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 3월22일자 12면 ‘사업장 보건관리자 선임제도 개선해야’라는 기고를 읽고 몇 가지 의견이 있어 적어 본다. 이 주제는 다각적으로 심도 있게 검토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주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중요한 주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그 바탕이 되는 외국 제도를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기서는 ‘한국의 사업장 산업보건관리제도’ 자체에 대해 재론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제를 논의하는 데 있어 기본이 되는 핵심적 용어를 검토해 보고자 한다.

한국의 보건관리자 제도를 논의하면서 외국의 제도를 비교할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 산업보건의제도와 보건관리자제도 간의 관계에 대한 이해와 정확한 용어 사용이다. 한국의 산업보건제도는 산업보건의제도와 보건관리자제도 등 두 체계가 존재해 왔다.
보건관리자는 사업주의 안전보건에 관한 책무사항 중 보건에 관한 기술적인 사항에 관해 사업주 또는 안전보건관리책임자를 보좌하고 관리감독자에게 지도·조언을 하기 위해 선임되는 사람이다. 산업보건의는 근로자의 건강관리나 그 밖의 보건관리자의 업무를 지도하기 위해 선임된다.

그런데 한국에는 보건관리대행제도라는 것이 있다. 보건관리대행기관에 보건관리자의 업무를 위탁한 경우에는 산업보건의를 두지 않아도 된다(산업안전보건법). 97년부터는 ‘기업활동 규제완화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의해 아예 산업보건의를 두지 않아도 되도록 바뀌었다.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산업보건의의 존재가 완전히 잊혀지게 된 것이다.
 
본래 한국의 보건관리자제도와 산업보건의제도는 일본의 보건관리자(衛生管理者)제도와 산업의(産業醫)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이때 일본의 ‘위생’(衛生)은 우리나라의 ‘보건’을 의미하므로 한자발음 그대로 ‘위생관리자’라고 번역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일본에서는 50인 이상 사업장에 산업의와 보건관리자를 둘 다 선임하도록 돼 있다. 산업의의 조언·지도하에 보건관리자가 보건에 관한 기술적 사항을 관리한다. 즉, 일본의 사업장 산업보건관리제도는 산업의(한국의 산업보건의) 없이 보건관리자만 따로 생각할 수 없는 제도다. 내용적으로는 산업의제도를 근간으로 운영된다.

그럼 유럽은 어떨까. 독일은 사업장규모와 업종에 관계없이 사업주들이 occupational physician(산업의)과 safety engineer(한국에서의 ‘안전기사’가 아니고 industrial hygienist와 유사)로부터 근로자 1인당 소정시간의 직업보건서비스를 받도록 의무화돼 있다. 프랑스도 독일과 유사하게 occupational health physician(산업보건의)이 사업장 산업보건관리의 핵심역할을 수행하며, 근로자 1인당 소정시간의 직업보건서비스를 산업보건의로부터 받도록 의무화돼 있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자면 독일이나 프랑스는 보건관리자를 선임하도록 의무화돼 있는 것이 아니라 근로자에게 소정의 직업보건서비스를 산업보건의를 통해 제공하도록 사업주에게 의무화하는 제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요약하자면, 일본과 독일·프랑스의 제도는 산업의 내지 산업보건의에 의한 서비스제도가 근간으로 돼 있다. 한국적인 의미에서의 보건관리자가 중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외국의 산업보건제도에 대한 정확한 기본적 이해가 있어야 향후 보건관리자제도를 비롯해 사업장 산업보건관리제도에 관한 바람직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