은 낮은 권리에 갇혀 더 이상 치열하게 투쟁할 수 없다.

노동운동은 이 세상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새롭게 확보하는 운동이다. 노동자의 권리를 새롭게 확보하기 위한 투쟁을 멈춘다면 노동운동은 죽는다. 지금 정규직 노동자들은 상시적인 구조조정으로 고용불안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기존에 확보해온 근로조건조차도 무너지고 있다. 노동운동이 전혀 확보하지 못한 회사 경영사항에 관한 노동자의 권리 확보는 방치돼 있다. 현대자동차조차도 주야맞교대 1일 12시간의 장시간 노동에 혹사당하고 있고, 교대제 변경조차도 사측이 기존의 임금수준을 삭감할 것을 요구해서 간단히 않다. 노동자의 노동으로 회사는 엄청난 경영실적을 올리고 있는데도, 그래서 자본은 그 이익을 모조리 챙기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임금 인상투쟁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지 못한 채 머뭇거리게 만들고 있다. 사회보험 등의 공적보험제도의 불충분으로 임금 공제가 적어 상대적으로 노동자의 수중에 직접 귀속되는 처분소득은 결국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한 비용으로 충당되고 마는 게 현실이다. 노동자가 임금 등 근로조건이 정규직이라고 해서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단지 그렇다고 정규직노동자를 자족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설사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렀다고 해도 노동운동은 그 임금 조건이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선 턱없이 낮은 것이라는 것을 노동자에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사용자에게 노동자의 노동에 따른 경영실적으로 들추어내며 노동에 따른 실적이므로 노동자에게 내놓을 것을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 만약 노동자가 임금 조건에 자족하고 있다면 그것은 노조간부인 당신이 자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노동운동은 자족하는 순간 추락하고 만다. 확보한 권리조차도 지키지 못하게 된다. 유럽 등 노동운동에서 앞섰던 나라들은 이것 때문에 쇠퇴의 길로 갔다. 자신보다 열악한 다른 나라의 노동자 조건을 보면서 자신들이 확보한 것을 지키는 것에 주력했다. 그 뒤 더 이상 그들은 세계 노동운동에서 중심이 될 수 없었다. 노동자의 권리에 새로운 전진을 내놓지 못했다. 이것이 지금 세계 노동운동의 현재이다. 지금 이 나라 노동운동에 세계 노동운동의 향배가 달려있다. 결국 노동자의 권리가, 노동자의 욕망이 노동운동의 내일을 말할 것이다. 권리와 욕망을 끊임없이 새롭게 찾아내서 확보한 권리가 한 없이 작다는 것을 보여줘라. 노동자의 권리와 욕망의 크기에 겁먹지 말고 용감하게 전진해야 한다. 당신은 용감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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