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말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정부가 유도했던 이른바 '양보교섭'이 수도권보다 비수도권에서 잦았고, 노동자들의 협상력이 떨어지는 사업장일수록 많이 이뤄진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일 펴낸 '경제위기 후 단체교섭의 비교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4월 현재 비수도권은 지역에 위치한 사업체 비중에 비해 양보교섭을 실시한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양보교섭은 1천267건이 이뤄졌고, 그중 임금동결이 587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노사화합선언(342건)·임금반납이나 삭감(207건)·무교섭(94건)이 뒤를 이었다.

지역별로는 수도권(409건)과 부산경남권(281건)·광주전남권(194건)·충청권(134건)·대구경북권(117건) 순으로 많았다. 수도권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양보교섭이 이뤄졌지만 지역에 위치한 업체비율과 양보교섭 비중을 비교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부산·경남지역의 경우 지역에 위치한 업체가 전체 사업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약 15%였는데, 전국의 양보교섭 실시 기업 대비로는 22%에 달했다. 광주·전남지역은 전체 사업장에서 차지하는 사업장 비율은 6.8%였지만 양보교섭 비중은 15%에 달했다.

반면 수도권의 경우 전체 사업체수에서 차지하는 업체의 비중이 46%인 반면 양보교섭 실시 비중은 32%에 그쳤다. 노동연구원은 "양보교섭이 수도권보다 지방에서 더 많이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기업규모가 작을수록 양보교섭이 잦았다. 300인 미만 사업장이 전체의 77%를 차지했고, 그중 100~299인 사업장의 양보교섭이 41%였다. 노동연구원은 중소규모 사업장이 대규모 사업장보다 △노조의 교섭력이 상대적으로 약할 가능성 △경제위기에 더 많이 노출돼 있을 가능성을 이유로 들었다. 실제로 양보교섭은 교섭력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었다. 양보교섭의 57%가 무노조 사업장에서 이뤄졌고, 한국노총 가입사업장은 27%, 민주노총 사업장은 8% 수준이었다.

노동연구원은 경제위기 대응방식과 관련해 "일자리 나누기보다 양보교섭에 정부정책의 초점이 맞춰졌다"고 비판했다. 연구원은 "선진국에서는 경제위기의 본질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이라는 판단 아래 고용유지를 위한 정부정책 개선, 구조조정에 따른 제반 피해의 최소화 방안,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대규모 실업사태 회피 등을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원은 이어 "우리나라는 위기를 일시적으로 회피하기 위한 임금삭감 및 동결, 일시적인 휴직을 중요한 방법으로 채택했다"며 "또 다른 경제위기에 대비해 개선해야 할 부분은 혁신을 지향하는 일자리 나누기"라고 제안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