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저한 사전준비 후에 구조개편 단행해야"


캘리포니아 전력사태는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추진하는 우리나라에게는 타산지석이 될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래서 노사정 대표단은 지난 달 12일 캘리포니아 전력사태의 현장조사를 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장조사를 다녀온 뒤에도 노사정의 말은 엇갈리고 있다. 왜일까? 노조측 대표단 일원으로 현장조사단에 참가했던 인사의 얘기를 들어본다. <편집자주>


캘리포니아 전력난을 조사하기 위한 노사정 현지조사단은 지난달 12일 샌프란시스코에서 8일간의 일정에 돌입했다. 출발 전부터 일각에서는 정부측에 이용만 당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많았지만 내부 논의 결과 일단 사안의 중대성에 유념해 실제 눈으로 보고 오는 기회를 가지고 대응하는 것이 좋겠다는 논리가 지배적이어서 동참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에 도착 직후 그날 오후 방문 예정이었던 U.C 버클리대학의 방문이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버클리대는 한국의 에너지경제연구원처럼 캘리포니아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담당한 연구기관으로서 캘리포니아 전력구조개편의 사전 진행과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방문 일정의 취소는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또한 정확한 실태 파악을 위한 기관의 방문이 원활히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계통운영기관인 ISO나 이번 캘리포니아 전력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적되는 PG&E와 SCE, 98년 소매가격 상한제의 폐지로 전기요금이 급상승한 지역인 샌디에고에 위치한 SDG&E 및 소비자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소비자단체 등에 대한 방문일정도 없었다. 회사와 정부측의 방문기관 선정에 많은 문제점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외에도 문제점은 있었다. 유관기관을 방문하면 주로 기관 책임자와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는데 대부분의 방문기관에서 우리의 질문에 당황하는 것은 물론 질문에 따라 회사와 정부측 사람들이 답변을 제지시키기도 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일례로 도착 직후 노사정 조사단을 현지 안내하는 가이드인 정과장이 "캘리포니아 정전사태와 요금인상 때문에 망한 교포회사도 있다"는 말을 건넨 적이 있었는데, 회사측과 정부측은 그의 다음 이야기를 막으며 다음부터는 아예 전력에 관한 사적인 이야기는 꺼내지 못하게 하기까지 했다.

우리들은 많은 발전소를 보고 싶었지만 미란타 발전소와 AES Pacific 발전소만을 방문할 수 있었다. 발전소 회사들은 원칙적으로 민영화를 원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당연히 이윤추구때문이리라. 그런데 우리가 방문할 수 있었던 발전소들은 이미 한전과 상당히 교류가 있었던 곳들이었다. 특히 미란타 발전소는 아시아 각국에 발전소를 상당부분 보유하고 있었으며, 한전 민영화 참여의사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여타의 방문기관들보다 우리들에게 호의적이었고 상당히 친절했다.

발전소 방문의 대체적인 느낌은 그들은 전기가 과다 공급될 경우 전기요금이 인하될 것을 우려해 발전소 설비투자에 대한 개념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산업자원부는 귀국 후 보고서를 통해 오히려 구조개편 이후 발전소 건설이 증가하였고, 계획 중인 곳도 많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리들이 직접 본 바에 의하면, 캘리포니아는 다른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환경규제 법률이 엄격해 발전소 건설이 어렵다가 최근 환경규제 법률이 완화됨에 따라 발전소 건설이 눈에 띄게 증가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CEC(주정부 에너지 위원회)와 현지의 학자들, 행정가들이 전력비상사태를 예견했고 꾸준히 발전소 건설을 주장하였을 테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역시 환경규제 법률의 완화로 볼 수밖에 없었다. 발전회사가 민영화되면 환경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문제제기는 한국의 전력산업 구조개편 추진시 유념해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다. 정부의 강력한 구조개편 추진으로 인한 환경문제에 대해 노동조합이나 환경단체 등 관련기관들이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고 있는 점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캘리포니아 사태를 볼 때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발전소간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담합의 가능성이다. 이는 우리측에서도 일정부분 동의한 점으로서 발전소는 고의든 실제상황이든 담합에 의한 정지기간 연장이 가능하다. 그들은 애써 부인하며 엄격한 환경규제 때문에 설비보강을 위한 발전소 정지기간이 길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말이다.

방문한지 4일째 되는 날 전력전문가이자 세계 각국의 전력산업에 자문도 하고 있는 경제학자 레이루퍼와 인터뷰가 있었다. 그는 캘리포니아의 구조개편 방법을 반대한 학자로서 잘못 설계된 전력도매시장으로 당초 의도했던 경쟁시스템을 갖추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자유 전력시장은 존재할 수 없음을 역설했다. 레이루퍼의 말에서도 우리는 전력산업 구조개편이 무조건적으로 효율성을 제고시켜 주거나 경쟁력을 상승시켜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미국 50여개 주 중에서 구조개편을 단행한 곳은 5개주 뿐이다. 구조개편 하지 않은 주에서는 전력대란이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정부측 주장대로 5개주 중 캘리포니아만이 전력대란이 일어났다. 그리고 펜실바니아주는 현재까지 구조개편으로 인한 특별한 문제점이 없는 것으로 돼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처럼 자원빈국에서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단행한 경우는 전무하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전력산업 구조개편이 강행될 경우 필연적으로 실패할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으며, 전력대란이 현실화될 경우 그 대처방안에 있어 미국과 우리는 비교도 되지 않는 심각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

정부는 캘리포니아 방문 이후에도 캘리포니아 사태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고, 타산지석으로 삼아 잘할 수 있다는 말만을 거듭하고 있는데, 과연 발전소가 민영화된다면 전력소비증가율에 따르는 발전소 증설이 제때 가능할지? 참으로 가슴 무겁게 짓누르는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캘리포니아 같은 사태가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길 원치 않는다면 앞으로 책임지고 발전소를 건설하고 장기전원계획을 담당할 가칭 '전력건설회사'의 설립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또한 세계 각국에서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성공한 곳과 실패한 곳의 공정하고도 충분한 시장조사를 거쳐 보다 철저한 사전준비 후에 구조개편을 진행해도 결코 늦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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