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쪼개진 지 3년. 내년 총선과 대선까지는 1년여가 남았다. 3년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2004년 10개 의석을 확보하고, 최고 지지율 21.9%를 기록했던 진보정당은 간데없다. 이달 현재 지지율은 민주노동당 4.1%, 진보신당 1.8%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노동현장의 피폐화를 가져왔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빛을 잃었고 이명박 정권하에서 노동자를 엄호해야 하는 진보정치는 무기력함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나마 늦었지만 다행인 걸까. 올 들어 진보진영이 진보정치대통합 또는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 논의를 활발히 벌이고 있다. 지난해 12월7일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와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는 “진보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앞장서겠다”고 합의했다. 이날 만남의 결과물로 올해 1월20일 ‘진보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제 진보진영 대표자 연석회의(연석회의)’가 발족됐다. 민주노동당·진보신당·사회당과 민주노총·시민단체가 함께한다. 연석회의 발족과 진보대통합 추진은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대중운동 진영의 압박과 총선·대선을 앞둔 정치적 위기의식의 발로로 풀이된다.

민주노동당 “양당 통합이 우선”

민주노동당은 통합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정희 대표는 24일 최고위원회에서 “진보신당 당대회에 가서 진보대통합의 진정성을 알리겠다”고 한발 더 나아갔다. 그는 “각자 진보대통합을 추진할 권한이 있는 기구를 만들고 본격적인 통합의 길에 나설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며 “양당 모두 지난 상처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힘을 모아 변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신당은 27일 정기당대회, 민주노동당은 다음달 2일 중앙위원회를 개최한다.

이 대표는 여러 차례 진보대통합에 대한 적극적 입장을 밝혔다. “6월까지 성과를 내겠다”며 시한을 박기도 했다. 민주노동당은 ‘진보대통합 방안’도 마련해 다음달 2일 중앙위원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민주노동당은 주요 쟁점인 당의 노선에 대해서는 자주·평등·복지·생태·평화·여성 등 이념의 가치와 차이 인정, 대북 입장으로는 한국사회에 기반한 자주·독립 정당이자 북한을 평화·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상대로 존중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또 상반기 중으로 진보신당과 진보대통합에 최종 합의하고, 양당의 공식 통합실무협상단 구성을 요청하겠다는 내용이다. 이 대표는 지난 14일 진보신당에 통합실무협상단 구성을 요청했다.



진보신당 “새 진보정당 건설”

진보신당의 사정은 좀 더 복잡하다. 진보대통합 논의를 하고는 있지만 민주노동당과는 무게중심이 다르다. 통합파와 독자생존파 사이에 입장차가 크다. 조승수 대표는 3년 전 ‘선도탈당파’이자 ‘종북주의’를 제기했던 당사자였지만 지금은 진보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조 대표는 지난해 12월 진보대통합을 논의하기로 합의한 데 이어 지난달 26일 진보신당 전국위원회에서 새 진보정당 건설시기를 9월 전후로 제시한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종합실천계획안’을 통과시켰다. 계획안에 따르면 새로운 진보정당의 비전은 신자유주의 극복과 분단체제 극복,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실현, 생태·여성·소수자 등 진보적 가치와 복지국가 건설이다. 분당의 원인으로 꼽힌 패권주의 극복을 위해 공직·당직 선거의 1인1표제 원칙과 일정기간 공동대표제 운영방안도 내놓았다.

하지만 민주노동당과는 차이가 있다. 이 대표는 “양당 간 통합으로 신뢰를 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조 대표는 “진보대통합은 양당 간 문제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양당 간 통합으로 그쳤을 때 ‘도로 민주노동당’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민주노총이 애타는 이유는

연석회의가 구성된 배경에는 민주노총 등 외부의 압박이 주효했다고 볼 수 있다. 조준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의 경우 민주노총 내에서 정치활동이 가장 활발하고 정치자금도 가장 많이 모였던 곳”이라며 “지금은 정치사업이 완전히 정지됐으며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모두에서 떨어져 나갔다”고 안타까워했다.

실제 노동자들은 통합을 원하고 있다. 지난해 6월 금속노조 조합원 설문조사 결과, 87%가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고 했고, 56%는 "진보정당 통합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에 민주노총은 노동절 전까지 진보양당이 우선 통합을 선언한 뒤 실무협의기구와 수임기구 구성에 관한 실천방안을 내놓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민주노총은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민주노동당 창당 당시 규모를 뛰어넘은 광범위한 입당운동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전직 위원장들이 통합작업에 뛰어든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권영길·단병호·이수호·조준호·임성규 전 민주노총 위원장들은 21일 공동성명을 내고 “진보대통합은 양적·질적으로 과거를 뛰어넘는 새로운 진보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밝혔다.

만만치 않은 통합 논의

그러나 진보대통합 논의가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다. 진보신당의 경우 통합파 대 독자파 간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진보신당 내 대표적 통합파는 다름 아닌 노회찬·심상정 전 대표다. 노 전 대표는 내년 총선에서 가설정당(페이퍼정당)을 통한 한나라당과의 일대일 대결구도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심 전 대표는 내년 대선에서 민주연립정부 수립을 목표로 대연합을 추진하자고 주장했다.

조승수 대표는 25일 ‘당원과 대의원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진보대통합에 힘을 실었다. 조 대표는 “우리는 진보의 혁신과 재구성을 하지 못했다”며 “6월 임시당대회를 통해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논의를 매듭짓자”고 밝혔다. 상반기 중으로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논의를 마무리하고, 7월부터 새 진보정당에 함께할 제3의 세력을 규합하자는 제안이다.

이와 함께 진보신당 내 통합파를 견제하면서 민주노동당을 배제한 뒤 사회당과 '사회주의 노동자정당건설 공동실천위원회(사노위)'를 중심으로 진보정당을 건설하자는 독자파도 존재하고 있다.

미리 보는 총선·대선 선거연합

진보대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배경에는 내년 총선과 대선이 자리 잡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모두 진보대통합을 하지 않을 경우 승산이 없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당장 4·27 재보선에서 야권연대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번 재보선이 내년 총선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야권연대를 한 지역은 재미를 봤지만 그렇지 않은 지역은 쓴맛을 봤다. ‘뭉치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다’는 학습효과가 형성된 셈이다.

이런 탓에 지난달 22일 야4당과 시민단체가 민주진보 야권연대 협상을 선언하고, 진통 끝에 야4당이 모두 시민단체의 중재안을 수용했던 것이다. 물론 갈 길이 멀다. 진보대통합 추진 과정에서도 선거연합은 논란거리다. 이달 21일 민주노동당 산하 새세상연구소 주최 토론회에서 정종권 전 진보신당 부대표는 “선거연합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구걸해서는 안 되며 자기 힘으로 관철해야 한다”며 “그 이후 합리적인 선거연합으로 가야지 지금 (진보대통합 추진을) 선거연합으로 가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은 과잉”이라고 말했다.

진보대통합 협상에서 선거연합은 주요 변수 중 하나다. 민주노동당은 통합진보정당과 관련해 내년 대선에서 ‘독자후보 완주’와 ‘범야권 후보단일화’ 가능성을 모두 열어놓았다.

‘종북주의’와 ‘패권주의’ 논란 극복할까

연석회의는 29일 대표자회의를 갖고 진보대통합과 새 진보정당 건설 추진일정을 발표한다. 4월 말 1차 합의를 도출하고, 5월 말 2차 합의에 이어 6월까지 최종 합의에 이르겠다는 계획이다. 4월부터는 진보대통합과 새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성희 민주노동당 통합추진위원장(최고위원)은 “현재로선 진보대통합과 새 진보정당 건설 전망은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며 “민주노총도 대대적으로 정치참여를 선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희성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양당이 9월까지 진보대통합을 실천한다면 민주노총에도 대대적인 진보정치의 바람이 불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진보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분당의 원인으로 꼽혔던 패권주의와 종북주의 논란을 극복하고 통합을 이뤄 낼지 노동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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