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 제5행정부는 최근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정리해고는 부당해고”라는 판결을 내놨다. 법원은 “특별단체교섭 합의서의 효력을 배제할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인정되지 않아 사측의 정리해고는 부당하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로 복직의 가능성에 한발 다가선 이들은 경북 포항 소재 강관제조업체 진방스틸코리아(주) 해고자들이다.

진방스틸의 경영권은 지난 2007년 8월 한국주철관공업으로 넘어갔다. 당시 모건스탠리로부터 경영권을 인수한 한국주철관은 같은해 7월 금속노조 진방스틸지회와의 특별단체교섭에서 노조·단협 승계와 함께 인위적으로 구조조정을 시행하지 않겠다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경영권이 넘어간 지 1년도 되지 않아 대규모 해고가 발생했다. 진방스틸은 2008년 6월 노동자 31명을 정리해고했는데, 해고자 중 11명이 지회 간부였다.

서울고법 판결에 주목하는 이유는 진방스틸의 정리해고 과정이 지난 15일 노동자 172명을 정리해고한 부산 한진중공업의 사례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한진중은 “영도조선소에 더 이상 일감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2009년 말부터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2년여 동안 정리해고·희망퇴직·아웃소싱으로 1천500여명이 영도조선소를 떠났다. 노조 간부들이 대거 해고된 것도 진방스틸과 유사하다.

한진중 노사가 2007년 합의한 특별단체협약은 휴지 조각에 불과했다. 특단협에는 △국내 물량 3년치 확보 △인위적 구조조정·정리해고 금지 ·경영악화시 해외공장 우선 축소 등의 내용이 담겼지만, 회사측은 한마디 변명도 없이 특단협을 무시했다.

남은 것은 법정공방이다. 한진중 해고자들은 진방스틸의 해고자들이 그랬듯 부산지방노동위원회를 찾아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조만간 부산지방법원에 해고무효 확인소송을 낼 예정이다. 한진중 정리해고 사건의 법적 쟁점은 근로기준법의 ‘경영상 해고’의 요건을 갖췄느냐 여부다. 또 한진중이 특단협의 효력을 배제할 정도로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었느냐를 놓고 공방이 오갈 것으로 예상된다.

과연 노동위원회와 법원이 어떤 결론을 내놓을까. 진방스틸을 인수한 한국주철관은 경영상의 어려움을 내세우면서도 지난달 111억원을 투입해 충북 음성에 있는 대영강재를 인수했다. 이러니 서울고법이 부당해고 판결을 내놓은 것이 아닌가. 한진중도 마찬가지다. 한진중 필리핀법인(HHIC-Phil)에는 무려 3년치 일감이 쌓여 있다. 그중 일부만 영도조선소로 가져오면, 회사가 주장하는 경영상의 이유는 단번에 해소될 수 있다. 이것이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상식이다. 법원이 상식에 근거한 판단을 내리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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