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제1호가 정한 업무상사유에 의한 사망으로 인정되려면 노동자의 사망이 업무에 기인해 발생한 것으로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열차를 운행하던 기관사가 고라니를 치고 그 충격으로 뇌경색에 걸려 사망에 이르렀다면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열차 기관사로 일하던 김아무개(60)씨는 지난 2007년 12월 화물열차를 운전하던 중 선로에 있던 고라니를 치었다. 하지만 김씨는 사람을 친 것으로 착각해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결국 동승한 부기관사가 김씨 대신 화물열차를 운전했다. 그러나 김씨는 다음날에도 식사를 제대로 못하고 두통 등을 호소했다. 부인이 병원에 가 볼 것을 권유했지만, 김씨는 대기업무를 이유로 병원방문을 미뤘다. 결국 김씨는 출근 후 쓰러져 구급대에 실려 부산의 춘해병원으로 후송됐다. 병세가 악화돼 다시 부산대병원으로 후송됐고, 부산대병원은 ‘대뇌경색·소뇌경색·신경인성 방광·연하장해·신경인성 장애’ 진단을 내렸다. 김씨는 한국요양병원에서 요양을 하던 중 2008년 8월 숨졌다.

공단 “고라니 충격 스트레스 아니다…기존질환 악화”

이 과정에서 고인은 2008년 5월 업무상사유에 의해 병이 유발됐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신청을 했으나, 공단은 같은해 6월 요양불승인 결정을 내렸다. 공단은 △발병 전 작업환경이나 작업량의 급격한 변화가 관찰되지 않는 점 △고라니 충격사고는 의미 있는 스트레스라고 보기 어려운 점 △기존 질환으로 고혈압이 있고 당뇨 및 고지혈증이 의심되는 점 등에 비춰 볼 때 기존 질환이 자연적으로 악화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부인이 김씨 사망 후 공단에 고인의 사망이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며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하지만 공단은 같은 이유로 2009년 9월 불승인 결정을 내렸다. 앞서 고인은 2005년 뇌혈관 질환으로 진료를 받았고, 2006년에는 고혈압으로 진료를 받은 뒤 약을 복용해 왔다. 그 밖에 당뇨와 급성기관지염·전신부종 등을 앓기도 했다.

법원 “업무상 스트레스가 기존 질병 악화시켜도 산재”

서울행정법원은 올해 1월 근로복지공단의 처분이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공단이 원고에 대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부지급 처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소송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사망에 이르게 한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이 업무수행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가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에 겹쳐 그 질병을 유발 또는 악화시켰다면 그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법원은 △고인이 불규칙한 업무를 수행하며 과로로 스트레스를 받은 점 △이는 고혈압 등 고인의 기존 질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 점 △특히 재해 직전 고라니 충격사고로 인해 고인이 급격한 스트레스를 받은 점 △갑작스런 스트레스는 자율신경계의 항진을 초래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심한 뇌경색의 발병을 촉발할 수 있다는 의학적 소견이 있는 점 △망인이 고혈압이나 당뇨 등의 증세를 보이고 있었지만 이 사건 재해 무렵 다른 요인 없이 독자적으로 뇌경색을 유발할 정도로 심각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는 점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법원은 “업무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 유무는 평균인이 아니라 해당 노동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며 “만성적인 과로가 계속되는 상황 속에서 고라니 충격사고로 초래된 급격한 스트레스가 기존 질환과 겹쳐 고인에게 뇌경색을 유발한 것으로 고인의 사망과 업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관련판례]
서울행정법원 2011년 1월20일 선고 2010구합44430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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